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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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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할 일은 많은데


BY 만석 2014-07-25

아직도 할 일은 많은데

 

겨울 추운 날엔 집의 런닝머신 위에서 걸었다. 나가지 않아도 하루에 만보쯤은 거뜬하게 걷는 셈이다. 윗몸 일으키기, 자전거, 덜덜이, 족욕통, 적외선치료기 또. 이름도 모르는 운동기구를 방안 가득 늘어놓았으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올라타는 건 유일하게 런닝머신 뿐이다.

 

3월의 어느 날. 햇볕이 따스한 주말의 오후였다. 마주앉아 점심을 먹으며 남편에게 말을 건다.

우리 오랜만에 산에나 가볼까?”

.”

싫은 게다. ‘싫으면 그만 두세요.’하려는데 뜸을 들이던 남편이,

그러지, .”한다. 꼭 누루를 위해서 마지못해 간다는 투다. 그래도 반갑다. 오랜만의 산행을 위해 선그라스도 챙기고 작은 물병도 챙긴다. , 간이방석도 챙겨야겠다.

 

우리 내외가 산에 오르는 코스는 늘 정해져 있다. 그이의 긴 다리로는 30분 거리지만, 짧은 내 다리로는 1시간 10. 나도 전에는 40분 이면 올랐으나 이젠 어림도 없다. 내 걸음에 맞추느라고 남편은 거북이걸음을 걷는다.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기는 게 재미가 없긴 하겠다.

 

마누라가 뒤따른다는 것도 잊는지 성큼성큼 걷기도 한다. 곧 뒤를 돌아보고는 바위 위에 걸터앉는다. 그러다가 마누라가 다가가면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이젠 이골이 나서 앙탈을 부릴 일도 아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에~! 나도 쉬면 그만인 것을.

 

기분이 좋은 때는 나란히 앉기도 한다.

에이. 쯔쯔.”그이가 혀를 찬다. 그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드니 허리가 적잖게 굽은 노인이 저만치에서 손으로 바위를 짚으며 힘들게 오르는 게 보인다. 팔십은 족히 넘었지 싶다.

 

저 정도면 편하게 갈 준비나 해야지. 저게 무슨.”

얼마나 더 살고 싶어서. 그래서 노인들이 많은 겨.”

남들 보기 추하게.”

 

그이의 심중을 더 듣고 싶었으나 그만 입을 닫는다. 그러니까, ‘살만큼 산 것 같은데 그만 남은여생을 편하게 지내다 가시지.’하는 마음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노인이야 그만 살고 싶겠는가. 이대로라도 좀 더 오래 살고 싶으리라.

 

남편은 늘 말한다.

당신이나 나나 이 나이에 병을 얻어도 억울할 것 없구먼.”

삼사일만 앓다가 가는 게 본인들이나 아이들이나 옆의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이라 한다. 병원비 때문에 장레비도 남기지 못하면 과히 좋지 않은 모양새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긴 하다.

 

잠이 들면서도 TV를 켜놓는 영감의 몹쓸 습관에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 이렇게 자다가 누구 하나 가도 모르겠어요.”하니,

, 그렇게 간다면 복이지.”한다.

 

그런데 난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제 막내 아이 짝을 채운 지 여섯 달. 진정한 나만의 여유를 아직 맛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지. 그동안 잊었던 피아노도 다시 두드리고, 잔뜩 쌓아놓은 한지로 서예에 정신을 빼앗기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또.

 

누구에게 뽐낼 만큼이야 되겠냐마는 그래도 손주들에게 멋진 할머니로 기억 되고 싶다.

 

보림아~!

할미는 말이지.

우리 보림이가 아주 멋진할머니루다가 오래오래 날 기억해 줬음 좋겄다아~.

금새 잊혀지는 할미는 싫구먼.’

보림이는 이 할미를 좀 오래오래 기억해주믄 안 될라는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