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며느님 2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시어미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게야? 이게 뭔 시츄레이션?
“제사는 지내다 안 지내다 하는 게 아니지 않…”
시어머니에 대한 항명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말끝을 흐린다.
‘얘가 시방 무슨 건방을…!’싶지만 가슴을 쓸어내리고 젊잔을 피운다.
“나도 아직 몸이 시원찮고 고모도 나가면 네가 혼자 해야 하는데.”
“혼자 할 수 있어요. 어머니. 저 혼자 다 해요.”
“그럼, 삼색만 하고 간단하게 해.”
반색까지는 아니어도 반가운 눈빛을 보이던 영감이 던진 말이다.
“삼색이라니? 그럼 전은 안 부쳐도 돼요? 두부소적도요?”
“전을 안 할 순 없지. 두부소적이 빠지면 되나.”
“탕은요?”
“탕도 해야지.”
“그럼 다 하는 거지. 간단히는 무슨!”
추석 전날,
것 보라지. 열감기로 40도가 넘는 아이를 옆에 뉘어놓고 며느님은 전을 부친다. 10분에 한 번씩 체온을 체크하며. 장장 5시간을 전 부치는 일에 올~인하지만, 제사 준비가 어디 전 붙이는 일로만 되는 가. 탕을 준비하고 전 붙일 고명을 준비해 며느님께 대령을 하자 하니, 금이 간 갈비뼈가 편안치 않다고 불끈댄다. 겨우 깁스를 푼 손가락도 통증으로 아리다. 아들내외는 전을 부치고 제 집으로 향한다. 며느님은 오늘 밤 잠 다 잤네. 전 붙인 뒷설거지를 하자니 입에서 단내가 난다. 나도 열이 난다. 시어미가 아무리 시시해도 말을 좀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저도 고생이고 뒷 심부름하는 아들도 안쓰럽고, 시어미 부려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싶다. 그러나 열이 내리지 않은 채 업혀 대문을 나선 아이가 더 걱정이다.
추석 날.
저도 사람이다. 보나마나 어제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을 터이니, 늦은 아침에 대문을 들어선다. 차라리 나물거리라도 집에 두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손질을 했을 것을. 제사는 12시경에야 지냈다. 아이는 약기운에 열이 내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열이 오르고 또….
“얘들아. 그냥 접어놓고 병원 가라. 응급실로 바로 가거라.”
“요것만 하고요.”
고집을 피우며 설거지를 계속한다. 평소에 고집이 세다 했지만, 오늘은 더 유난을 떤다. 이젠 화가 난다. 소릴 지른다.
“말 좀 들어라. 어서 병원 가라구. 차 빼지 말고. 택시 타는 게 빠르다.”
뒷설거지는 영감 몫이다. 커다란 키. 구부정한 어깨. 설거지통 앞에 선 영감이 여~ㅇ 어색하다. 영감도 이제 철이 들었으니 곧 망령도 나겠구먼. 제기접시의 물기를 닦고 마른행주질까지 해놓으니 말이다. 아이는 그길로 2주일을 입원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아프면 그 에미가 고생이다. 귀가 후 며느님도 몸살을 된통 앓았는 모양이다. 그래도 병문안은 가지 못한다. 이름이 ‘시어미’이니 내가 들어서면 그녀가 고달프다. 아들 편에 추석지낸 음식을 보내고 간간히 전화를 하는 것으로 족하다. 시어미와 며느님 사이라는 게 요렇게도 묘한 사이임을 다시 한 번 더 절감한다.
보림아~.
요번엔 할미도 엄마가 밉구먼. 엄마는 왜 할미 말을 그리도 안 듣는지. 지는 척 제사를 그만 뒀음 웜매나 좋았겄어. 할미도 몸살을 뒤지게 앓으면서 보림이 보러 다니는데 혼이 났다. 그러게, ‘지나친 친절은 욕.’이라잖어~. 이젠 할미도 큰소리 좀 쳐야겄어. 안 그랬음 우리 보림이 더 고생했을 겨. 건강하게 돌아와 줘서 고마버. 정말 고마버. 그라고 며느님이 아니라 보림이 에미니께 엄마도 시방은 용서했어~ 안 하믄 워쩔겨 케케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