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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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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며느님


BY 만석 2013-09-29

못 말리는 며느님

 

37살 막내 딸년이 제법 애교 섞인 콧소리를 한다.

언니한테 승낙을 받는 게 쉽겠어요. , 요번 추석에 모처럼 놀러가도 되요?”

엄마한텐 물어보나마나 언니 미안해서 안 된다 하실 거구요.”

, 저는 상관없어요. 가세요. 괜찮아요.”

히히히. 엄마. 들으셨지요?”

면전(面前)에서 어찌 마다 하겠누. 쯔쯔쯔. 딸년은 나이도 잊은 채 고갯짓을 하며 좋단다.

 

동갑내기 동기가 둘이나 올 가을에 결혼을 한단다. 결혼 뒤에는 뭉쳐서 여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저랑 셋이서 추석연휴를 낀 한 주일 동안의 해외여행을 하겠단다. 반가운 마음에,

너도 가?”묻는다.

나도 끼워 준대요.”

나는 너도 시집을 가느냐는 물음이었는데 딸년은 동문서답(東問西答). 아서라. 말이 더 길어지면 내 심사만 사나워지지.

 

저녁 식사를 마친 영감에게 다가앉는다. 딸아이의 상황을 말하고 요번 제사는 생략하자며 눈치를 살핀다. 나는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이다.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지면이 길어지니 덮어두자. 12주발을 채우는 종가 댁으로 시집을 왔으니 제사를 피하기는 어렵다. 제사 때마다 속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그러나 정성껏 제상을 차린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아신 시아버지는 정성껏 제사를 준비하는 내게 몇 차례나 고맙다고 치사를 하셨다.

 

사실을 말하자면, 조상님의 영혼을 위해서 제사를 모신 건 아니다. 시부모님들과 다투어야 하는 과정도 싫었고, 집안이 시끄러운 건 더 싫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부모님의 마음을 거역할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어디에라도 의미는 두고 싶었다. 아니, 핑계라고 해 두자. 옳거니. 듣기도 좋게 효도하는 마음이라고 하자. 시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모신다? 그럴싸하지 아니한가. 그렇지. 제사를 모시지 않아서 시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게 얼마나 불효한 일이겠냐는 말이지.

 

허거~~~~. 20년 모시다가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니 이젠 어떤 핑계를 댈꼬. 아직도 내 위상은 영감에게 제사를 못 지낸다고 대들만하진 않으니. 어쩐다!? 아하~~~~~. 내 머리는 핑핑 잘도 돌아간다. 영감이 있지 아니한가. 영감도 내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최대한의 협조를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나도 영감의 마음을 헤아린다 하면 상부상조(相扶相助)로고. ‘열부 났네 열부 났어!’ 또 한 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윙크를 보낸다.

 

탐탁하지 않은 제사라지만 한 번도 걸러보지는 않았으니, 요참엔 좀 딴지를 걸어볼까나? 막내 딸년의 사정을 이러쿵저러쿵 조신하게(?)알리고, 며느리가 혼자 고생하게 생겼노라고. ‘예로부터 집에 우환이 있으면 제사를 건넨다하시던 시어머님의 고명하신(?) 말씀을 섞는다.

그러던지.”하는 영감의 대답을 얻어 냈겠다?! 지체할 것도 없지. 내친김에,

에미야. 요번 추석의 제상은 생략한다.”할 밖에.

~?! 근디, 며느님의 이 반응은 뭐여~? 잘났네, 정말!

 

보림아~. 엄마 좀 말려라. 어쩌자고 저러콤 할미 말을 안 듣는다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