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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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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산다


BY 만석 2013-08-01

이 맛에 산다

 

아들내외가 딴 살림을 차린 지 벌써 반 년. 이제쯤은 섭섭한 마음도 접었고 다시 시작한 살림도 할만은 하다. 그런데 손녀 딸아이 보고 싶은 마음은 도통 접을 수가 없단 말씀이야. 옆 집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에도 곧잘 귀를 세우는구먼. 대문 밖 큰길에서 들리는 어린아이 목소리에도 내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손녀 딸아이가 오는가 싶어서.

 

다행인 것은 내 며느님이 일주일에 두어 번은 반드시 아이들 데리고 들르곤 하니 고마운 일이지. 세 번이면 어떠랴 싶고 매일이라도 좋겠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겠다. 어제 다녀갔으니 다음 날은 올 리가 없으련만 <어린이집>이 파하는 5시만 되면 벌써 내 목은 자라목만큼이나 길어져 담장을 넘곤 한다. 주책이지.

 

허긴. 어제 다녀갔어도 다음 날 다녀가는 일도 있긴 하다. 아직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어미의 통역을 거치는 때가 많지만 그게 뭔 대수겠는가. 종알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좋고 콩콩 마루를 구르는 소리만으로도 이 할미는 그저 행복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금상천하(金傷天下)로고. 누구네 손자가 이만하고 누구네 손녀가 요리도 예쁠고.

 

제 집에서 어린이집까지가 어림잡아 500m. 어린이집에서 내 집까지도 500m. 그러니까 제 집과 내 집의 중간에 어린이집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멀리나 가지. 순전히 시부모 밥해주기 싫어서 나간 거 아녀~!”한다. 그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이젠 손녀 딸아이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사실로 족하다.

 

아모니이이~!”

으히히 왔다. 드디어 내 손녀딸이 왔다. 어린이 집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 옷자락에 간식 먹은 표를 내고 있으나 곱다. 곧장 제가 몸담고 살던 건너 방으로 내달린다. 에구~. 그 방엔 운동기구가 가득이라서 위험하다. 어느 하나라도 스윗치만 누르면 바로 작동을 한다. 뒤따라 들어가 잽싸게 모든 스위치를 숨긴다.

 

아이가 동전지갑을 들고 나온다. 지갑 속을 살핀 아이의 입이 맘껏 벌어진다. 제가 기대한 만큼의 동전이 들어 있다는 표현이다. 나는 아이가 오기를 기대하며 그녀와 약속한대로 동전을 모아둔다. 거스름돈을 동전으로 요구하기도 하고 내 욕심에 차지 않으면 일부러 동전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아이는 제 집 돼지저금통을 불리는 재미에 웃고 나는 그 웃는 아이를 바라보는 행복에 웃는다.

 

아이가 입을 제 어미 귀에다 바짝 대고 속삭인다. 에미가 자지러지게 웃으며 말한다.

아이구 어머니 큰일 났어요. 선물이 어디 있냐고 물어요.”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할머니는 언제나 선물을 주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늘 그랬으니 오늘도 뭔가 내 놓아야 한다. 책상 위를 가리키니 반갑게 뛰어간다. ‘그거 봐라하는 표정으로 제 어미를 바라본다. 오늘은 종이인형에게 입히는 예쁜 드레스 스티커가 선물이다. 만족스러운가 보다. 배를 깔고 엎드려 폭이 넓은 이브닝 드레스도 입히고 수영복도 입힌다. 단돈 이천 원에 얻는 내 행복은 이천만 원짜리다.

 

보림아~!

다음 오는 날 선물은 색칠하는 드레스로 이미 사다 놨당께. 문방구나 마트에서 네 선물 고르는 일이 아주 재밌구먼. 막내 고모 나이 사십이 불원하니 아마 삼십 년만의 일인 것 같어~. 보림이 이만~큼 커지면 할미 선물도 커지겄쟈? 어메~. 그땐 할미 허리가 휘겄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