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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속을 몰라?!-3


BY 만석 2013-07-08

내가 그 속을 몰라?!-3

 

허허 일 났네. 전철도 이젠 모두 끊겼을 시간. 무서운 세상이라 술이 취한 양반에게 택시를 타라 하자니 그도 불안하다. 잠이 들었다가는 낭패가 아닌가. 전화를 끊지 못하고 말을 자꾸만 이어간다. 좋은 수가 없을까. 곤하게 잠이 들었을 아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차를 갖고 마중을 나가라고 하는 게 호구지책(糊口之策)이지 싶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요. 애비 보낼게요.”하니 펄쩍뛴다.

, 시방 걸어가고 있어. 어딘 줄 알고 앨 보내. 관 둬.”한다. 그러고 보니 간간히 차 소리도 나고 들려오는 영감의 목소기라 출렁거리는 것이 걷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그이의 고집을 꺾을 재간은 없다는 걸 안다. 시원한 밤바람이 좋으니, 걷다가 첫 버스가 나오는 시간이면 버스를 타고 오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혼 45년의 두 번째 외박인 셈이다. 그래도,

외박을 하겠소?” 하는 나에게 그이는 외박이 아니라고 박박 우긴다. 지금 귀가 중이니까 외박은 아니란다. 밖에서 잠을 자야 외박이란다. 그러고 보니 10전 딱 이만 때 생각이 난다. 그날은 부슬비가 내리는 밤이었지. 어라?! 화들짝 일어나 창문을 여니 지근도 역시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불길한 예감이 달려든다.

 

택시 기사가 영감을 창경원 돌담길에 내려놓았던 게다. 내리는 부슬비 속에서 술기운이 좀 걷어졌던지 밤공기가 시원하고 기분이 좋더란다. 그래서 걷기 시작하다가, 배가 고픈 퍽치기를 만나 큰일이 버러지고 말았던 게다. 그때 벌써 환갑 진갑이 지난 늙은이가 젊은 녀석들을 어찌 이겨내겠는가. 코뼈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상하는 불상사를 당했지. 정의의 젊은이가 말리고 경찰을 부르는 바람에 그만했으니 지금 내 속이 또 탄다. 마음이 급하다. 내일 출근할 아들을 수고스럽게 할 게 아니라 콜택시를 부르자. 다시 어디냐고 물으니 걱정 말고 자라며 그만 전화를 끊고 만다. 다시 전화를 거니 이젠 아예 받지도 않는다. ~.

 

지금 시각이 2. 적어도 세 시간을 걸어야 차를 타겠으니 저 고집통을 어쩌누. 벽에 걸린 결혼사진 속 영감에게 눈을 부라리고 주먹질을 해보지만 무슨 소용인가. 타는 속에 가슴이 답답하다. 불꺼진 베란다로 나온다. 길 건너 가로등에, 내리는 부슬비가 햇빛처럼 반짝거리며 흩어진다. 영감의 일만 아니면 탁자 위의 필기구에 쏟아놓은 이야기 거리가 많게 생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도 펼쳐진 노트에 적어본다. ‘영감의 두 번째 외박’. 그러고 보니 과히 나쁜 성적은 아니다. 영감 말대로라면 자고 들어오지는 않았으니 외박도 아니라질 않는가.

 

왜 이러구 자. 어때 나, 잘 들어왔지?!”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어깨를 치는 영감의 익살에 화들짝 고개를 든다.

사무실에 전화 좀 해. , 한잠 자고 나가야겠어.”하고는 곧장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아무 일 없이 들어온 건 다행이다. ‘외박을 안 하는 사람이라고 큰소리 치고 싶어서였을까. 당췌 그 속을 모르겠다. 영감의 사무실에 전화를 건다.

지방에 사는 친척 댁에 일이 있어서 어제 밤에 내려가셨는데, 사장님은 지금 올라오시는 길이랍니다. 출근이 좀 늦어지실 것 같습니다."

보림아~. 요번에는 이 할미가 웃겼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