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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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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무제(無題)


BY 만석 2009-12-07

 

(님들의 댓글이 그리울 때면 이 공간을 찾습니다. 바른 판단을 얻고 싶을 때도 이 공간을 찾습니다. 그리하여 만석이는 성숙해지려고 노력합니다^^)


무제(無題)


  늙은이들이 너무 많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질긴 게 목숨이라고 스스로 끊을 수도 없다는 게, 아우성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우리들의 답이다. 혹자는,

  “내가 살고 싶어서 살간디?”라고 큰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더라만, 그건 정답이 아니다. 죽고 싶으면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다만 그 방법이라는 게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파장을 준다는 게 사단이지. ‘얼마나 괴로웠으면…….’하는 말이 죽은 이의 주변 인물을 ‘몹쓸 사람’으로 만든다는 게 큰 문제라는 말씀이야. 특히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TV를 켠 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 집은 식탁에서 TV와 정면이 되는 자리가 상좌(上座)다. 그러니 영감이 없는 점심엔 내가 그 자리에 앉기 마련. 마침 어느 방송국에서 장수(長壽)를 논하고 있었다. 의학의 발달로 명(命)이 길어졌다는 논지(論之)였다.

  “그래. 지하철을 타고 보면 늙은이들이 태반이야.”라고 입을 연 사람은 나. 뒤미처 며느님이 입을 열었다.

  “그저 사람은 자식 다 기르고 환갑 지나서면 죽어야 해요.”

  “…….”

  “…….”

  마주 앉았던 나도 내 곁에 앉았던 딸도, 우리는 서로를 응시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참 기분이 묘했다. 내 나이가 몇인가. 아니, ‘며느님의 시어미’는 지금 몇 살인데……. 환갑을 지나고도 중반을 지났으니, 그녀의 말대로라면 백골이 진토가 되었어야 하질 않겠는가. 말이 길어지면 딸년이 시누이 노릇을 하겠다 싶어서, ‘잠자코 있으라’는 눈짓을 했다. 꾀가 맑은 딸년의 눈 꼬리가 사나와 보였기 때문이었다. 딸년은 어미의 기분을 읽었는지, 어깨에 주었던 힘을 빼고 생선 토막을 담은 접시를 내 앞으로 옮겨 놓았다. 입은 여전히 새초롬히 모은 채이다. ‘많이 자시고, 보란 듯 장수하시오.’하는 어깃장이렸다?! 아니면 위로의……. 사실 딸아이가 없는 자리였으면 난 한 마디 했을 것이다. ‘듣기에 거북하다.’든지, ‘내 나이가 몇인데…….’라든지. 며느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엎뎌서 숟가락질(?)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일주일 뒤.

  TV에서 같은 프로를 한다. 오늘은 장수하는 그 비결을 알려준단다. 이것저것 요구도 많고 가리라는 것도 많다.

  “우리 오빠는 120살까지 살아야 해.”

  누굴 쳐다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저 혼잣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 딸아이가 없는 자리다. 옳거니. 오늘은 한 마디 해야겠구먼.

  “네 오빠는 120살까지 살고 시어미는 60살만 살고……. 그럼 넌?”

  “예?…….”

  TV속으로 빠져들 듯 하던 며느님이 소스라쳐 놀란다. 이제야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더듬는 모양이다. 입으로 가져간 젓가락이 입술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녀는 무슨 계산을 하고 있을까. 환갑을 넘긴 시어미의 명? 아니, 120살까지 살라는 내 아들인 그녀 오빠의 명? 그도 저도 아니면 얼마나 살고 싶으냐고 묻는 제 명줄? 


  이제야 본인(本人)의 실수를 알았을까? 눈을 내리감고 의기가 소침하다. 암. 실수일 게다. 시어미는 환갑을 놓쳤으니 장수할 것이 뻔하고, 이제 환갑을 맞을 날은 멀었지만, 당신 아들도 장수해야 한다는 말로 내게 아첨을 했다고 해 두자. 웃으며 넌지시 그녀의 얼굴을 주시(注視)해 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아니…….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랬을 게다. 어찌 감히 시어미 앞에서 시어미의 명줄을 환갑으로 묶으리. ‘네 오빠는 120살까지 살게 하고 너는 환갑을 지나서 죽으면 오빠의 여생은 어째?’라고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역겨움을 목젖으로 눌러 앉힌다. 말이 씨가 된다지 않던가. 비아냥거리며,

  “그래라.”했다가는 내 아들만 고생이 아닌가. 며느님도 오래 살아야지. 어흐~ㅁ. 쩝쩝.


  그 저녁에 아들이 안방을 노크한다. 일상엔 별로 없었던 일이다.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하하하. 엄마.”

  “…….”

  녀석이 던진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멍청하게 아들만 올려다보고 앉았다. 자리에 앉으며 녀석이 너스레를 떤다.

  “엄마. 쟤가 오늘 실수를 했다면서요? 쟤가 생각이 좀 짧아요. 이제 산달이 다가오니까, ‘저는 환갑까지만 살고 애한테 짐이 되지 않았으면…….’하는 뜻일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래요. 하루 종일 혼자서 되게 고민했나 봐요. 엄마가 이해해요. 이해하시죠?” 


  허허. 이 녀석. 북도 치고 장구도 치네. 뭘 이해하란 말인고. 아니 왜 공연스리 들어와서는 내 마음을 더 복잡하게 하는 겨? 뭘? 아무리 뜯어 생각해 봐도 이해 할 건덕지가 없질 않는가. 제 댁(宅)이 하루 종일 고민한 걸 알아주라는 겨? 아니면, 시방 우리 부부가 지들한테 짐이 된다는 말만 더 얹어주고 갔잖은가. 그러고 보면 내 아들도 생각이 짧은 겨? 그런 겨? 평소에 속이 깊어 말이 없던 녀석이었는데 이젠 그리 된 겨? ‘참 잘 만났다’싶었더니 정말 잘 만났구먼. 녀석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겠지만, 사실 우리 부부가 아들 내외에게 짐이 된다는 말이 맞긴 하다. 우리 부부가 감기만 들어도 약을 사 오라고 며느님은 아들에게 전화질(?)을 하고, 퇴근길의 아들은 제 댁의 엄명(?)을 수행해야 하고……. ‘말이 씨가 된다.’하니 어쩌겠는가? ‘생각이 짧은 녀석’이라고 말을 하면 정말 생각이 짧은 녀석이 될 것이니. 에~라. 자판 위에서나 떠들고 말자. 이리나 떠들고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