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23회
엄니같은 시엄씨는 되고 싶지 않은디
이상한 일이다. 속이 너덜너덜 헤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서럽고 처절한 이야기를 적어도, 내 글을 읽는 이들은 웃음이 난다고 한다. 그만큼 '내 일'이 아니어서 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불 난 집 불 구경하듯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들리는가.
어떤 이들은,
"당신 같이 수월한 시집살이를 하면 걱정도 안 하겠다."고 한다. 놀란 토끼 눈으로,
"나 같은 시집살이는 어떤 것인데?" 라고 물으면,
"할 말 다 하고 사는 시집살이 말일세."라고 한다든지,
"할 짓 다 하고 사는 시집살이 말이야."라고 한다.
어느 날이었는가. 오늘 모임에 갈 수가 없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엄니가 못 나가게 해?"
"아~니."
"그럼 영감이 못 나가게 하시남?"
"아녀~."
"근디, 왜 못 와?"
"안 가야 좋겠어."
"제 신상을 지가 볶아. 작작 볶아라."한다.
차라리 엄니나 영감이 못 나가게 하는 편이 마음은 편하겠다. '알아서 해라' 하는 데에는 내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게 된다. 이것저것 생각 않고 뚝딱 대문을 나선다면 몰라도, 내가 대문을 나선 다음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그냥 주저앉고 만다. 왈, 이것이 '시집살이'가 아닌가. 할 말을 다 하는 것 같아도, 할 짓을 다 하는 것 같아도, 나도 다른 며느리들처럼 시집살이는 시집살이인 것을…….
옛말에 '시집은 커도 시집이고, 작아도 시집이라'했다지? 그러니까 며느리에게는 고매하지 않은 시어머니가 없듯이, 서럽지 않은 며느리가 없다는 말이겠다. 얼마나 서러운가가 문제다. 그 서러움이란 누군가가 손에 쥐어주어서 한 한 마디가,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고깝게도, 서럽게만 들릴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엄니는 내가 아직도 새댁이었을 적에,
"너는 이다음에 시집살이를 했다고 하면 베락을 맞을 겨."라고 곧잘 엄포를 놓으셨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너를 시집살이 시킨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렸다. 지금 생각하면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시다. 그러니까 벼락을 맞을 때 맞더라도, 솔직히 말하자면 분명히 나는 시집살이를 했다고 말할 것을 고백한다.
시댁이 지겨워서 '시'자가 들어가는 시금치도 쳐다보기 싫다는 젊은 며느리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녀들의 항변에 나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만큼 시댁이란 며느리에게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여건이 많다는 이야기다. 자유롭지 말라고 억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껏 자유로우라고 등을 떠미는 이들도 없는데 시댁이란 그런 곳이다. 그러니까 시댁은 나에게도 그런 곳이다.
그래. 그래서 내가 사람들 말 대로 아주 쉬운 시집살이를 한다고 치자. 그러나 처음부터 쉬운 시집살이는 아니었다고 나도 항변하고 싶다. 제 잘 난 멋에 사는 세상이라지 않는가. 에~라. 그러자. 쉬운 시집살이를 하게 된 것도 내 재주라고 해 두자. 이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요는 내 며느리가 또 내 대물림을 하게 될 것이 걱정이라고 오지랖이 넓은 척을 해 본다. 그녀도 시금치가 쳐다보기 싫다고 한다면 어쩔고? 이 알량한 만석이를 고매한 시어미로 말하면 어쩐다? 아니, 떠도는 소문처럼, 내게 용돈 몇 푼을 던져주고는 가게부에 '웬수 용돈'이라고 적어놓는 며느리라면 큰일이다. 엄니요~. 죄송스럽지만, 나는 엄니 같은 시엄씨가 되고 싶지는 않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