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7회
엄니 흉 좀 볼라요
오늘은 시아버님의 제사 날이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조급했다. 작업을 하다가도 메모지를 꺼내놓고 생각 날 때마다 살 것들을 메모했다. 밤 대추 사과 배……. 그래도 정작 장을 본 어제는 아니, 오늘 아침에도 서너 번은 마켓을 다녀왔다. 이제는 다 사 날랐거니 하구 보니, 어~라. 다시마가 빠졌다. 다시 메모를 한다. 다시마 실고추 깨소금……. 다시 마켓을 다녀오고 보니, 정작 부침가루가 빠졌다. 휴~. 이놈의 정신. 해마다, 아니 일 년에 몇 차례씩 치르는 장보기를 이렇게 헤매다니. 엄니는 시골집에서 읍내 장을 어떻게 단 번에 그 많은 것을 사 들이셨을꼬. 물론 메모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전화 연락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인데. 참 용하시다. 신식 말로 나와는 쨉이 안 되는 엄니시다. 그러니 알량한 며느리의 하는 양이 마음에 차지 않으실 것이고, 그래서 소위 말하는 잔소리를 하게 되실 게라 이해가 가기도 한다.
현관 벨이 운다. 방앗간에서 어제 약속한 대로 떡쌀을 가지러 온 모양이다. 밤 새 불린 쌀을 아침에 소쿠리에 건져놨더니 물이 어지간히 빠진 모양. 쌀을 실으며 아저씨가 묻는다.
“편으루다가 쪄야쥬?”
“예.”
“그라믄 콩가루 써야겄네.”
엄니는 방앗간 아저씨의 말을 큰 소리로 중계해야만 들으신다.
“엄니. 콩가루 쓴다는데요?”
“아녀~. 팥을 써야제.”
“팥을 쓰믄 기피를 내야지유. 기피 내믄 삼만 원이유.”
다시 아저씨의 뜻을 전한다.
“팥을 쓰믄 삼만 원이구, 콩가루 쓰믄 이만 오천 원이래요.”
"그래두 팥을 써야 혀.“
아버님의, 아니 당신의 영감님(죄송) 제사상이니, 떡은 엄니가 해 얹겠다 하셨기에 엄니께 상의를 드린 게다. 오늘 엄니의 가슴에 만감이 얽히실 게다. 뭣이든 최고로 장만하고 싶으시리라. 왜 아니 그러시겠는가.
생전의 시부모님은 이웃이 다 알아 모시는 금실이 여간 좋은 어른들이 아니셨다. 말이 없으신 아버님은 모든 살림을 엄니에게 맡기셨고 농사일에만 열심이셨다. 그러나 남존여비의 사상을 너무나 ‘當然之事’라 힘을 주시는 통에, 나는 시아버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허나, 엄니가 그런 지아비의 의식을 그대로 순종하며 받아들이시는 데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지나치다 싶을 때가 많았으나 엄니는 그래도 순종을 잘 하셨다. 그러나 나는 엄니의 그 순종이 마땅치 않을 때가 더 많았다. 허긴. 아이들 말대로,
“할머니가 괜찮다는 데에야...”
쳐다만 볼 수밖에. 그러나 그 여파가 우리 내외에게 미치는 부분에서는 혀를 찰 수밖에. 두 분의 건강을 위해서 따님들이 사들고 온 약을, 아버님 혼자서 다 잡수셨다는 이야기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하는 것”이라고 못 박는 무언의 압력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기까지 고쳐지지 않고 대물림을 했다. 결국 돌아가시기 전,
“아버님. 아버님 입에 넣으시기 전에, 뭣이든지 엄니도 같이 드시게 하세요.”라는 이 외며느리의 질타를 들으셨고, 그러나 이 며느리는 엄니의 마땅치 않아 하시는 눈길을 받아야 했다. 이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어도 엄니의 마음은 여전하시다.
"엄니. 너무 그러셔두 흉이구먼유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