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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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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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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BY 햇반 2005-12-09

아버지...
요즘 아코디언 연습 하세요?
지지난 해 였죠 아마.
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어떤 선물을 해드리면 좋을까 한참 고민했어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일상에 활력을 심어줄만한 뭐 특별한 선물이 없을까 하구요.
그리고는 한동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어린시절들을 떠 올리며 행복했던 기억
아버진 모르셨을거에요.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내내 저는 아버지가  제게 참 특별한 분이란걸 알았어요.
제가 기억하는 어버지는요.
참으로 자상하고 사랑스럽고 인자하신  분이셨어요.
노래 부르시는것을 즐겨하셨던 아버지.
그렇죠?
요즘도 아버진 술 한잔이면 노래방으로 오케이하는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이 있잖아요.
지금도 어렴풋하게나마 밀려드는 추억들로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따스해지는때가
있는걸요.
아주 옛날,학교도 입학하기 전 지금 제 딸보다 어릴적 아버진 일요일이면 언제나
학교에 데리고 가셨어요.
아마 제가 졸랐겠죠.
학교에 데리고 가 달라구요.
학교관사가 집인 제게 교무실은 너무도 가깝고도 먼 황홀한 놀이터였거든요.
학교는 저에게  꿈의정원이었구요.
교실마다 전면에 커다랗게 매달려 있는 칠판, 그 칠판에다 뭉툭한 하얀 백묵으로
칠판 가득 그림을 그릴때마다  제 꿈이 한뼘씩 자라났죠.
무엇이든 그렸다가 맘에 안들면 바로 지울 수 있는 칠판지우개에 시간가는줄 몰랐어요.
누런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그림하고는 비교가 안될만큼 꿈틀꿈틀 살아있는 느낌,
 그 자체였으니까요.그 뿐인가요.
각 교실마다 아담하고 얌전히 앉아있던 풍금.
아,아버지의 풍금소리는 말예요.
저를 태우고 하늘을 붕붕 떠다니는 애드벌룬 같았어요.
아버지가 풍금을 치고 제가 노래를 부를때마다  저의 꿈도 애드벌룬처럼 멀리 멀리
뭉게구름처럼 높아갔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아버지.
그렇게 좋은것들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했던게 무엇인지 아세요?
마이크였잖아요. 마이크.
마이크를 입에대고 "아!아!" 하면 제 작은 목소리가 운동장까지 쩌렁쩌렁 울려서
제 목소리에 제가 놀라 마이크를 떨어 뜨리기도 했잖아요.
어느날 선생님들 몇분이 제게 마이크를 주시며 장난삼아 노래를 불러 보라시기에
제가 했던 노래.그 노래, 아버지는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전 또렷하게 기억하거든요.
"올해는 미스 방구 누가 꼈을까.냄새를 맡아보니 니가 꼈구나."
왜 하필 그 노래가 제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요.
저는 그때 두고두고 후회를 했는걸요.
그 노래를 부르고 나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얼른 아버지 뒤로 몸을 숨겼잖아요.
아마 선생님들도 웃음보를 터트렸던 기억들.
그 뒤로 짓궃은 선생님들께서는 저만 보면 다시 그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 순간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노래를,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그당시 가요를  멋드러지게
불러 한동안 귀염을 받았었죠.
참 이상해요 아버지.
저에게 그 시절 그 기억이요 마치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한 토막 한토막 뚜렷하게
기억되는것을 보면요.
아마 제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들로 저장돼 있나봐요.
인생이란 펴즐모양의 삶의 순간들을 하나씩 맞추며 완성해 가는게 아닐까.
그래서 행복이든 슬픔이든 많은 것을 간직하고 누리며 살아야 진정한 꿈을 이루었다 
생각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아요.
그러니 말예요.
지금 매 순간순간이 저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마이크를 제일 좋아했던 저 답지 않게 지금은 너무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요.
아버지 전 지금 많이 행복해요.
평범함의 진리는 사람을 흔들리게 하지 않아 좋구요.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할수 있어 기쁘구요.

근데,아코디언 얘기를 하려다  너무 먼 기억으로 돌아갔나요?
그치만 좋으시죠?
한참 젊으실때로 돌아가실 수 있으니 말예요.

아버지는 젊으셨을때 멋지셨어요.
엄마하고 다정해 보이는 아버지가 어린 제 눈에도 참 매력적으로 보였거든요.
아마 아버지는 잘 모르시겠지만요.
아코디언을 사드린건 다 이유가 있어요.
아코디언도 옛날 어릴적 기억 어딘가 자리잡고 있거든요.
학교에 있던 아코디언을 가슴에 안고 연주하는 아버지를 봤을때,구슬프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던 애잔한 리듬과 무엇인지 모를  끔틀거림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쑤욱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버지의  연주를 들을때마다  그 선율처럼 울렁거리던 기분.
노래를 부르실때도 풍금을 칠때도 느낄수 없었던, 그건 아마 아버지가 가끔 외로워
보인다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암튼 우리 아버지는 아코디언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더랬죠.
그 뒤 십수년이 흐른뒤에도  아버지는 가끔  아코디언 예기를 꺼내셨는데 기억 안나세요?
아버지가 그 시절을 그리워 했는지 아코디언을 그리워 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아버지께 꼭 아코디언을 사드려야겠다고 혼자 약속했어요.
혼자 한 약 속은 철없이 보낸 세월과 함께 날려보냈는지 그렇게 다시 십 수년이 흐르더라구요.

그러나 인생은 공짜가 없듯,세월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대신 체념하게 하고 포기하게 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순리대로 살아가는것이라  살아가는거라 하시던 아버지 말씀.
교장도 못 해보고 퇴직하는게 못내 서운타 하셨지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퇴직금 일부를 개인사정으로 놓치시고는 아예 삶의 의욕조차 없다
하실때,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그때 어머니하고도 사이가 많이 안 좋아지셨잖아요.
제 2의 황금기를 누릴 시기에 아버진 가장 험난한 상황에 부딫힌거죠.
인생의 반을 직장에서 남은 반을 가정에서 시작하는 댓가 치고는 너무 어렵고 고달팠을거란거
충분히 알고도 남아요.
당신의 열정을 직장에 반을 쏟고  남은 에너지를 쓰기도 전에 아버진 이미 쇠약해지고
말았으니 말이에요.
연금도 퇴직금도 바닥이 났을때,모든것을 잃은 자포자기한 심정들 .
억장이 무너진단말 그럴때 쓰일거에요.
그러나 아버지 잘 견디셨어요.
정말 장하세요.
쓰러지지 않고 서 계시기만 해도 장하세요.
욕심 없는 아버지께서 승리하신걸요.
그러니까 아버지,이제 그만 자책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행복해 지세요.

실망스럽게도 아코디언을 처음 보시며 썩 좋아하지 않았을때도 전 희망을 가졌어요.
아마 아버지 마음이 좀더 평안해지시면 아코디언을 가슴 깊숙히 안으실거란 희망요.
젊었을적 기억을 되살려 옛친구를 만나듯 기뻐하시고 즐겨하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죠.
누구하고나 금방 친해지는건 아니니까요
더구나 오래동안 함게 할 친구는 천천히 가까워 지는 법이거든요.
아버지께 그런 친구를 선물하고싶었어요.
악기란 충분히 그런 힘이 있다고 봐요.
저 역시 8년동안 풀룻을 취미로 연주하면서 가장 좋은 친구가 됏거든요.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건 모두 친구가 되는거 같아요.
소중한 가족, 소중한 이웃, 소중한 일,소중한 자연,소중한 취미.
아버지께서 소일거리로 하시는 농사일을 마치고 오셨을때의 연주는 아버지의 노곤한
심신에 피로를 녹여줄거구요.
기쁠때는 더없이 기쁘게,외로울땐 그 마음을 달래주어 충만감을 느끼게 하고,
슬플때는 구성지게 가락을 오르내리며
한차례 상념을 씻겨주어 모든것을 원래대로 다져놓고 지켜주는 믿음직스런 친구가
될 테니 두고 보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말에요.
어버지와 함께 화음을 맞춰 이중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환상의 듀엣도 된다면,와우.너무 멋지지 않아요?
그렇게 조금씩 작은 행복들을 만들어 간다면 아버지와 저의 퍼즐조각은  아주 큰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을까요.
행복조각이 많아지면 그림도 커질테니까요.

아버지 저는 말에요.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욕심이 더 많아지는거 같아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우고 , 더 많이 생각하고, 그래서 아주 많이 느끼고 싶어요.
에너지가 넘쳐서 그렇다구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마흔이에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나이죠.
그렇지만 항상 생각하는건 같아요.
바르게 열심히 살자.
늘 같을 수 없는 나날들, 그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삶이란 저마다 둥그런 실타래를 한개씩 가지고 풀어 가는거라고 생각해요.
실타래를 억지로 끊지 않고,더러 엉키고 아슬아슬하게 끊어질듯한 얇은 가닥이
나타나도 살살 달래고 조심스럽게 풀어나가면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거라는 믿음은 세상을
사는데 큰힘이 되지요.
아버지.
제가 비록 세상에 내 놓을 만큼 자랑스럽고 훌륭한  딸은 아니지만요.
세상의 다른 어떤 딸보다 우리 아버지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자신할수 있어요.
그리고요.
제가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한게 뭔지 아세요?
전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는 거에요.
마치 마술에서 풀려 나지 않은듯 나른하지만 그러나  점점 더 뚜렷하게 다가오는 
너른 평원의 푸른 잔디처럼요.
그런 영원한 꿈을 갖게 하신 분.
아보지는 제게 그런 분이거든요.
세상의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마술사.
꿈의 마술사.
멋지죠?
아버지.마술은 사라지지 않는거죠?
영원히 제 가슴속에 남아 계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