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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뒤 이혼?


BY 박예천 2015-06-09

                     

                      십년 뒤 이혼?

 

 

   

 엄마, 나는 이제 열일곱 형아라서 김치도 잘 먹지요?”

밥숟가락 들던 아들이 밝은 표정으로 자신만만해져 엄마인 나를 쳐다본다.

 “정말이네! 멋진 형아라서 이젠 시금치도 잘 먹지? 그치?”

나의 칭찬에 녀석은 어깨가 으쓱해져 평소에는 건드리지도 않던 채소반찬까지 젓가락질을 시도한다. 덩치는 산만큼 커지고 코밑에 거뭇한 수염 싹이 돋아났건만, 아직도 유치원생에게나 할 격려를 해줘야 알아듣는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 아들과 단 둘이 저녁을 먹는다. 주거니 받거니 일반가정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없지만, 의미 없는 혼잣말에도 성의껏 대답을 해준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그림으로 자리한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설거지 끝내고 욕조에 물을 받아놓았다. 아들의 등을 밀어주며 그동안 남편혼자 목욕시키느라 얼마나 진땀을 흘렸을까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진다.

언제 이렇게 많이 컸을까. 등도 펑퍼짐하고 팔다리가 길쭉해져 욕조 안이 비좁을 정도이다. 엄마를 믿고 몸 구석구석 척척 내맡기던 녀석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좋아라한다.

, 혼자 머리 감을 수 있지?"

네에! 나는 열일곱 살 형아라서 머리 잘 감죠?”

오늘따라 말끝마다 열입곱 형아라고 붙이며 잘난 척을 한다. 샴푸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들 입술에 붙은 열일곱이라는 숫자가 아련한 기억 속으로 나를 불러들인다.


인생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 이혼녀로 있어야 한다.

꼭 십년 전쯤의 일이다.

특수치료를 위해 일곱 살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떨어져 살던 때였다. 당시 나는 아들의 장애진단을 받은 후 정신적으로 불안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운명이나 팔자로 받아들이며 끌고 가려했으나 참으로 아이의 상태가 인정되지 않았다. 닥친 현실을 부인하고만 싶었고 그로인해 가족 간의 감정은 극도로 예민해지곤 하였다. 남편의 방황도 그 즈음 시작되었다. 어떤 대화로든 소통이 되지 않았고, 밖으로만 겉도는 상태였다. 부부간에 위기가 찾아왔다. 누구든 위로해줄 마음 벗이 필요했었는데, 마침 교회에서 알게 되어 가깝게 지내던 Y가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과학교사였다. 30대 후반의 나이로 평균적인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였다. 본인은 독신주의자라 했고 매사에 당당한 모습이 가끔 나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아들이 잠든 밤이면 우리는 전화로 긴긴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나의 한숨무게를 덜어주었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녀가 어느 날 밤 통화 중에 단호한 어조로 제안을 해왔다.

그러지 말고 너 이혼해라! 지금당장은 아이도 어리니까 좀 키워놓고 십년쯤 뒤에 헤어져!”

갑작스런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졌고 매사에 당찬 성격이라서 그랬을까. 마트에서 맘에 든 물건 고르듯 그녀는 쉽게 이혼 이야기를 전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선 여러 상황이 펼쳐졌다. 과연 나는 이혼을 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이대로 참고 살아야하나?

고민하며 대답을 미루는 내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다음 말을 이어간다.

어차피, 나는 독신주의자이고 집도 있으니까 평생 혼자 살 거야. 십년 뒤에 나한테 와서 같이 살자! 내가 집세는 안 받을게. 대신 직장은 자기가 알아봐!”

속전속결로 십년 후의 나의 삶이 결정되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 마음이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 푯대 없이 휘청거리던 쪽배가 마침내 등대 불빛을 만나 제 갈 길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는 시간만 나면 십년 후에 나의 이혼과 더불어 새롭게 이어질 삶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마치 십년만 지나면, 아들도 제 앞가림정도는 하겠거니 내 맘대로 정해놓고 들떠있었다. 더불어 펼쳐질 나의 자유로운 공간으로 훨훨 비상할 일만 꿈꾸었던 것이다.

십년이라는 유한된 시간이 주는 에너지는 대단했다.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부글거리는 분노의 상황이 닥쳐도 십년만 참자고 이를 앙다물었다.

실제로 조금씩 날개 싹이 돋아나는 것인지 등짝이 근질거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날이 오면, 깊이 감추었던 것들을 던져버리고 맘껏 퍼덕거리며 네 곁을 떠나리라!’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 남편을 향해 속으로만 음흉하게 되씹던 내용의 독백이었다.

 

팬티만 덜렁 입은 아들이 저벅저벅 욕실 문을 박차고 걸어 나온다. 머리카락을 제대로 말리지 못해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급히 수건과 잠옷을 챙겨들고 방으로 안내했다. 녀석은 아직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다. 넓적한 등판에 보습로션을 발라주려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로부터 십년 후에 내가 여기 있구나. 계획대로라면 나는 올 해 안에 이혼을 해야한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독신을 외쳐왔던 Y는 현재 한 살 연하 남편과 결혼 해 신혼재미에 푹 빠져있다. 십년 전 자신이 내민 이야길랑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서면계약서에 도장이라도 찍어 보관해 둘 걸 그랬나.

집까지 거저 주겠다던 그녀가 배신(?)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의 이혼은 불가피하게 무기한 연기된 셈이다.

당장 한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이건만, 어찌 나는 십년 뒤에 삶을 결정하고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던 것일까.


딩동! 초인종소리가 들린다. 외출했던 딸아이가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종이가방 하나를 불쑥 내민다.

짜잔, 엄마! 오늘이 20주년 결혼기념일이지? 축하해! 아빠랑 커피마실 때 쓰라구 샀지. 호호호

유명상표 머그잔 두 개를 높이 들고 소리 나게 허공에 박치기해 보이며 딸아이가 헤실헤실 웃는다.

아무래도 나의 이혼은 영영 물 건너 갈듯하다.

 

 

 


2015년 에세이문학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