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엄마로 산다는 것
어젯밤 우연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눈에 들어오는 제목 때문이다.
‘발달장애인 엄마로 산다는 것’이라는 자막이 나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얼마 전 모 방송사기자가 내게 인터뷰를 요청했던 일이 있었기에 더욱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아들의 치료실 학부모 두 사람과 나까지 셋이서 인터뷰를 했다.
이유인즉 마침 다음날이 ‘세계 자폐인의 날’이라는 것이다. 정작 엄마인 나도 여태껏 살면서 그런 이름의 날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그러면 그렇지 무슨 날이 되니 또 냄비에 물 넣고 반짝 끓여대는 속성이라니.
나는 진정성 있게 기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화면에 나올 실명이나 얼굴은 모자이크처리 해주겠노라 그 쪽에서 제안해서인지 막힘없이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다.
오래지난 과거의 상황들을 묻는 순간엔 잊었던 감정들이 본능적으로 되살아나 울컥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젠 눈물도 말랐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기자는 여러 가지 예전 일들을 물어왔다. 고통인줄도 모르게 잊혀져버린 지난 일들을 꽤 자세히 알고 싶어했다. 떠올리기 싫은 그 날의 여러 기억조각들을 모으며,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이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신경세포가 알아채고 반응을 하는지 가슴보다 몸이 먼저 울었다. 괜히 어금니 깨물거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나는 불안해졌다.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엔 어땠나요? 힘들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기자가 나를 향해 물어왔다. 어찌 힘들지 않았겠는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무게로 다지고 밟아서 간신히 묻어둔 것들을 꼬챙이로 다시 파헤치는 기분이었다. 다시 아팠다. 초등학교 담임에게 아들이 열아홉 대나 엉덩이를 맞았던 일, 일반중학교에 갔으나 과목마다 수업거부를 당했던 일등...., 오래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딱지들이 다시 꼬집히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뉴스에 방송된다던 나의 인터뷰부분은 전부 편집되고 말았다. 애초에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일이다. 교육제도의 현실이나 문제되는 부분까지 낱낱이 퍼부었으니 예민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묻지나 말던지, 분노가 치밀었다.
곧 ‘장애인의 날’이 다가온다는 이유로 이번 방송도 기획했을 것이다.
간혹 티브이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오면 나는 되도록 채널을 돌려버리는 편이다. 개선되지 않는 제도나 장애인들의 생활을 보며 극도로 우울해지는 내 감정 탓이다.
특별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어제의 방송을 보는 내내 역시 나는 진흙탕으로 쑤셔 박히는 기분이었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 엄마의 현 시점을 세세하게 보도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왔던 모든 발달장애인부모들의 독백인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이라는 그 말도 몇몇 어머니들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 엄마들과 동일시되어 아들보다 꼭 하루만 더 살겠다했던 나의 오래 묵은 심정도 그들과 함께했다.
방송에 나온 발달장애인들은 거의가 중증자폐를 겪는 이들이었다. 내 아들의 경우는 그보다 생활의 불편함이 좀 적다는 것 외에 솔직히 엄마의 마음은 다를 게 없다.
자식보다 ‘꼭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욕심을 당연하게 가져야 하는 엄마의 심정, 그걸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요즘 들어 나는 ‘꼭 하루만’이라는 말 앞에 한 마디 더 붙여놓으며 주문을 외우고 있다.
‘건강하게 꼭 하루만!’ 이렇게 말이다.
아픈 엄마는 아들에게 짐만 될 뿐이다. 아들을 살피고 도우려면 꼭 건강해야 가능한일이다.
그것은 비단 육체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신적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품어야 하고, 자신의 삶도 행복하게 유지시켜야 한다. 아들과의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기쁨도 충분히 누려야 한다.
지금까지 건강을 지켜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상황은 솔직히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외롭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은, 어느 부모인들 맘 편한 이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엄마’라는 이름자체가 헌신이며 희생이 아니던가.
세상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전쟁터이다.
어쩌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진한 감동과 사랑을 매순간 확인하며 사는 나의 경우, 그것이 발달장애인 엄마라서 가져보는 특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분명한 건, 발달장애인 엄마로서의 삶의 무게는 누구의 책임도 저주도 아니라는 것이다. 죄의식 속에 헤맸던 나의 지난날들이 얻어낸 결론이다.
일단 주어진 삶이니까 잘 버텨보자.
그냥 나는 엄마니까!
2015년 4월 8일
TV를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