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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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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떡이 되어


BY 박예천 2014-09-27

 

누군가의 떡이 되어

 

 

떡판 같은 얼굴이라고 딸아이가 키득키득 웃는다. 옆에 있던 내게도 보라며 노트북 화면을 들이민다.

얼짱이니 얼꽝이니 아이들만의 신조어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면 멍청한 어른으로 치부된다. 똑똑한 엄마이고 싶어 동조하듯 웃어줬다.

딸이 가리키고 있는 얼굴을 본다. 어느 연예인의 사진인지, 또래의 얼굴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요즘 십대들이 세운 미인의 기준에서 많이 떨어지는 얼굴구도인가보다.

특별히 혐오감을 줄 만큼의 인상도 아니건만 못생긴 얼굴이라며, 그냥 얼굴도 아니고 굳이 ‘떡판’이란다.

턱선이 알파벳 ‘V’가 되어야하고 눈은 왕방울만큼 커야 한단다. 콧날도 미간사이에서 산맥을 이루도록 뾰족이 날이 서있어야 미인이라고 한다. 백색의 피부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그래서인지 딸아이는 떡판이 되지 않으려고 날마다 거울을 끼고 산다.

아직 여고생인데도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과 손톱에 그림그리기를 한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엔 썬크림에 비비크림까지 덧바른다. 민낯이어도 곱기만 한 나이건만, 엄마인 내가보면 거의 떡칠수준이다.

 

이번엔 들여다보던 컴퓨터화면이 말썽인가보다. 마우스를 탁탁 몇 번 책상위에 치더니 짜증 섞인 말을 내 쏜다.

“아휴! 정말 이 컴퓨터 개떡 같네!”

작정이라도 했는지 알고 있는 떡들을 전부 동원시키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의 떡들이 딸아이의 부정적인 언어를 대변하는 일에 매도되었는가.

 

비단결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다가 이틀쯤 감지 않은 채 집에서 뒹굴던 휴일이면, 딸아이는 또 다른 떡으로 날 부른다.

“엄마! 나 지금 친구 좀 만나러 나갈 건데, 머리가 많이 떡졌나 좀 봐줘!”

머리위로 이름도 만만한 떡이 또 올라앉는다.

나풀거리지 않고 지성인 머리칼이 납작 엉겨 붙기라도 했느냐는 물음인데, 떡으로 표현한다.

 

요즘이야 마트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떡 전문점도 많이 생겨났지만 나 어릴 적에는 명절이거나 생일 같은 귀한 날이 되어야 맛볼 수 있는 게 떡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인절미의 경우를 보자.

찹쌀을 씻고 불린 후, 솥에 쪄서 절구에 찧기까지 몇 번의 공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방앗간에 주문만하면 배달까지 해주지만 예전엔 수작업이었다.

옥양목앞치마 두른 어머니는 쇠절구공이 허공에서 내리치고, 할머니는 부랴부랴 찹쌀뭉치를 뒤집었다. 물 한 번 바르고 고루 잘 찧어지도록 어머니와 찰떡궁합으로 박자를 맞춘다.

도마 위에서 일정하게 썰어놓은 네모들이 고물 옷을 입고 두리반에 가지런히 앉는다. 어린 나도 한 몫을 거들게 된 부분이 있었는데, 따끈한 인절미가 굳기 전에 줄맞춰 놓는 일이었다. 손님상에 내놓으려면 모양새도 신경써야한다며 할머니는 그 일을 꼭 내게 시켰다.

손끝이 야무지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빻고, 찧고, 주물럭대는 모든 공정에 자신을 온전히 내 맡겨야 일품 떡의 모양이 완성되는 것이다.

 

올해는 밤이며 도토리가 풍년이다.

며칠 동안 산에서 주워온 밤들이 제법 많다. 저녁상을 물리고 마주 앉아 남편이 겉껍질을 벗겨 넘겨주면 나는 속껍질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쌀가루 세 되를 빻아 밤 송편을 만들었다. 토종밤이라서 크기가 작아 껍질 벗기는 일에 손이 많이 갔지만, 고소한 맛은 끝내준다.

학교 수학여행 인솔자로 삼박사일 제주도로 떠난 남편은 그곳에서도 문자를 보내온다.

‘아! 밤떡 먹고 싶다!’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것을 한 접시 쪄주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떡 실신이니 떡을 친다느니, 부정적인 표현과 비방언어에 포함되느라 우리 ‘떡’들의 수난시대다.

그렇게 표현하는 이들은, 과연 누군가에게 진정한 떡이 된 적 있었는지 묻고 싶다.

밝고 좋은 말에 더 자주 섞어 써보면 어떨까?

‘말씀을 참 쫄깃하고 맛있는 떡처럼 하시네요!’

‘당신 말이 찰떡 같이 다 맞아!’

이렇게 나부터 말속에 시루떡 고물처럼 섞어 써봐야지.

 

 

2014년 9월 27일

밤송편 먹다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