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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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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탄신일


BY 박예천 2013-04-04

엄마 탄신일

 

 

 

 

이달 29일은 음력 삼월 스무날인 내 생일이다.

가족들의 무관심속에 걸핏하면 지나치기가 일쑤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뻔뻔스러움도 나이만큼 두꺼워지는지 이젠 대놓고 외쳐댄다. 

4월 첫날부터 눈이 마주치는 가족들마다 쐐기를 박았다.

제 방에서 공부에 몰두하는 딸아이에게 간식을 들이밀다가도 한마디.

“딸! 29일 엄마 생일이다. 알았지?”

화장실에서 큰 볼일 보느라 힘주는 남편을 향해서도 쫀득거리는 말투로 내쏜다.

“자갸! 29일 월요일 알지? 내 생일인거!”

남편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듣거나 말거나 나 혼자만 심각해진 어조로 다짐을 받는 것이다.


2층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온종일 들리는 공사소음 탓에 해롱해롱 정신이 나갔는지 장난기가 발동한다.

탁자위에 놓인 파란색 네임 펜을 들고 달력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29일엔 남편글씨체로 박아무개 생일이라고 깨알같이 적혀있건만, 나는 숫자테두리에 굵은 동그라미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아 숫자 꼭대기에 별 다섯 개를 표시했다.

빙긋 웃으며 달력에서 손을 떼려는 순간 다시 옆으로 화살표를 굵고 길게 이어 붙였다.

화살표 옆에 큼지막하게 써놓은 내용.

‘엄마 탄신일!’

괜히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오후가 되자 학교 갔던 유뽕이가 돌아왔다.

혼자만 심각하게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재 집안에 있는 단 한 사람, 아들을 달력 앞으로 끌어들였다.

최대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유뽕아! 여기 봐봐. 뭐라고 써 있지?”

“박ㅇㅇ생일이요!”

“아니, 화살표 옆에 말야. 요거!”

집게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콕콕 집어주었다.

“엄마 탄신일!”

“그래, 맞았어. 이 날은 엄마 생일이야! 유뽕인 선물 뭐 해줄 거야?”

녀석에게 뭔가 기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그냥 묻고 싶었다.

“케이크 사줄 거예요!”

그럼 그렇지. 역시 유뽕인 먹을 거면 땡이었다.


저녁나절 잘 마른 빨래를 개어 방마다 배달(?)을 하던 중 딸아이 책상 위에 달력을 흘깃 넘겨다봤다.

사전 홍보교육의 효과였을까.

탁상달력 4월 밑 부분 29일에 굵직한 펜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엄마 생일!’

흐흐흐..., 이정도면 대성공이다.


신혼 때는 곧잘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더니 흐리멍덩 세월이 갈수록 잊어버리는 남편.

자존심도 상하고 섭섭하기도 하여 혼자 훌쩍이는 날도 있었건만, 다 소용없다.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먹으면 그만이다.

생일 얻어먹기 위한 몸부림이 눈물겨울 만치 처량 맞다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나만 좋으면 된다. 내가 즐겁고 행복하면 에너지가 충전될 것이다.

그 쌓인 힘을 가족위에 베풀면 다시 또 따스한 빛이 스미게 되는 것이 가정이다.


설명이 장황했지만, 속셈은 생일 잘 차려먹고 싶은 단 한가지뿐이다.

내일부터 날마다 카운트다운 하듯 가족들을 향해 소리칠 것이다.

“잘들 알아두라구! 엄마생일 25일 전!”

국경일보다 그 어떤 공휴일보다도 중대한 날,

바로 엄마의 탄신일이라는 말씀!

과연, 전씨 세 마리(?)는 어떤 이벤트를 마련해 줄지 내가 더 궁금해진다.



 

2013년 4월 4일

달력에 생일 동그라미 치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