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꽃동서에게
어제 오랜만에 막내동서가 전화를 했었지.
“형님! 저는 둘째형님 생각이 자주 나요. 한 번 보고 싶기도 하구요.”
“나두 그래. 왜 아니겠어. 가족으로 산 세월이 십년이 넘는 걸.”
나도 그렇다는 막막한 대답을 남겨놓은 채, 우린 문득 자네가 그립다고 동시에 느꼈다네.
극단적인 결정에 이르기까지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바로 동서자신이라는 걸 알아.
심적인 고통에 힘겨워 하면서도 오히려 날 안심시켰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네.
‘형님! 저, 이혼해요. 내 걱정은 말아요. 나한텐 아이들이 있잖아요!’
남겨진 메시지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수차례 전화를 해봐도 전혀 답이 없어 서운하다가, 자네 심정이 이해되다가 세월만 흘렀다네. 부부간 문제가 법적서류로 마무리되었듯, 연결고리로 이어진 사람마저 정리하고 싶었겠지.
참 냉정한 사람! 우리사이 나눈 게 겨우 그 정도였단 말인가?
집안 행사이거나 명절에 잠깐 만나는 정도지만, 그때마다 보여준 호탕한 성격이라든지 우리 세 사람 며느리들 대표로 총대 메면서 피곤한 몸 쉬라며 시어른 몰래 좋은 자리 마련해 주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해.
아파트에만 살다가 작년 봄 우리 집이 이사를 했다네.
지난여름 애들과 서방님이 큰아빠 집이라며 놀러왔었으니 자네도 알고 있겠지?
아이들을 보니 눈물겹고 자네생각이 더 나더라구.
수영복 담은 비닐가방과 비상약 봉지마다 흘려 쓴 자네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어.
매년 같이 오던 걸음이건만, 남자 셋만 속초로 보내면서 자네 맘은 어땠을까.
요즘 난, 마당가득 삐져나오는 잡초들을 뽑느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
포기하고 풀밭으로 만들어버릴까 하다가도 눈에 거슬려 호미질을 하게 된다네.
어제 오후였던가.
아들녀석 피아노 학원 앞 담벼락 아래 나란히 줄지어 키 작은 흰 꽃들이 피어있는 걸 봤어.
눈에 익은듯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별꽃’이더라.
아침저녁 내가 호미 날로 동강내고 난도질 해댄 잡초 속에 끼어있던 꽃인걸 알았어.
한 집안의 며느리였다가 남의 사람이 되니 순식간에 여러 이름으로 매도되더군.
죽일 년, 몹쓸 년, 독한 년...., 여태 살면서 자네가 그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려 질 수 있음에 새삼 놀랐어.
어쩌면 집안 어른들마다 모여 입으로 내 쏘는 험담이 전부 나를 향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에 미치자 소름 돋더라.
만약 내가 동서상황이 된다면, 또 다시 저들은 입을 모아 세상에 ‘죽일 년’하나를 더 탄생시키겠지.
부부사이 이혼하기까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누구도 감히 판단하는 일은 금물이라고 봐.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 어느 한 쪽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거야.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 상처를 준 건 부모로서 무책임한 결정이었겠지만, 나는 어쩐지 ‘오죽하면...,’이라는 감정에 한 표를 보태게 된다네.
동서야!
별꽃을 짓이겨 죽이다가 자네가 떠올랐어.
물론 자네 인상이 청초하거나 순결한 모습이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야. 그건 자네도 인정 할 걸.
삐죽하게 키만 크고 서울토박이다운 도시여자 얼굴이었으니까. 안 그래?
잔디밭에 솟아난 잡초일 뿐이라며 뽑아 죽이던 내 행동.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꽃이니 무조건 적군인 것이지.
향기롭게 부서지며 하얗게 피어날 꽃망울을 기다려주거나 발견하지 못하고 죽이기만 했어.
자네의 이면을 인정하지 않고 나타난 결론에만 부정적 비난을 쏟아 붓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철저히 이방인처럼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 있다네.
당신들 가치관에서 벗어난 사람은 단칼에 적군이 되어버리고, 이도 저도 아닌 나는 비겁한 자네의 아군으로 속이 좀 불편하다고만 여기는 게 고작이지.
잔디밭 입장에서 볼 때, 별꽃은 무례하게 솟아난 적군에 불과하다는 표현이 맞는 건가?
동서야!
이렇게 불러본지가 얼마만인지.
삼동서 모여 형님, 아우보다는 이름 석 자 부르며 언니 동생 삼았던 옛 시간이 그립다.
같은 성씨 남자형제들을 남편으로 삼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넉넉히 맘 통했던 날들.
사람인연까지 무 자르듯 쉽게 동강날 수 있다는 그것이 못내 울컥해지는 이유다.
곧 서울 중심부로 아이들과 이사를 간다지?
간간히 소식은 전해 듣는다만 어찌 얼굴 맞대고 손잡는 정겨움만 할까.
보고 싶다. 넌 단 한 번도 내 존재가 확연한 적 없더냐?
무심한 여자 같으니.
우연히 연락이 닿는 날 목소리 들을 수 있다면, 손 위 형님자리는 날아갔으니 친구삼자 말할까한다. 네 생각은 어떠한지.
건강하게 잘 지내다오.
네 설움 깊이를 일찍이 내가 들었고, 자식 싸안으려는 모정도 알고 있다.
예전에 네게 말 했듯, 자식 앞에 당당한 어미로 서 있기를 당부할게.
이혼은 흉도 아니요, 누구의 죄는 더더욱 아닌 또 다른 인생의 선택이었을 뿐이니까.
이제 마당에 핀 별꽃을 함부로 찍어내지 않을 거야.
널 별꽃동서라고 부를까 해.
불쑥 맘 내키는 날 언제라도 전화해라.
내 번호는 그대로다.
안녕.........!
2011년 6월 8일
둘째동서 보고픈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