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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길 사람들 7 - 감자선생


BY 박예천 2011-05-31

          

              감자선생

 

 

우리대문 정면 기준으로 좌측 바로 옆은 시인의 집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시인은 오래전 작고했으니 시인의 아내집이라 해야겠다.

시인의 아내 집으로부터 옆집 또 옆집에 감자선생이 이사를 왔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손가락 꼽아보면 세 번째 집이 된다.

감자선생은 남편의 대학후배이자 막역지우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고등학교 국어선생으로 재직 중이다.

먼 데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공원길로 둥지를 옮기게 된 것이다.

 

그가 왜 스스로를 감자선생이라 지칭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하게 감자처럼 생긴 듯도 하고, 양평에서 교편생활 하며 짬나는 대로 농사짓는다더니 대표작물이 감자라는 뜻인가 짐작만 할 뿐이다.

성격 좋게 웃으며 나를 대할 때마다 ‘형수님! 형수님!’이라 부른다.

상대가 먼저 맘을 열어주니 편하기만 하다.

김포에 사는 진짜배기 막내시동생 말투와 행동이 흡사하여 가끔 혼동이 되기도 한다.

“형수님, 제 홈페이지 있는데 소개 해드릴까요? 자 여기요!”

소개해준 사이트의 방 이름을 클릭하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감자선생 국어교실’이라!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농사를 지으며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글들 속에 진솔한 삶의 냄새가 묻어나왔다.

 

재작년 지금의 아내와 만나 재혼가정을 이루었다.

양육하던 각 가정의 아이들이 새로운 형제로 다시 가족이 되고 졸지에 네 아이 아빠가 된 셈이다.

재혼한 아내와 나는 동갑이고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에 통하는 부분이 많아 대화의 공감대가 큰 편이다.

십삼 년 전, 속초에 이사 와 살기 시작한 나는 지금까지 이웃과의 왕래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인기피증이 있다거나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굳이 타인의 사생활 침해하기 싫었고, 교직에 근무하던 남편을 배려한 부분이기도 하다. 좁은 도시라서인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소문이 부풀려지곤 하는 걸 자주 경험했다.

하여,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이 전부였다.

감자선생일가족이 공원길 같은 골목길에 둥지 틀고 새 삶을 시작했으니, 이제라도 제대로 된 이웃지기 노릇을 해 볼 참이다.

 

감자선생 댁은 맞벌이하는 주말부부다.

토요일만 되면 양평에서 근무하던 감자선생이 속초 집으로 온다.

저녁상을 물리기 무섭게 부부는 단짝친구인양 손을 잡고 초인종 누르며 현관으로 들어선다. 당연한 절차처럼 차 한 잔을 주문(?)하고 쿠션에 기대거나 긴 의자위에 벌렁 드러눕기도 한다.

민낯에 편한 옷을 걸치고 있던 나 역시 푸짐하게 웃거나 핀잔을 주는 일에 거침이 없다.

불과 몇 달 만에 스스럼없는 가족이 되었다.

한 살 위지만, 선배라서인지 형이 된 남편은 콩 한쪽이라도 나눠야 할 기세로 동생인 감자선생에게 뭐든 챙겨준다.

냉장고를 뒤져 먹던 나물무침이라도 싸준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하물며 보약 팩까지 컵에 따라 나누어 먹는다.

오는 정 가는 정이라고 일이 이쯤 되면, 감자선생 쪽에서도 가만있질 않는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냄비를 통째로 들고 오는 적도 있다. 양쪽 집 아낙 둘 다 손이 커서 넘치게 퍼 담아 건넨다.

감자선생 덕분에 나는 생전 맛보지 못한 이웃사촌지간 정을 끈끈히 느끼는 중이다.

 

주말에 잠깐 들린 시간에도 편히 쉬지 않고 오래 전 마련했던 널찍한 밭뙈기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양쪽 선후배간 경쟁이라도 하는지 서로의 텃밭과 감자밭을 일구며 땀 흘린다.

잠시 본업이 농부로 변신을 하는 거다.

각자의 영농법(?)을 바탕으로 소신껏 재배방법까지 터득해 간다.

바깥양반들 땡볕 쬐며 낯빛 그을릴 때, 안사람들 끼리 마주앉아 미주알고주알 할 얘기가 한 보따리다.

억장이 무너지고 복장 터지는 푸념부터, 감동어린 시시콜콜 사연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수다한판 멋들어지게 풀어놓다보면 어찌나 속이 후련해지던지.

새삼 감자선생께 최첨단 아부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속으로 웃곤 한다.

 

 

낯설기만 했던 공원길에 이사 와서 일 년을 살아냈다.

잘 버티어낸 선물일까.

감자선생 댁이 막강한 우리 편으로 합류를 했다.

춘삼월 무섭게 내렸던 폭설 속에서도 골목길 눈 치우며 인사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생긴 거다. 쌓인 눈을 쳐다보다 노곤한 몸으로 지쳐있을 적에,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우던 그 한낮.

살가운 그림 한 장, 기억 속에 스크랩되어 있다.

감자선생 가족은 멀리 있는 친척보다 낫다고 말하던 바로 그 이웃사촌이다.

같은 골목길에서 살게 되는 날이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지만, 최대한 가식과 허물없이 지내볼까 한다.

이 세상 우연인 만남은 없다지 않은가.

 

저녁 설거지 끝내고 밤마실이나 다녀 올까보다.

대문열고 들어서 다짜고짜 커피한잔 내오라 하면 어떤 표정 지을까.

 

 

 

 

2011년 5월 31일

감자선생 댁에 마실 가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