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내는 사람들
“정말 어이가 없어요. 매사 모든 것이 자기식이고 편견과 아집으로만 가득 차 있다니까요. 결혼 전엔 그 정도의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추호도 들지 않을 만큼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성품이었는데......, 암튼 굉장한 이기주의를 지닌 것 같아요. 심지어 일곱 살 먹은 아들에게조차 질투를 느끼더라구요. 음식도 자기 좋아하는 걸 먹어야 하고, 집안 꾸미는 것 하나하나 자기 눈높이에만 맞춰야 하더군요.
집안일에 지치고 피곤한 날 좀 아프다고 말하면 뭐라는 줄 아세요? 자기는 더 힘들대요. 여기도 쑤시고, 저기는 저려서 미치겠다고 저보다 더 죽는 시늉을 한다니까요.
계속 이대로 참고 살아야 하는지 이쯤에서 돌이켜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네요. 아이들은 벌써 제 가슴으로 다 스며들어와 있어 극단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미안해지고 그래요. 애들이 가엾고 측은해요. 남편 안보고는 살아도 애들은 이제 놓지 못할 것 같아요.
첫 결혼 실패하고 재혼한 거라서 더 잘 살아보려는데...., 쉽지 않네요.
참! 이 남자 뭐라는 줄 아세요? 자기 직장 상사나 동료, 선후배 등등 좋은 사람만 넘친다는 거예요. 이해심 많고 배려 깊은 사람들이라고 극구 칭찬하더라구요. 아내인 저만 자기 맘에 들지 않다는 거지요. 그 말 듣고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남편이 뭘 잘못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구요. 맘 좋다는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이 남자 하나를 겪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다들 체념한 거예요. 그냥 애써 들추지 않고 맞춰주는 거죠.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으니 자기자랑 넘치게 하면 한 귀 열어놓고 흘려듣고, 억지 쓰면 귀찮으니까 들어주자는 식으로 말이죠. 워낙 특이하고 괴팍한 사람이라 제가 알아요. 안 그래요? 주변 사람들이 남편을 겪어낸다는.....,제 말이 맞지요? 그쵸?”
여자는 마른침 삼키느라 잠시 입술을 앙다무는 듯 했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고단한 삶 한 타래가 축축하게 묻어나왔다.
들어주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특별한 해결이란 없다.
철부지 아이보다 못한 언행으로 그녀의 가슴을 동강내고 저리게 만든 남편이라는 위인을 찾아가 귀싸대기 내지는 물볼기를 쳐 줄 것도 못되고, 법적 조치에 들어가 부부간 교통정리를 해줄 사안도 아니다.
주말부부를 하는 터라 남편 없는 평일저녁 숨이 막혀오면 나를 찾는다.
목 축이는 커피 한잔 이거나 은은하게 퍼지는 국화차가 전부인 탁자를 가운데 놓고 밤이 이슥하도록 그녀는 슬프다.
가로등불 은은한 주택가 골목길을 걸어 집에 오는 길, 나는 속으로 쓸쓸히 웃는다.
그녀의 남편을 겪어낸다는 주변사람들이 상상된다.
세상에 둘째가라면 버금가도록 지랄 맞은 성격을 어지간히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또한 내 곁에도 수두룩하다.
나야말로 구구절절 그녀의 저린 사연을 들어 줄 성품의 인간이 못 되는 것이다.
당장 지난 주말만 해도 그렇다.
회갑연세 넘은 교회 성가대 지휘자님을 향해 성질나는 대로 지껄이고 흥분한 꼴이라니.
당황해하는 그 할머니 표정에 한숨이 묻어나왔고, 아차 하는 순간 이미 삭히지 못한 말만 너덜너덜 예배실 안을 맴돌 뿐이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즉시 발포(?)하는 내 입술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지.
가족에게도 나긋나긋하지 못하다. 아이들에게 폭군이요, 남편에겐 악처다.
오죽하면 남편 소원이 애교떠는 마누라와 살아보는 것일까.
나이 사십 중반이면 뭐하나. 안으로 채워지지 못한걸.
연로하신 친정부모에게도 내키는 대로 지껄이고 악다구니쓰기가 일쑤다.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나 같은 주제가 감히 누구의 인생을 논할 것이며, 고충까지 들어준단 말인가.
에라이! 정신 차려라, 인간아!
들쑥날쑥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를 걷다보니 어느새 집 앞이다.
대문을 열지 못하고 나는 우뚝 제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긴다.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이 내게도 천지로구나.
나를 겪어내는 이들이 나의 시간을 채우고 인격마저 다듬느라 고생중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부족을 알게 되었으니 감사하자.
철 대문 고리를 돌리는 손길이 묵직하다고 여겨지며 맘 깊이 뻐근함이 전해진다.
철부지 아내를 겪어낸 남편,
변덕쟁이 엄마를 참아내는 아이들이 기다릴 내 집 돌계단위로 총총히 걸어 올라간다.
밤공기가 달다.
2011년 5월 27일
어느 아낙의 속앓이를 듣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