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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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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당에 (6)


BY 박예천 2011-03-01

         

       얼룩토끼 영랑이

 

 

마당 있는 집에 가면 토끼를 꼭 키우자고 아들이 노래처럼 말했었습니다.

집 앞 단골마트에 들렀다가 그 얘기를 하니, 아르바이트 하던 아주머니가 마침 토끼가 있다며 그냥 가져가 키우랍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그 집은 아파트 얻어 이사 가게 된 것이죠.

나무판자로 만든 토끼집까지 선뜻 건네주었습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던 작년 봄 일입니다.

 

감나무 밑에 토끼네 집이 생겼습니다.

이름을 짓느라 고민하다 아들에게 물어봤지요.

“유뽕아! 토끼 이름은 뭐라고 할까?”

“영랑이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름을 지어줍니다.

어릴 적 키우던 설악이와 영랑이가 생각난 모양입니다.

바둑강아지 닮은 얼룩무늬 토끼는 그날부터 귀여운 우리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집 토끼 영랑이랍니다. 사진기 앞에서 멋진 포즈!!!)

 

 

새싹 돋아 오르는 봄부터 잡풀 무성해지는 여름, 그리고 주황색 감이 말캉하게 익어가던 가을까지 편히 들어앉아 넣어주는 풀만 받아먹었지요.

혹시 탈출을 감행하여 자기 집에서 뛰쳐나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습니다.

정성껏 가꾼 채마밭 푸성귀나, 담장 곁 실하게 달린 열매들을 갉아먹을까 주인아저씨는 노심초사했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누렇게 잔디도 말라가던 어느 날.

사과궤짝만한 영랑이 집이 갑갑했을 것이라며 주인아저씨가 선심을 베풀었습니다.

좁은 마당에서나마 마음껏 놀아보라고 영랑이집 문고리를 풀어주었지요.

가뿐했는지 깡충거리며 녀석은 온 마당 안을 뛰어다닙니다.

어느 날엔 대문 옆으로 붙은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에서 한잠 자기도 합니다.

 

좁아터진 자기 집으론 다시 들어갈 생각이 없나봅니다.

장독대 앞 삼태기에 들어가 하룻밤 머물기도 합니다.

아무데나 몸 기대어 눕는 곳이 영랑이의 잠자리가 됩니다.

녀석이 돌아다니는 곳곳마다 건초더미가 널브러져 있거나, 양배추 잎사귀가 늘어져 있습니다. 맘 좋은 주인부부 덕에 마당 전부는 영랑이가 겨우 내내 독차지 하고 살았습니다.

 

보통의 토끼들은 사람이 다가서면 몸 움츠리며 경계를 하거나 도망갑니다.

헌데, 영랑이는 마당 쪽 문 여는 소리만 나면 쪼르르 달려온답니다.

주인아저씨가 외출했다 들어온다 싶으면 두어 바퀴 뱅글뱅글 주위를 돌며 따라다닙니다.

기특하게도 자기를 알아보며 반긴다고 자랑삼아 말하기에 허풍인줄 알았지요.

 

일찌감치 들어온 봄 햇살이 반가워 오랜만에 뜰로 나섰던 어느 주말.

메마른 잔디밭에 배 깔고 엎드린 영랑이가 보이네요.

혹시 알아들을까 이름을 불러봅니다.

“영랑아! 이리 와봐. 이리와!”

녀석이 정말 오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두 귀를 쫑긋 세우더니 마구 뛰어오는 게 아닙니까.

처음엔 우연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몇 번을 불러도 저한테 달려옵니다.

다리 쭉 뻗고 장독대에 걸터앉아 있으려니 다가와 발목부분을 툭툭 입으로 건드립니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눈까지 지그시 감은 채 졸고 있지 뭡니까.

자신이 토끼라는 사실을 잊은 것인지, 간이 부을 대로 부어 밖으로 튀어나왔는지 정말 재밌는 광경이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에도 영랑이에게 혼이 빠져 몇 번이나 거실과 마당을 들락날락 거렸습니다.

주인아줌마만 나가면 득달 같이 달려와 머리를 기댑니다.

조만간 티브이 출연이라도 시켜야 할 것만 같습니다.

강아지도 아니고 뭔 토끼가 저리 살갑게 굴까요.

곧 방송 탈 것 같으니 영랑이 매니저를 자청해야겠네요.

 

주인부부를 신뢰하는 마음에 넙죽 다가와 기대는 영랑이.

그 바람에 애완견 견우는 찬밥신세가 되고 말았답니다.

곧 봄이 깊어지면 곳곳에 미나리 싹, 참나물, 달래가 솟아 날 텐데 걱정입니다.

버릇없는 행동거지도 부모(?)책임이겠죠?

반듯한 토끼로 키우려면 가슴이 좀 아프더라도 감금시킬 수밖에요.

오래 비워두었던 녀석의 집 대청소를 주인아저씨께 부탁해야겠습니다.

채마밭거름으로 쓰겠다고, 녀석이 흘리고 간 새카만 콩알 똥들을 주인아저씨는 날마다 쓸어 모으고 있답니다.

 

우리 집 영랑이 다시 봐도 참 잘 생겼죠?

 

2011년 3월 1일

우리 집 토끼 영랑이 바라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