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콩밭에(2)
지난해 시월 말.
비닐봉지라도 꿰차고 내년엔 꼭 이삭을 줍겠노라 결심했었다.
꼬박 일 년이 지나 다시 그 공간의 가을이다.
거의 매일 지나치게 되는 콩밭에 나는 여름날부터 마음이 먼저 달려가곤 했다.
마치 노인에게 콩밭관리라도 임명받은 양, 온갖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적당치 못한 일조량도 불만이요, 하루걸러 쏟아 붓는 강수량에 콩잎이 죄다 찢어질 것만 같아 조바심부터 났다.
행여 콩밭 서성이는 노인을 만나게 되면, 동정어린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지 했는데 한 계절이 다 지나도록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괜히 옆에 드러누운 남의 집 밭뙈기를 흘끔거리며 작물상황을 점쳐본다.
비교분석하기에 이른 것이다.
튼실하게 살 오른 초록물기가 노인의 것들과는 달리 눈에 띄게 훌륭해 보이면, 살짝 시기심이 차오르기도 하다니.
나는 어느새 노인의 철저한 동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속셈은 가을걷이 후 콩알 몇 쪽이라도 거저 얻어 보겠다는 음흉함으로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워낙에 기름진 밭이라 하여도 그렇지.
어째 한 날도 이랑사이를 서성이는 날이 없었던가.
여름이 제 꼬리를 접고 서늘한 바람자락 드리우며 가을로 접어들 기미가 보여도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주인이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혼자서 별별 상상을 엮으며 이야기도 꾸며봤다.
그것도 아니라면, 노인부부에게 깊은 병환이 찾아온 것은 아닐까 역시 소설로 늘어진다.
심기만 하면 저절로 무럭무럭 자라주고 꼬투리 매달아 놓는 것이 노인의 농사작법인가보다.
하긴 작년에도 그랬다.
풍구질에 날려버리기 일쑤고 그나마 남아있던 알갱이들은 새들 입과 오가는 아낙들 손아귀로 들어갔지 않은가.
볼록하게 차오르는 행인들의 콩 주머니가 샘이 나서 올해 연초부터 아예 작정을 한 것도 나의 속내였다.
주인이 누구로 바뀌었든, 점찍어 놓은 그 밭에 콩알들만 꽉꽉 들어차면 그만이다.
타작 후 빈 밭 곳곳 구르는 돌 틈마다 샛노랗게 박혀있을 콩알을 모아야지.
벌써부터 실실 웃음이 나온다.
아파트단지사거리에 딱 맞물려있는 노인의 콩밭.
신호대기 중 정차된 차창너머로 틈만 나면 그 밭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작황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아 맘에 좀 걸렸지만, 나 주워갈 콩알은 남겠거니 했다.
언제고 백발성성한 노부부의 풍구질이 있어지면 곧바로 밭으로 들이닥칠 작정이었다.
아침저녁 서늘해지고 콩잎마다 누렇게 말라가는 중인데도 밭을 건사하는 손길이 없다.
달력은 시월 넘어 십일월로 들어섰건만 콩 타작을 하지 않는다.
노인이 깊은 잠에 빠져버린 걸까.
나는 괜히 애간장이 녹는다.
이제 슬슬 콩 이삭을 줍겠다는 욕심에서 놓여나고 있었다.
그저 노인부부가 밭 가운데 나타나 쇳가루 펄펄 날릴 녹슨 풍구라도 삐걱거리며 돌려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중이다.
아! 어느 늦은 가을날.
낯익은 자주색 편물조끼가 저 멀리 눈 안에 들어온다.
일 년 사이 조금 더 휘어진 말굽자석모양의 허리를 조아리며 콩알들 모으는 노부부.
변덕심한 날씨가 한 쪽 콩 살을 베어 물고, 득실거리던 벌레 떼가 또 한 입씩 떼어 먹는 바람에 거두어 담아 봐도 자루가 홀쭉하다.
오며가며 콩밭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가슴이 먹먹하게 저려온다.
뭔가. 내 핏줄도, 조부모는 더더욱 아닌 것을.
이삭 줍겠다던 야무진 결심을 한 해 더 보류하기로 한다.
도저히 노인의 밭에서는 아무런 엄두를 내지 못하겠노라.
친정어머니가 준 묵은 것 한줌 시루에 안치며 콩나물밥 해먹을 꿈이나 꿔 본다.
탱글탱글 콩알을 내년엔 만나보려나.
제발 노부부가 한 해 더 멀쩡하게 버텨주기를 마음만 콩밭으로 달려간다.
2010년 11월 25일.
콩 밭을 서성이던 노부부 생각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