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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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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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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지 마세요!


BY 박예천 2010-09-27

 

           건들지 마세요.

 

 

님!

그냥 가만 놔두세요.

제 몸 어느 구석 건들기만 하면 곧 터져버릴 겁니다.

머리카락 한 개든, 시커멓게 죽어간 새끼발톱 끝을 툭 쳐도 물기가 새어나올지 몰라요.

신체의 70프로가 수분이라 했던가요?

아니요. 저는 짠 내 품은 눈물만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한 몫을 하고요, 누군가의 서운한 말투도 목에 가시가 넘어갑니다.

죄다 슬픈 이유가 됩니다.

내가 살아 낸 자체도, 살아 버티는 현실도, 살아가야할 숱한 날들도 천근만근입니다.

가엽게 여기지는 말아주세요.

팽창한 수분은 바깥 햇볕에 일광욕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조금씩 말라갑니다.

때가 차면 증발되어 가루로 흩날립니다.

 

 

추석에 만난 할머니가 눈물의 근원지였을까요?

손바닥 만 한 요양원 구석방도 널찍하게 보일만큼 작게 구부러져 누워계시더군요.

얼굴 주름 속에 깊게 묻힌 할머니 눈동자를 찾느라 오래 매만졌습니다.

그래도 눈뜨지 않고 가느다란 숨만 쉽니다.

먼 길 달려온 손녀가 그토록 애잔히 부르는데, 귀 닫고 입 다물며 잠만 주무십니다.

이마에 맺힌 붉은 피딱지가 보입니다.

침대 위 창문가를 뛰어넘으려다 생긴 상처랍니다.

나는 압니다.

그립고 보고 싶으셨을 겁니다.

아직은 당신이 끼니 챙겨 먹여야 할 새끼와 손자들이 줄줄이 넘치기에 밥해주러 가야 한다며.

나 살기 버겁다고 엄살 피우러 갔는데, 할머니는 눈빛도 안 주십니다.

배고프다고, 허기져 할머니가 챙겨주는 주전부리 한 소쿠리 먹겠다며 응석 부리고 싶은데

벽 쪽으로 고개 돌리고 외면하십니다.

앙상한 어깨 끌어안은 채 할머니 품에 고개박고 이불만 축축하게 적시다 왔습니다.

오래오래 더 사시란 말도, 어여 가시란 모진 말도 못하고 먹먹한 가슴만 끌어안고 내 집으로 달렸습니다.

피고름 짜서 키운 손녀 딸년은 저 살겠다고 자동차 페달만 밟았습니다.

차라리 안 볼 것을 그랬습니다. 일부러 잊은 척 살 걸 그랬습니다.

 

 

칠순의 아버지도 안타깝습니다.

형제지간 아픈 사연일랑 버리고 남은여생 오남매 정만 나누며 사시라 당부했는데,

당신 고집만 피우십니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일까요.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 다들 맘껏 누릴 수 없었는데.

원망 섞인 음성이 높아질 때마다 자식인 저의 애간장이 녹습니다.

그리 살지 마시라고, 용서하고 화해함이 옳다고 절규를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자식 내 맘대로 안 된다지만, 굳어진 부모 맘 녹일 재간도 없네요.

누워계신 할머니 온전한 정신이라면, 자식들 화목하지 못한 모습 좋아 하실까 설명 드려도 꿈쩍도 않으십니다.

진정한 효는 형제지간 끈끈한 사랑이라고 입이 마르게 외쳐도 소용없더군요.

요양원 할머니 뵙고 오던 무게의 몇 배로 설움 덩어리가 몸 안을 채워옵니다.

 

 

유일하게 위안 받고 있는 신앙생활.

그것도 남편에겐 걸림인가 봅니다.

집안일 소홀히 한 것도 아니요, 밖에 나가 춤바람에 노름 하다 온 것도 아닌데, 찬양연습 후 들어온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냅니다.

입에 담지 못할 역정을 내며, 기독교 전체가 욕먹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기독교인이랍니다.

나는,

그것으로 버티는데 말이지요.

하나님을 만났기에 헌신할 줄 알았고, 베풀어야 함도 배웠고, 참아야 하는 것도 느껴 가는데.

아들의 장애도, 어떠한 역경이 온들 굳건히 자리를 지킨 것은 남편이 침 튀기며 욕하던 바로 그 기독교 때문이었는데요.

나의 부실함이 하나님을 이기주의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명절이면 요령피우고 핑계도 많은 동서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어느 해엔 입덧이다, 발목을 삐었다는 이유로 오지 못했으나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번에도 아파서 못 온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매번 저만 허리 휘게 일을 많이 해서 섭섭한 것은 아닙니다.

왜 꼭 나한테는 전날까지 오겠다고 출발할 때 문자하라면서, 시댁에 도착하면 시어머니께 전화로 못 온다 할까요.

뒤통수 맞는 격으로 말이지요.

어머니께만 말하면 만사 통한다는 생각인지 정말 알 수 없는 행동입니다.

사정이 있다면 동서지간 이해를 구하고, 제가 어머니께 의논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을까요?

맏이인 제 위치가 그동안 얼마나 가볍고 우습게 보였으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런 것일까 속이 아픕니다.

 

 

님!

작정이라도 한 듯 저에게 달려든 우울입니다.

뭐 대단치도 않은 것들이라고 치부해도 되겠지요.

허나 아픕니다.

제발 저를 건들지 마십시오.

속울음이 바글바글 끓다가 졸아붙어 딱지가 앉더라도 기다려만 주세요.

 

 

까칠하게 날 세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뭉쳐진 설움 한 덩이 안고 저도 얼결에 묻어가렵니다.

하늘까지 참 높습니다.

 

 

 

 

2010년 9월 27일

설움 깊은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