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 여부를 감지하는 센서 설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187

효도 막 심한 남자


BY 박예천 2010-08-11

          

          효도 막 심한 남자

 

 

 

누군가 말하기를 효자인 남편과 사는 것이 무척 힘들다 했다.

같이 사는 남자 역시 대충 효자가 아닌, 그야말로 효도가 마구 심한 아들 축에 낀다.

하여, 우스개로 정해본 것이 일명 ‘효도 막 심한 남자’이다.

불효막심한 자식과 정 반대된다는 뜻으로 빗대어 붙여본 거다.

부모님을 향한 사랑이 어찌나 지극정성인지 가끔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쯤으로 가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시부모에게 효를 강요하거나 지시하지 않지만,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의 효과가 충분하다.

흔한 예화로 어머니와 아내가 물에 빠지면 누굴 건질까 하는데, 단언컨대 남편은 촌각의 망설임 없이 나를 본체만체 엄니 먼저 구할 것이다.

아내야 다시 장가가서 얻으면 된다지만 어머니는 오로지 한 분이라 말 할 것이다.

묻지 않아도 그 답이 나올 것이 자명한 남자다.

 

며칠 전, 시어머니로부터 복숭아 한 상자만 택배로 보내달라는 전화를 남편이 받았다.

아들집 놀러 오셨다가 양양 과수원에서 맛본 것이 좋았노라고.

차로 이 삼 십분 거리에 있는 단골 과수원 할머니가 포장해준 상자를 들고 저녁나절 들어왔다.

그곳 거래처 택배사가 있을 텐데 부탁하고 오지 그랬냐는 내 말에 일순간 째려본다.

남을 어찌 믿느냐는 말이다.

남편은 상자를 열더니 한 알씩 포장하기 시작한다. 배달원이 함부로 다루면 으깨질 수도 있다며 꼼꼼대왕 본연의 자세로 임한다.

늘어놨으면 혼자 다 알아서 마무리 하던지, 아내를 향한 주문사항이 많다.

뽁뽁이 비닐은 어디 있느냐, 신문지는 넉넉한 것이냐며 입만 바쁘다.

결국 지시는 효자의 몫이고 실질적인 작업인부는 아내인 내 차지다.

할 줄도 모르면서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아휴! 차라리 내가 다 할게요. 저리 비켜요!”

지역정보지 신문 뭉치를 많이 모아두길 잘 했다.

몇 십 개 복숭아를 한 알씩 정성껏 포장했다.

미안했던지 옆에서 상자에 차곡하게 쟁여 넣는다.

틈이 생기면 굴러다닌다며 복사 집 할매가 우리 먹으라고 준 덤까지 꽉 차게 담는다.

마누라 포장솜씨가 만족스러웠나보다. 비닐테이프 붙인 상자를 밀어놓으며 흡족히 웃는다.

 

다음날 시어머니 전화를 받는다.

“복숭아 잘 받았다. 네 시누가 그러더라. 과수원에서 이렇게 정성껏 포장도 해줬다고 말이다.”

“어머니, 그거 제가 하나씩 다 포장한 거예요!”

“뭐라고? 어쩐지 상한 거 하나 없이 말짱하게 잘 왔더라.”

“엄니아들 효자인거 잘 아시잖아요. 낱개 포장 다시 하라고 명령하던 걸요.”

평소 맏아들의 성품을 아는지라 통화 속에 남겨놓은 며느리의 보고사항 듣고는 호탕하게 웃으신다.

자식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 찬 음높이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내 남편이 극심한 효자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대충 무늬만이 아닌, 마구 심한 것이라는.

효도 막 심한 남자는 아내에게 며느리의 도리도 은근히 강요한다.

특히나 빼먹을 수 없는 것이 부모님과 함께 할 때 아침밥 하는 일이다.

손아래 동서들이 있고 시누이가 왔어도 아침상은 맏며느리인 내가 하길 원한다.

특별한 행사로 모였던 날에 늦잠이라도 잘까 새벽부터 나의 잠을 끊으며 깨운다.

도리이며 사명인양 부엌으로 내 몰아야 직성이 풀리는 오랜 근성이 있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 변했어도 아침밥상은 며느리의 몫이라고 성문화된 법령이 전국적으로 공포되기라도 했는지.

스스로 하려던 일도 남편이 채근하면 반감이 생긴다.

비 들자 마당 쓸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어쨌거나 자발적이든 수동적이든 최선 다해 임하는 며느리로 살았음을 자부한다.

시댁에 이 만큼 했으니 친정도 똑같은 분량대로 대접하라고 그에게 요구한 적 없다.

진심을 알아차렸는지 남편은 내 부모에게도 정성을 다한다.

어쨌거나 불효막심한 남자와 사는 것보다 수족이 힘들더라도 효도 막 심한 이와 지내는 편이 좀 낫다.

빈 말일지라도 울 시어머니 나만 보면 하시는 말씀.

“네가 최고다! 너 없으면 어찌 사누.”

남편 덕에 덩달아 효부가 된다.

욕심나는 것은 아비의 효심이 대물림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늘 보고 자랐으니 분명 내 자식들도 효도가 그냥 대충이 아닌 막 심한 상태로 자랄 거다.

정이 철철 넘쳐 온 핏줄 챙기려 드는 아들 녀석이나, 효심의 정도가 최대치인 남편 사이에서 헐레벌떡 복에 겨운 여인이 나다.

이토록 수고하고 애씀이 헛되지는 않겠지.

 

 

 

 

2010년 8월 11일

효심 지극한 남편을 쳐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