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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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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별곡(母子別曲)


BY 박예천 2010-07-07

모자별곡(母子別曲)

 

 

 

 

열두 살 아들이 울고 있습니다.

열두 해 키운 어미는 자식이 왜 우는지 여태 이유를 모릅니다.

갓난아이도 기저귀를 갈아 달라, 젖 먹어야 된다며 표시된 울음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학교 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옷을 입지 않겠다, 가방도 메지 않겠다고 뿌리치며 웁니다.

저는 이럴 때 진땀이 납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답하지 못하는 아들을 달래다 제가 먼저 펑펑 울고 싶어집니다. 

간신히 비유맞추며 엄포 놓아 자동차 시동을 걸고 조수석에 태웠습니다.

학교 가는 내내 구슬프게 또 우네요.

괴롭히는 친구가 있는 것인지, 선생님이 무서워 그러는지 말을 못하니 답답하지요.

교문 앞에 도착해서 힘껏 안아주며 이제 괜찮지? 엄마 일찍 데리러 올게.

겨우 이 말만 했습니다.

운동장 가운데로 무겁게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 보다가 선생님께 문자를 띄웁니다.

울고 갔으니 좀 지켜봐 달라고.


집에 돌아와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 돌리려는데 자꾸 눈앞이 흐려옵니다.

바퀴달린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마다 눈물이 떨어집니다.

또 한 번 어미 된 자의 무능력함을 실감합니다.

낳았다고 어미입니까.

키웠다고 어미인가요.

자식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진정한 어미라는 자책의 목소리가 가슴팍에서 메아리칩니다.

깊은 산골짜기 피토하듯 울어대는 소쩍새의 울음에도 이유가 있답니다.

솥이 작다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라는 슬픈 의미입니다.

무논바닥이 떠나가라 여름밤 울어대는 개구리울음도 제 짝을 찾겠다는 소리랍니다.

미물의 울음에도 이토록 갖가지 뜻이 담겨있는데, 저는 무지렁이만도 못한 가 봅니다.

아들이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왜 통곡하듯 울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말이지요.


녀석이 울고 학교 간 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교실에서 내내 훌쩍이고 있을 모습만 아른거려 피곤한 몸 의자에 편히 앉지도 못합니다.

좌불안석 서성이다 반나절을 보내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지요.

아들과 얼굴을 마주한 채 만져보고 눈빛이라도 확인해야 안심하게 됩니다.


속 시원히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친구 개똥이녀석이 자꾸 때리니 엄마가 혼내주라고, 학교가기 싫으니 놀러가자 떼라도 쓰면 다 들어 줄 텐데요.

그 까짓 학교 하루 땡땡이 치고 바닷가에 가서 마구 뛰놀든지 설악산 케이블카 신나게 타고 오지요 뭐.

아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런 모든 것 재잘재잘 말 할 수 없어 눈물에 담아 흘립니다.


하늘빛이 잔뜩 흐린 날.

꼭 오늘처럼 아들이 이유 없이 오래 울고 간 날에는, 제 몸 숨길 곳을 찾고 싶어집니다.

동굴에 갇혀 녀석이 못다 울고 간 2절 울음을 마저 울었으면 합니다.

꺼이꺼이 모자(母子)가 울어대는 울음은 학교에서, 집에서 돌림노래로 울려 퍼질 겁니다.

이제껏 없는 새로운 노래가 되어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르라고 차라리 목 놓아 울고 말 것입니다.

코가 맹맹하도록, 눈알에 핏발서도록 아들과 함께 울음 섞인 노래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봄 산에 두견이 종달새도 즐겁게 웃는다 하지 않고, 새들이 운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아들과 끌어안고 울어댄들 한데 섞이면 노래가 되지 않을지 요상한 생각을 해봅니다.


언젠가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저 녀석에게 우리가 빚이 많은가봐. 그래서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거 같다. 살면서 내내 갚아야 할 만큼 말이지.”

살면서 내내 갚아야 할 분량인데,

간파할 수 없는 울음 몇 번에 벌써 지쳐가려는 기미가 보이는 못난 어미가 되고 맙니다.

녀석에게 진 빚을 다 갚으려면 아직도 까맣게 멀었는데.


아!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오는 군요.

아들은 목이 뻑뻑하도록 흐느끼던 울음을 좀 그쳤을까요.

식은 밥 된장국에 말아 얼른 떠먹고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손 모아, 입 모아 모자지간 부를 노래가 아직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2010년 7월 7일

아들이 울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