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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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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꿉놀이 중이다


BY 박예천 2010-07-06

 

                나는 소꿉놀이 중이다



 

소꿉놀이 같지 않느냐고 어제 저녁엔 내가 먼저 물었다.

기역자로 된 조리대에 나란히 서서 남편은 버들치튀김을 하고 나는 매운탕거리 준비 중이다.

신혼 때 역시 그랬다.

시부모님과 살던 중이었건만, 그는 주저 없이 부엌으로 들어와 내 옆에 서있길 좋아했다.

파 다듬거나 생선 비늘 벗겨주는 일을 자청하며 시어머니와 내 사이에 끼어들었다.

친정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림이다.

귀하신(?)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다니. 뭣 떨어질 일이다.

속초로 분가한 생활에서도 여전히 남편은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서 있곤 했다.

냄비에 양념 떠 넣거나 혹은 숟가락으로 찌개 간 봐주며 얘기를 나눈다.

넌지시 내 얼굴 쳐다보더니 “우리 꼭 소꿉놀이 하는 거 같지 않니?” 깔깔 웃는다.

부모님을 떠나 처음으로 꾸며진 보금자리가 마치 소꿉놀이 하듯 느껴졌나 보다.

세간도 허술했고 부엌살림은 시댁에서 쓰던 것 덜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몇 번 이사를 하고 지금의 단독주택으로 오게 되면서 얼마간 잊었던 그 말이 다시 나오고 있는 중이다.

좁은 텃밭에 종류 별로 자란 푸성귀들 뜯어 다듬고 우물가에서 씻는다.

일차적으로 물기를 뺀 것들이 바구니에 소복이 담겨 집안으로 들어온다.

아무리 신토불이 산지직송이라지만 끝내주는 초특급 배송이다.

똑똑 도마 위에 햇마늘 서너 쪽 짓뭉개는 나를 향해 그가 또 말한다.

“야! 이거 완전 소꿉놀이 같지 않니? 풀 뜯어와 송송 썰고 말이야...하하하”


나 어릴 적 정말 그랬다.

소주병 뚜껑 모았다가, 아니면 사금파리 뭉툭하게 깨고 갈아 솥단지 만들고 놀았다.

당골 부잣집 손녀딸이나 되어야 플라스틱 형형색색 장난감을 만져보는 거다.

앙증맞은 냄비들과 소쿠리를 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꾹 참고 골목길 내달렸던 기억이 난다. 

뒤란 화단에서 봉오리 맺힌 백합을 싹둑 잘라 연필 깎는 칼로 썰어댔다.

이제 막 꽃 떨어진 애호박도 따와야 소꿉놀이 안성맞춤 요리가 끝난다.

대문 옆 사랑방 굴뚝아래 담벼락 밑을 박박 긁다보면 곱디고운 황토가 모인다.

체에 거르듯 거친 돌과모래 골라내어 떡 빚고 밥도 짓는다.


소꿉놀이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할분담이다. 신랑각시는 꼭 있어야 한다. 가족구성원을 단단히 이루어야 놀이의 감칠맛이 나는 것이다.

어머니는 집에서 밥하고 애기 본다. 아버지는 들일 논일 돈 벌어 가장노릇 잘 해야 고운 모래로 뜸들인 밥 한술이라도 얻어먹는다.

애기는 깔아놓은 자리에 누워 앵앵거리고 질기게 울기만 하면 된다.

나는 각시 되고 맘에 들던 사내 녀석이 신랑까지 되어준다면 금상첨화다.

도란도란 몇 마디 나누며 속내 들킬 듯 헤벌쭉 웃는 것도 잠시, 금세 시간이 가고 대장 녀석이 역할 바꾸기를 하란다.

좋으나 싫으나 소꿉놀이영역에서 지속된 참여를 허락받으려면 어떤 배역이든 불평 없이 소화해야 한다.

그저 누워 징징거리기만 해야 하는 갓난아이 역은 서로 싫다 등 떠밀곤 하였다.

저물도록 놀다보면 밥 때가 되었다고 곳곳에서 어머니들의 음성이 들린다.

사위가 어둑해진 것도 모르고 땅따먹기에 넋 빠져 있던 그날의 어머니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마릿골 학교마당이 쩌렁쩌렁 울려왔었지.

이제 그만 집으로 오라고, 어서 들어와 밥 먹고 쉬어야 한다고.

 

 


남편과 부부로 만나 살면서, 차라리 소꿉놀이였으면 했던 날들이 있었다.

닥쳐온 위기를 이겨 낼 기운이 없어, 그저 시간만 되돌리고 싶다는 막연하고 허망한 손짓.

마릿골 토담 옆으로 줄달음쳐 달려가 신랑각시 역할 바뀔 순서라며 발 빼고 싶었다.

그만 놀고 집으로 돌아와 쉬라는 어머니 목소리 들려오기를 울먹이며 기다렸었다.

내 처한 꼴은 해가 저물고 어둡다고, 허기져 배고프다며 지긋지긋한 소꿉놀이에서 건져주었으면 했다. 

한숨 깊어가던 몇 날의 해가 바뀌어도 끝내 어머니는 소꿉놀이에서 내 이름을 불러내주지 않았다.

숱한 저녁 해가 기울고 밥 때가 여러 번 지났어도 딸을 부르러 나오지 않았다.

하여, 나는 역할교환도 끝맺음도 없는 소꿉놀이를 이제껏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 소꿉놀이는 절대 바뀌지 않을 배역만 고집하는 사람들로 똘똘 뭉쳐있다.

나 같은 남자와 살 멍청한(?) 여자 너밖에 없다며 남편은 각시역할에 나를 묶는다.

사먹는 음식 맛이 엄마만 못하다고, 딸도 밥 얻어먹으려면 엄마는 내 몫이란다.

세월 흘러 몸이 커가도 징징대며 울 수 있다고, 아들 녀석은 애기역할만 하겠단다.

다 자란 아들의 낯 씻기고 코풀어주며 내가 붙이는 말꼭지. 우리애기 멋지네!


남편과 내가 꾸린 버들치요리가 완성되었다.

고소한 튀김과 칼칼한 매운탕 냄새가 집안에 넘치게 진동한다.

주말오후에 부자지간이 계곡을 휘저어 잡아온 일급수에만 산다는 물고기다.

식탁에 잘 차려 놓고 소꿉놀이 일원들이 함께 모여 앉는다.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을 송송 매달고 매운탕 떠먹는 신랑역할 사내가 맛있어 죽겠단다.

딸과 아들역할인 아이들도 아빠손길 버들치튀김을 아작아작 맛나게 먹는다.

먹는 세 사람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각시역할 여자의 한마디.

“자기야! 우리 꼭 소꿉놀이 하는 거 같지 않아?”

요즘 남편보다 내가 더 자주 건네는 말이다.


세상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던 천상병시인처럼, 세상 끝 날이 되면 오달지게 재미났던 소꿉놀이였다고 할 수 있으려나.

 

나는 지금도 소꿉놀이 중이다.

영영 끝날 기미가 없는.






2010년 7월 5일

버들치 잡아 소꿉놀이처럼 먹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