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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모(師母)님의 하루


BY 박예천 2010-06-28

 

    어느 사모(師母)님의 하루



“휴일인데 저 때문에 사모님 쉬지도 못하시고, 죄송해서 어쩌지요?”

현관문 들어서며 그녀는 신발을 벗지도 못한 채 고개 조아린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내 손까지 덥석 잡으며 환하게 웃는다.

남편학교 학부형이라는 이름이전에 절친한 어른의 지인인지라 왕래가 있던 분이다.

지역에서 꽤 큰 규모의 병원장 부인이기도 하다.

며칠 흐릿하던 장마기운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일요일 오후, 학교일로 의논할 일 있다며 우리집을 찾았다.

밖에서 만나라는 내 말에, 이사도 했으니 초대 겸 오십사 남편이 청한 것이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다.

후줄근한 티셔츠에 고무줄 반바지 입던 평소와 달리 스커트라도 갖춰 입고 그녀를 기다렸다. 


몇 해 전, 산부인과 수술로 입원했을 때 잠깐 보고 이번이 두 번째다.

여전히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짙은 화장으로 결점을 가리지도 않았고 넘치는 장신구도 없었다.

시원한 샌들과 맨발의 편한 차림새인데도 분위기가 남달랐다.

명품가구 하나 없는 내 집이 오늘따라 자취방으로 보인다.

그녀의 눈에 우리집 살림살이가 어떤 빛깔로 비춰졌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소품들로 여기저기 채워진 집안이다.

어디 중고가구점이나 오일장날 싼값에 구했던 물건들만 넘친다.

“사모님 점심은 드셨지요?”

자꾸 내게 ‘사모님’이라 부르며 공손히 대하니 말더듬이가 된 것 마냥 음성이 떨려온다. 시선처리도 어렵고 화끈거린다.

 

 


의사 사모님과 교사 사모님이 거실에 앉았다.  

사이에 남편이 끼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다.

역시나 거침없고 폭넓은 식견에 또 한 번 놀란다.

역사, 철학, 정치, 종교, 시사 등등. 어떤 분야든 막힘이 없다.

데리고(?) 사는 내 남편 잘난 것이야 일찍이 알았던 사실이지만, 그녀의 잔잔한 속내에 나는 기가 죽고 만다.

의사선생님의 안부를 물으니 외국으로 등산 가셨단다.

양쪽 집 생활문화가 완전히 딴 세계 사람들이다. 해외여행 한 번 못해본 나는 그저 속으로 허허 웃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학교와 학생에 관한 이야기로 흐르자, 예의상 자리했던 거실에서 가만히 빠져나왔다.

강아지 견우를 안고 마당 서성이거나 장독대 근처에서 멍하니 앉아 사색에 잠겨보기도 했다.

 


저 여자는 오륙년 전쯤, 나의 서글픈 겨울을 알고나 있을까?

자동차가 없어 대중교통만을 이용했던 시절이었다.

아들 손잡고 치료실 여러 곳을 다녔다.

한 시간, 혹은 조금 더 되는 동안 대기실에 앉아 녀석을 기다리곤 했다.

인지치료실엔 대기실이 없었다. 선생님 댁에서 이루어지다보니 근처 대형마트 돌거나 은행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했다.

다른 계절은 견딜 만 했는데 바람몰아치고 손발시린 겨울이 문제였다.

아들을 치료실에 들이밀고 추적추적 걷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산부인과 정문이다.

칼날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어 어디든 들어가고만 싶었다.

성탄절이 가까웠는지 건물입구엔 거대한 트리장식과 오색전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진료 받을 목적도 아니면서 얼른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히터가 언 몸을 녹여준다.

일층로비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산부인과 접수처와 마주한 소아과 대기실로 갔다.

최대한 구석 푹신한 의자위에 숨듯이 앉아 책 읽거나 낙서수준의 글을 썼다.
그날이후 거의 매일 나타나니 소아과 접수담당 간호사가 환자 뜸한 시간 나를 빤히 쳐다본다.

묻지도 않은 말을 내 쪽에서 먼저 했다.

“저, 이 근처에 자주 오는데 여기서 한 시간만 쉬었다가도 되죠?”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나는 괜히 걸인이 된 기분으로 참담해졌다.

나중에 수술 차 입원하던 날, 어찌어찌 소식 듣고 연결되어 병실을 찾아온 사모님.

푸석한 얼굴과 수세미 머리를 하고 마주앉은 나는 또 부끄러워 숨고 싶어졌다.


우리집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다 내게 물어왔다.

"요즘 뭐하며 지내시나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니 곁에 앉은 남편이 대신 말한다.

“이사람 글 써요!”

글을 쓴다는 말에 “아하! 서예를 하시는 군요.”한다.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대변인 인 듯 남편이 계속 설명해준다.

“아뇨, 저기 상패들 보이시죠? 이사람 수필 써요. 인터넷 들어가면 볼 수 있는데.....”

아예 이젠 팔불출마냥 마누라 홍보대사까지 자청했다.

속된말로 쪽팔린다는 표현 지금 해야 맞는 거다. 글 쓴다는 그 사실에, 나는 진짜 엄청 쪽팔렸다.

취미로 그냥 붓글씨 배우러 다닌다고 말할 걸 그랬나보다.


남편 덕에 얻어진 이름, 사모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어색하고 듣기에 불편하다.

여태 나를 세울만한 이름 하나 만들지 못하고, 누구의 아내인 사모님이라니.

오늘은 사모님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이 그저 초라하기만 하구나.


뼛속 시리던 그 몇 년의 겨울.

진짜사모님 병원건물에서 언 몸 녹이며 히터열기에 감사했던 짧은 순간처럼 삶을 구걸하는 기분이다.

 

모든 것이 남편을 사모(思慕)한 죄로다.


 


 


2010년 6월 27일

사모님이라는 호칭에 멍해지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