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집
대문을 중심으로 왼편에 시인의 아내가 살고 우측은 좀처럼 내부파악이 힘든 집이라 하겠다.
커다란 이층집에 홀로 지내니 시인의 아내는 그렇다 치고, 우측 집조차 아이들 소리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쥐죽은 듯 적막강산인 두 집 사이에 끼인 우리집만 만날 소란스럽고 정신없다.
더구나 사내 녀석 티를 내느라 아들은 계단으로 옥상으로 놀이터삼아 뛰어논다. 마당에 내려와서도 구석구석 헤집으며 말썽을 일으킨다.
장독대 옆 수돗물은 틈만 나면 풀장이었다가 수족관도 되었다가 용도변경을 일삼는다.
모래한줌 우물바닥에 마구 뿌려 놓곤 한다. 그 꼴을 자주대하니 부드러운 음성일 수가 없다.
양쪽 고즈넉한 이웃들에겐 미안하지만 아들을 제압하게 위해 남편과 나는 목소리가 커진다.
시인의 아내 집은 뒤란을 우리마당과 마주하고 있어 덜 미안한데, 또 다른 옆집이 문제다.
낮은 담장너머로 서로의 안채 상황이 다 들여다보인다.
먼저 살던 주인이 전해주기를 자매와 형부가 사는 집이라 했다.
내가 아는 전부가 그것뿐이다.
주방 창문 곁에서 도마질이라도 하다보면 대문 드나드는 유일한 가족구성원 세 사람이 자주 보인다.
플라타너스 잎이 창문 가리고 있어 흘끔거리며 그 집을 들여다보곤 했다.
오십 초반쯤 되었을 자매와 중년의 남자가 두런거리며 말 주고받기도 한다.
특별히 감정상할 일도 없었는데 이사 오던 즈음부터 자매들은 우리를 외면한다.
마당에 나갔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여기 이사 온 사람입니다. 자주 뵙겠네요. 잘 부탁드려요!”
이쯤 길쭉한 말이 건너갔으면, 오는 말도 대충 그 길이는 되어야 하는 법.
“아....., 예!"
이게 끝이다. 그리곤 돌아선다.
어쩌다 지인이 놀러와 마당으로 내려서며 웃음 한 조각 흘리려는데, 자매집-뭔 막걸리집도 아니고 이상하지만 일단 이름 붙여본다-거실 창문이 거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둔탁한 음인지 왔던 손님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집에 사람들 소리만 나면, 자주 문을 거칠게 닫으니 슬슬 불쾌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사 오면서 떡도 한 접시 건넸는데 뭐가 기분상한 걸까.
나는 도통 알 수없는 사람들을 관찰하기에 이르렀다.
주로 부엌에서 음식 만들며 지켜보게 되는 자매집 동태를 잘 파악했다가 추측을 거듭했다.
특정한 직업도 없는지 한낮에도 집에서 서성거린다.
어느 날은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나의 호기심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물어서라도 꼭 알아내고 싶어졌다.
지병이 있어 요양 차 살고 있는지 살살 뜰을 거닐다 집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날로 궁금증만 증폭되어 탐정의 눈빛으로 양미간이 찡그려졌다.
어느 날 오후.
남편과 둘이 땀 흘리며 대문 앞 화단정리 하다가 북향집할배를 만났다.
뭐하냐며 오지랖에 물어오는 할배 향해 이때다 싶어 자매집 이야기를 꺼냈다.
할배는 여전히 모락거리는 담배연기를 품어대며, 동네 이장님 격 말투로 좔좔 묻지 않은 말까지 덤으로 설명해준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어느 종교의 간부들이라는 것. 오래 전부터 자매집은 그 종교단체의 관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갑자기 서늘한 것이 등줄기에 느껴졌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족이 불쌍한 중생들 아니면, 가엾은 영혼들로 여겨졌던 걸까.
어찌하여 싹 외면하거나 불쾌한 태도를 보이는가. 이참에 포교활동이라도 할 일이지.
앞으로 지내는데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만, 여태 누군가와 응어리지며 살지 않았기에 참 껄끄럽기만 하였다.
에라, 모르겠다. 최대한 피해주지 않으며 살아봐야지 어쩌겠느냐 하는 식으로 몇 달 지내던 중이었다.
말은 그래도 상대가 어찌 대하든 내 이웃이니 할 도리는 다하고 싶어졌다.
돌미나리 연하게 물오르던 날에 한 소쿠리 뜯어다 맛보라 전했다.
상추가 넘치게 자란 날도 잔뜩 솎아내 소리쳐 불러 담 안으로 넘겨주었다.
봄이 무르익어 땡볕에 호박잎도 흐물흐물 금박 스란 치맛단이 되어가던 날.
“저기, 아저씨! 앵두나무 하나 갖다 심어보실래요?”
자매들 중 언니인 듯 한 여자가 텃밭중앙 허리 굽힌 남편을 향해 손짓하며 부른다.
담장에 두 팔을 턱 올린 채 기대고 서서 하는 말이 큰 앵두나무 옆 작은 것들이 솟아나오는데 자기네는 필요 없으니 원하면 가져가라는 거다.
나는 공짜로 생긴 앵두나무보다 여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게 더없이 놀라웠다.
작은 앵두나무는 옮겨와 우리집 담벼락 앞에 심었다.
그날이후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오며가며 인사를 받는다.
뭔 종교를 추앙해 왔던지, 몇 십 년 도를 닦고 있던지 간에 사람 사는 것은 다 같은 거다.
먹고 싸고 자고 걱정하다가 울거나 웃기도하며 사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 궁금해서 미치겠는 것은, 이럴 것을 왜 그동안 새치름하게 버티고 외면했느냐 하는 거다.
우리부부 생긴 모양이 영 덜떨어져 보였었나?
괴물인가 했는데 시간 지나며 지켜보니 사람처럼 살아서 경계심을 풀었을까?
남편과 나는 돌변한 자매집 사람들을 대하며 식탁에 앉아서도 억측과 궤변만 늘어놓았다.
자매집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담장을 넘어 우리집에까지 휘늘어졌다.
말캉하게 익어가는 양을 보자니 절로 군침이 돌았지만 내 것이 아니므로 구경만 하던 차.
“아줌마! 앵두 떨어지기 전에 손닿는 대로 따서 드세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기념해야할 날이라며 남편에게 다닥다닥 앵두달린 모양을 사진에 담아놓으라 했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
터질듯 달린 앵두 알들을 따 담았다. 화채도 만들어 먹고 설탕 재워 따끈한 차도 끓여먹을 생각에 머릿속이 다홍빛 앵두 즙으로 가득 찬다.
“적당히 해라. 하여간 너도 시어머니 닮아 어째 그리 욕심이 많으냐?”
멀찌감치 있던 남편이 째려보며 욕인지 칭찬인지 한마디 한다.
“그러게. 저 아줌마 실수 한 거야. 담 너머 있는 앵두 맘껏 따라는 말을 왜 나한테 하냐구. 히히히. 근데 이거 꼭 오성과 한음 얘기 같다 그치?”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이 턱 밑에 앵두알 처럼 대롱대롱 맺혀 있음에도 아랑곳 않고 따 모았다.
우물가에 가서 낯이라도 씻어야겠다.
잘 익은 앵두에 정신없이 눈 휘둥그레진 여자가 바구니 미어질듯 열매를 담고 있다.
저 혼자 부풀어 방방 들뜬 모양새를 하고.
이제부터 자매집은 일명 ‘앵두나무집’으로 한 단계 승격시켜주기로 정한다.
모든 이야기를 나 혼자 짓고 있으니 내가 왕이고 내 맘 대로다.
외출중인지 오전 내내 인적 없는 앵두나무집 가끔 건너다보며 도둑 들까 지켜주는 중이다.
그것으로 내가 딴 앵두 값은 땡이다.
얼씨구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나조차 바람나고 싶도록 여름 한날이 좋기만 하구나.
2010년 6월 21일
앵두나무집 이웃 삼기로 정한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