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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당에 (3)


BY 박예천 2010-06-17

    

      채송화를 소개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찌는 기온이 한낮의 여름인가 할 정도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살구나무도 축 쳐져 기운 잃은 모습이 역력합니다.

더구나 바람 한 점 없으니 날로 굵어져 가는 자식들 무게에 한 없이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나뭇가지가 점점 아래로 내려앉고 있습니다. 아예 빨랫줄에 턱하니 한 가지 기대고 의지한 채 배짱 좋게 버티기도 합니다.

자기네들끼리 주고받는 초록빛 언어가 깨알처럼 쏟아져 담장 안을 굴러다니지요.

오늘은 왕개미들이 땀을 흘리며 바쁜 날입니다. 테두리삼아 쳐놓은 화단 나무판자모서리를 정신없이 오르내립니다.

키 낮게 피어 개미들을 올려다보는 채송화 일가족이 뭐라 또 종알거리는 것만 같네요.

 


 

어릴 적 어머니가 가꾸어 놓은 화단에 피던 채송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 해보니 오래 전 모아놓았다며 씨앗을 주는 분이 있었지요.

봄이 시작될 무렵 몇 차례 씨앗을 심고 물 주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답니다.

불규칙한 봄 날씨가 문제였는지, 씨앗자체에 원인이 있었는지 영영 싹은 트지 않았습니다.

거름 구하러 꽃집 가는 날 채송화모종을 만났습니다.

얼씨구절씨구 반가운 맘에 잽싸게 구해 와 우리집 화단에 옮겨 심었지요.

 

아파트에 살 때부터 꿈꾸던 나만의 소박한 화단이 있었습니다.

특별하고 귀한 화초보다는 그저 수수한 들꽃 수준의 꽃들을 가꾸겠다고.

키 순서대로 정했지요.

담장 바로 앞엔 해바라기를 세우고, 다음 순서 코스모스, 그리고 봉숭아도 중간쯤에 있고요.

맨 앞엔 주인여자 닮아 키 작은 채송화를 꼭 심을 작정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토종채송화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구한 모종을 심으며 내가 태어나 자란 마릿골 땅을 떠올렸지요.

몸 나이 먹어 청춘도 가고 중년의 느릿한 여인이 되어가지만, 마음은 쾌속으로 달려가고픈 유년 꽃밭이었으니까요.

 

아침저녁 말벗도 되어주고 물 뿌리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더니, 채송화양이 드디어 방긋 웃더군요.

꼭 사람이름만 같은 채송화.

이름에서부터 작고 앙증맞은 귀염성이 뚝뚝 떨어지지 않습니까?

예쁘기만 한 것은 오래지않아 싫증이 나지만 귀엽다는 것은 생김새보다는 행동이어서인지 정감이 느껴집니다.

개성도 만점이라 색깔까지 다양하게 피었습니다.

노랑, 진분홍, 주황, 그리고 하얀색얼굴을 납작하게 내밀고 나불나불 떠들어 댑니다.

들여다볼수록 기특하게만 여겨져 자주 쓰다듬고 어루만져줍니다.

나 같은 여자 손에도 뿌리내려 꽃까지 선물했으니 그저 대견하기만 한 채송화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져 모든 화초들이 맥없이 죽어가는 공포의 손.

일명 ‘살충제 손’이 바로 제 손이니까요.

벌레만 죽이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식물은 닿기만 하면 죽여 놓는다하여 남편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채송화양이 저리도 어여쁘게 피어났으니, 이젠 살충제 손의 오명도 벗을 날이 왔답니다.

헌데, 자꾸 들여다봐도 어머니화단에서 피어있던 그 꽃이 아닙니다.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하고 기억을 되돌려보니 ‘겹채송화’라는 개량된 품종인가 봅니다.

똑같은 것이 아니어서 좀 서운했지만 나름대로 대만족입니다.

 


 

우리집 마당 가족 중 채송화양을 소개합니다.

온갖 세상 때에 절어 겸연쩍어 하는 주인여자를 위로하며 이토록 수줍게 순백으로 피었답니다.

다시는 죄 짓지 말고,

손 내밀어 용서하는 법도 익혀가며,

풀어주고 놓아버리는 삶을 낮게 펼쳐보라 합니다.

너무 높은 곳만 쳐다보며 목 세우느라 힘 빼지 말고 낮은 곳을 먼저 내려다보라합니다.

내 발아래부터 눈길을 돌리면 더 많은 채움이 있어질 것이라고.

채송화양이 그렇게 해 뜨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속삭여주고 있답니다.

 

 

 

2010년 6월 17일

채송화양의 말씀(?) 경청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