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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길 사람들 1 - 북향집 할배


BY 박예천 2010-04-15

 

              북향집 할배

 



공원길 사람들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다. 오래전부터 공원부지로 계획된 곳 근처라서 ‘공원길’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계획’이다. 공원이 조성될지는 생겨봐야 아는 일이다.

야트막한 산엔 밤나무가 지천이다. 근처에 상가가 즐비하고 아파트단지 바로 옆이지만, 전혀 딴 세상인 마을이다.

골목은 견공(?)들이 슬금슬금 눈치보다 쪼그리고 앉아 변을 보는 일 다반사다. 새벽공기가 야산을 타고 내려오기 무섭게 수탉이 홰를 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기도 한다.

곳곳에 사람보다 먼저 깨어 아침을 열어놓으며 제 역할에 충실하다.

집집마다 담장을 쌓았지만 형식적인 금 긋기에 불과하다. 성큼 걸음으로 쉽게 건너가고 넘어 올 수 있는 높이다.

대문 역시도 집이라는 표시의 개념일 뿐이다. 열려있거나 아예 달려있지 않은 집도 있다.


먼저 살던 주인이 집을 비우고, 이사 들어오기까지 스무날정도의 간격이 생겼다. 그 기간에 집수리를 끝마쳐야 했다.

집수리 첫날.

공사장 사람들과 작업지시를 위해 빈 집에 들어섰다.

남자들 입가엔 약속이나 한 듯 담배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 나온다. 마주하고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쿨럭이는 기침에 참기 힘들다. 미간을 찡그리지 못해 고개 돌리고 섰는데, 누군가 현관문 안으로 들어선다.

“애기엄마 이리 좀 와보소!”

마침 화장실바닥을 뜯느라 드릴이 굉음을 내던 차라 구석진 방으로 손짓하는 노인의 행동은 당연하기도 했다. 별 의심 없이 따라 들어가니 방문을 닫는다. 처음엔 공사인부 중 한사람인줄 알았다.

“애기엄마!.......”로 시작된 말투가 자못 심각하다. 내가 애 엄마 인건 맞는데, 노인의 들척지근한 말투에 오싹 진저리가 쳐진다.

“네? 무슨 말씀인데요?”

어른인지라 일단 들어보자는 태도로 노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집이 말이야. 엄청 구두쇠 집이었거든. 내가 십년 가까이 지켜봤는데...., 아참! 난 저기 빌라 옆집에 살어. 초록지붕 집 봤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연거푸 매캐한 담배연기를 내 얼굴에 쏟아 붓는다. 가늘게 찢어진 눈이 옆으로 더 길어지며 말을 잇는다.

“내 얘길 들어보소! 이 집 주인여편네가 말이지 아주 독종이거든. 겨우내 보일러를 돌리지 않더라구. 다 잠그고 안방 하나에 모여서 밥 먹고 자고 말이지. 아마 여기 거실바닥 보일러 관 다 녹슬고 썩었을걸. 몽땅 갈아엎어야 할 거야. 관리를 하는 걸 못 봤어!”

“아...., 네에!”

짧게 답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 그 얘길 왜 하는지, 뭘 어쩌라는 것인지 파악이 어려웠다.

빈방에 둘이만 계속 있자니 분위기가 어색해 밖으로 나왔다.

작업인부들과 현장소장격의 남자 앞에서 노인의 장황한 연설(?)은 계속된다.

“이 집을 내가 살려고 값을 흥정했었지. 구년 전이었을 게야. 팔지 않겠다고 하드라구. 꼴 나게 관리해놓고 비싸게 받아먹으려는 심산이지. 이런 집 헐값에 팔아도 누가 사겠나 말이지. 안 그래요 들? 그 이후 한 사람도 사러 오는 사람 없었다구.”

여기 그 집 산 멍청한 여편네 있다고 목에 핏대 세우고 싶었지만 참았다. 살면서 마주치게 되면 껄끄럽기만 하겠다 싶어서였다.

참나. 살아보겠다고, 새 봄과 함께 펼쳐보겠다고 이삿짐 싼 여자 앞에서, 그 양반 말대로 여린(?) 애기엄마 앞에서 할 말인가. 

노인은 한참 머물러 있었다. 곳곳을 공사장감독마냥 참견하고 다녔다.

“여기는 페인트칠을 할 거요? 내 말 좀 들어보소. 칠이라는 게 말이지 여자 화장하는 거랑 같다구. 색조화장 알지? 떡칠한 얼굴에다 자꾸 분을 칠해보소 쩍쩍 갈라지고 흉하다구. 크린싱을 깨끗하게 한 다음에야 고운 색을 칠해도 빛이 나지. 집도 마찬가지야. 벗기고 해야지 아암!”

계속되는 노인의 일장연설은 들어주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돌아 나오는데 영 찜찜하다. 예상외로 공사가 커진다면 큰일이다.

노인의 말대로 방바닥을 죄다 뜯어내야 한다면 말이다.

오후쯤, 점검에 들어갔다던 현장소장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서야 한 숨 내쉬었다. 아무문제 없더라는 것. 보일러가 뜨끈뜨끈 거뜬히 데워진다는 것. 에휴 그 할배 참!



아들의 치료실에서 돌아오는 길. 새참을 건넬 겸 집수리하는 곳에 들렀다.

아뿔싸! 대문 앞에서 오전 내내 입에 거품을 물던 할배와 마주치다니.

역시나 계속되는 말씀.

“애기엄마! 이 집은 말이야. 마당이 잘못 놓였어! 이짝으로 맹글었어야지! 대문 앞에다가.”

‘할배! 거긴 북향인디유?’라고 목안에서만 종알댔다. 대꾸했다간 말이 길어질까 봐.


빵과 우유를 전하며 현장인부들과 수고의 인사 겸 나누는데 소장님의 한마디.

“아까 그 할아버지가 이집을 사고 싶었던 모양이예요. 다른 사람이 사게 되니까 배가 아파서 저러는 것 같더라구요.”

아하! 그랬구나. 남 잘 되는 거 보기 힘든 것이 사람 맘이라더니.


골목길을 돌아 나오며 차에 시동을 거는데, 초록지붕집 앞 담벼락 곁에 앉은 할배 모습이 보인다. 백발 나부끼는 사이로 콧김을 벗어난 담배연기가 가느다랗게 스며든다.

느리게 가속페달 밟으며 차창 너머로 마주친 할배와 목례를 했다.

핸들을 꺾으며 바라본 노인의 집.

북향이었다. 마당이 북쪽을 향해 덩그러니 어둡게 펼쳐져 있다.

북향 이층집 할배는, 햇볕 탐스럽게 싸안고 있는 남향의 조그만 내 집이 샘이 났던 거다.

 

계집아이가 들고 선 새 장난감이 탐나서, 오래오래 툴툴대던 유년 골목길의 내 꼴이다.

어쩐지 나는....,

있는 속 감정 숨기지 못하고 전부 드러낸 북향집 할배가 측은해진다.

팥 시루떡 하는 날 따뜻한 걸로 챙겨다 드려야지.

 

 


할배요! 저 잘 살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데이!    

  





2010년 4월 15일

북향집 할배 이웃지기 삼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