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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BY 박예천 2010-04-12

          내 집

 

“내 이름으로 하면 안 돼?”

작정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파트생활을 접고 단독주택 구입해서 매매계약서에 도장 찍으려는 순간이다.

당연히 공동명의 생각하며 인감도장 두 개를 내밀던 남편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아니, 그냥...., 뭐, 내 앞으로 된 것도 있었으면 해서. 딴 뜻은 없어!”

속셈이거나 꿍꿍이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허무해서 그랬다.

사십 중반 살면서 눈에 보이게 일궈놓은 것 하나 없어 표시라도 해 두고 싶었다고나 할까.

하긴, 소유권만 내 것이면 뭐하랴.

집 담보로 융자받았으니 다달이 원금에 이자 물어야 할 상황만 전개 될 것을.

그렇다하여도 이름 석 자 등기부에 올리고 싶었다.


처음으로 내 집을 가져본다.

결혼 전 직장생활하며 전세계약서 위에 이름 올려봤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가 실린다. 제대로 집주인이 된 셈이다.

사실 집 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었다. 그저 아늑하게 자리한 마당이 좋았고, 햇볕 잘 드는 남향인 것이 맘에 들었다. 골조는 튼튼하게 지어졌으나 사는 동안 어찌나 관리를 못했는지 구석구석 손 볼 곳이 많았다. 화장실에 물이 새고 옥상방수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거의 이십여 일 동안 집수리를 하는데, 두통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파트집에서 현장으로 매일 서너 번을 들락날락 했다. 공사장의 거센 남자들과 넉살좋게 비유도 맞춰야 했고, 간간히 먹을거리 챙기는 일까지 직접 했다.

진짜배기 내 집이니 그만큼의 수고는 마땅하지 않겠는가.


보통 집들의 마당은 길옆으로 나 있어서 대문 앞을 지나치다 보면 안이 다 보인다. 허나 우리 집 구조는 다르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안채 현관문이 있다. 마당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도심의 다세대주택 닮았다.

일층 계단난간 빙 둘러 안쪽으로 건너왔을 때서야 비로소 눈앞에 펼쳐지는 장방형 마당.

마치 은밀하게 숨겨둔 장소라도 되는 양, 옆집들 담장 안에 폭 안겨있다.

기다란 마당은 채마밭과 잔디밭으로 나뉘었다. 가운데 경계삼아 구멍 세 개 뚫린 벽돌 길을 놓았다. 구멍마다 토종 채송화 씨를 심었는데 날씨가 영 도와주질 않네그려.

이삿짐 풀기 무섭게 빨랫줄을 걸어 달라 채근했다. 살구나무와 감나무 기둥삼아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이 걸렸다. 마당구석 수돗가도 만들고 장독대가 근사하게 마주 붙어 있다.

대충 내 집(?)소개를 여기서 마칠까 한다. 살아가면서 쏟아 낼 얘기들이 생겨주겠지.

고급 전원주택이거나 호화판 양옥은 되지 못한다. 분명 먼저 아파트도 전세 아닌 집 주인이었건만, 마당 있는 집은 또 다른 느낌이다.

때 맞춰 불어오는 바람이며, 넉넉하게 쏟아지는 햇볕을 나눠 갖지 않아도 된다.

베란다 유리창 안으로 들어오는 빛에만 만족하며 윗 층, 또는 성냥갑 포개어진 꼭대기 층까지 들어찬 사람들의 하늘을 얻어 쓰고 있다는 기분 갖게 하지 않는 곳. 

내 집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네모난 것은 전부 내 것이다.

살구꽃, 배 꽃잎 하늘거리게 불어오는 네모만큼의 봄바람도 내 것이고, 네모나게 내려앉는 햇살도 내 것이다.  

그것들은 창문을 타고 옆으로만 들어서지 않는다.

화살표를 달고 하늘에서 직 방향 네모난 마당 안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나는 더 욕심내지 않기로 한다. 꼭 마당만큼만 네모나게 행복하기로 맘 정했다.

돌미나리 엊그제부터 튼실하게 버텨 초록으로 뻗어 오르고 사이사이 달래가 삐죽이는 마당.

머위 꽃이 똬리 틀어쥐고 머리를 내미는 곳. 곰취나물, 돌나물, 감자 싹..., 제발 눈길 주기를 아우성들이니, 쪼그려 앉아 귀 기울이며 들어줘야지.

전부 내가 거둬야 할 내 집의 식솔들이다.


가위들고 과일나무 가지치기 하던 남편이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왜 이리 고생을 하지?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

서류상 아내 집인데 헛수고를 한다며 장난기 섞인 투덜거림이다.

맞아, 내 집이지!

“어이, 전씨! 일 좀 확실히 하게나!”

정말 부리는 아랫사람에게 하듯 남편을 향해 농으로 대꾸해본다. 


온종일 네모난 마당을 데우던 봄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보글보글 냉이된장찌개는 끓는데,

네모난 식탁위에 수저를 놓으며 나는 자꾸 네모진 웃음이 나온다.

 

히죽히죽........, 이일을 어쩔꼬!



 


 

2010년 4월12일

내 집 마당을 흡족히 바라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