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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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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


BY 박예천 2009-12-09

 

                   도루묵

 

 

도루묵이 제철이다.

하여, 자칭 본업이 어부라는 남편도 밤마다 바다를 찾는다.

“저녁에 들어올 때 콩나물 좀 사오지!” 출근하며 놓고 간 남편의 말.

이제껏 해왔던 조림과는 다르게 콩나물 얹고 도루묵 요리를 한다. 숭덩숭덩 썰어놓은 무를 바닥에 깔고 고춧가루 조금 뿌렸다. 퇴근하여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남편은 가스레인지 곁에서 떠나질 않는다. 몇 차례 숟가락으로 국물을 끼얹으며 서있다.

바다에서 온 것은 바다 출신 굵은 소금으로 간하면 된다. 어떤 요리든 부재료가 많으면 주재료의 맛이 떨어진다. 기본적인 양념만 첨가하는 것이 우리 집 요리의 포인트이다.


“자! 다 됐다. 이제 먹자. 얘들아 밥 먹어라!”

회심의 미소 짓던 남편이 소리쳐 아이들을 부른다.

밥상 중앙에 커다란 전골냄비가 올려지고 나머지 찬은 김치면 된다. 앞 접시 하나씩 놓아주었다. 자기 입에는 국물 맛만 보는 것으로 일 단계 끝내고 아이들 접시에만 살을 발라준다.

가시고기였던가.

아들의 백혈병 고치기 위해 전부를 내어주고 죽음에 이르는 아버지 이야기.

암컷이 낳은 알을 보호하고 새끼로 지켜 키우다 끝내 죽는 수컷 가시고기.

모성애만 부각되던 책들 속에서 지독한 아버지의 사랑을 강조했던 조창인의 소설이었다. 조건 없이 희생하며 아들을 지키려다 외롭고 가슴 아프게 생을 마감한 남자였다.  

제 입에만 밥 수저 옮기는 어미와 다르게 남편이 아이들 앞으로 번갈아 도루묵을 내민다. 행여 잔가시가 걸릴까 수저위에서 몇 번을 집어낸 후 넘겨준다.

물끄러미 성씨 같은 세 사람을 바라보려니 예전 읽었던 소설 ‘가시고기’가 떠올랐다.


다시 도루묵 얘기를 해보자.

어찌하여 이름이 도루묵이 된 걸까. 이미 많은 이들이 전해져오는 설화로 알고 있을 터.

옮겨보자면, 옛날 조선 14대 선조임금이 임진왜란 때 먹을 것이 궁해져 한 어부가 ‘묵’이라는 이름의 생선을 바쳤다는 것.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맛이 좋아 감탄했던 임금이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단다. 전쟁이 끝나고 재차 그 생선을 먹어보니 당시 먹던 맛이 아니었다. 은어라 했던 것이 후회되었을까. ‘도로 묵이라 해라!’라고 하여 지금에 도루묵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노력을 기울여 애쓰던 일이 헛되이 돌아왔을 때 흔히 쓰는 말도 도루묵이다.


도루묵은 생선특유의 비린내가 거의 없다. 냄새 없애기 위해 맛술이나 생강 따위를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갓 잡아온 것이라 살이 신선하며 담백하고 개운하다.

자작하게 부은 양념이 도루묵과 어우러져 생긴 국물 맛도 일품이다. 살을 발라먹다가 남은 밥은 국물에 썩썩 비벼 먹으면 감칠맛이 끝내준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도루묵 요리도 기본 간만 잘 맞추면 된다. 


어획량(?)이 많아 연 이틀 도루묵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첫째 날 남편이 실력발휘를 했고 다음날은 내 차례다. 수라간 최고상궁 자리를 놓고 경합 벌이던 어느 사극에서처럼 내식으로 했다.

씻어 건진 도루묵을 무 깔아놓은 냄비에 일렬횡대로 눕힌다. 그야말로 초 간단 양념이면 된다. 약간의 물에 파, 마늘, 고춧가루 그리고 꼭 국 간장이어야 한다. 깊은 맛은 진간장이 따라갈 수 없는 그 집만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입맛에 따라 조미료를 넣기도 하지만, 양파가 들어간다면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 이제 끝인 거다.

중불로 끓이다가 약한 불로 줄이고 이따금씩 우러난 국물을 도루묵위에 끼얹어준다.

전날 남겼던 콩나물도 올렸다. 이상하게 나는 밑에 깔려있던 무나 덤으로 들어간 야채와 콩나물 같은 것에 더한 구미가 당긴다. 결국 내가 먹을 요량으로 넣었다는 얘기다.

둘째 날 저녁엔 엄마표 도루묵 조림이다. 남편이 했던 것보다 시원하고 깔끔했던 맛은 떨어지는 듯하다. 다만 농도가 짙어지고 깊은 맛은 내 쪽에 후한 점수를 준다. 심사위원장 격 상감마마가 없으니 판단은 내가 다 한다. 


남편과의 연애시절 우연한 기회에 꽃게탕을 먹게 된 적이 있었다. 마주앉아 주저하며 국물만 떠넘기던 내게 양팔의 셔츠를 걷어 올리고는 살만 발라 건네주었다. 여자의 마음을 사기위한 작전일거라 일축하여 곱게 보지 않았었다. 헌데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발라준다. 시어른 앞에서도 거침없이 내 앞으로 내민다. 남편도 나도 나이 들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 딱하나 있다면 생선가시 발라주는 모습이다. 점수 깎이는 짓을 했다가도 그놈의 생선살 자상하게 올려주는 것에 마음 놓고 만다. 도루묵 말뜻처럼 만날 도로 그 자리인 셈이다.

불고기나 삼겹살을 먹으며 뭔가 발라주는 일은 드물다. 오직 가시 박힌 생선 먹을 때만 필요한 순서다. 손길 따라 뾰족 가시는 빠지고 말랑한 사랑만 추가된다.



책상위에 던져놓은 휴대전화에서 문자메시지 알림 음이 들린다.

‘찹쌀 있나? 저녁에 전복죽 끓여먹게 준비 좀 해줘!’

어부님이 보내온 주문내용이다. 도루묵 통발 던져놓고 방파제 돌에 붙은 전복도 따온 모양이다.

어쩌다보니 감히 요리전문가 흉내를 내는 글이 되고 말았다.

도루묵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냉동실에 남아있을 찹쌀이나 씻어 불려야겠네.

오늘 저녁엔 고소한 전복죽냄새가 진동하겠구나.







2009년 12월 9일

도루묵조림 먹은 후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