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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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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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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가 그립네


BY 박예천 2009-12-06

 

                   그 소리가 그립네.

 

 

겨울입구에만 서면 왜 가슴에서 자꾸 딸그락 소리가 나는 걸까.

까맣게 잊었던 울림 같기도 하고, 어쩌면 오래전부터 밑바닥에 가라앉았을 앙금인 듯 날숨 들숨 따라 벌떡거린다.

어깨가 움츠러들도록 한기가 느껴지는 계절이면 깊이가 더하다. 오싹한 저녁 무렵 희뿌옇게 음영 깊어지는 하늘빛을 지켜보노라면 심장언저리부터 먹먹해지곤 한다.

못 견디게 그립다. 그리움의 대상이 구체적인 사물이거나 일정한 사람이라면 해결책도 강구해보겠지만 맥없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어제 저녁에도 그랬다.

나무도마위에 묵은 짠지 무를 올려놓고 채 썰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물에 몇 번 헹궈 손으로 꼭 짠 다음 들기름과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맛이 그만이다.

똑똑똑 나무도마를 울려대는 칼질박자 따라 올라앉는 무게. 그리움이었다. 

‘띠리리리 리리리....,’ 엘리제를 위하여. 귀에 익숙한 기계음이 울린다. 세탁기가 탈수를 끝마쳤다는 보고다. 이때다 싶은지 칙칙 거리며 뜨거운 김 한 사발 쏟아놓는 전기보온 밥솥. 거실에선 연실 각종질병과 사고 때마다 척척 보상해 준다는 보험 상품 소개광고가 화면에서 튀어 나올 듯 지지배배 떠든다. 아! 싫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소리들 때문에 질식사 했다는 신문기사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안과 밖의 경계가 단지 창호지 한 겹이던 시절이 있었지.

방문만 열면 겨울 칼바람이 온 마당을 휘돌고 외양간이며 뒤란까지 한 바퀴 돌아다녔다.

장지문에 바늘구멍만 있어도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며 할머니는 풀 쑤어 감쪽같이 발라 놓으셨다. 과연 그랬다. 코가 시리도록 방안에 끼어들어오던 바람은 곧 뒷걸음을 치곤했다.

밤새 따끈했던 구들장이 슬그머니 찾아온 새벽기운 따라 소리도 없이 식어버린다. 솜이불을 뒤집어쓴 채 한기에 어깨 오그리며 떨고 있노라면 아득하게 들리는 소리. 무쇠가마솥 뚜껑이 둔탁하고 긴 마찰음을 남기며 닫힌다. 곧이어 탁탁 나무 장작이 불씨에 제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데워지는 아랫목. 군불담당이 누구였더라? 아버지이거나 할아버지려니 기억된다.

눈 감고 몸은 방바닥 뒹굴되 귀 쫑긋 밖의 소리들을 모은다. 싹싹 아버지가 마당을 쓸고 있다. 싸리 빗자루는 흙 마당에 결 고운 금을 긋는다. 이제껏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아침인양 어제와 또 다른 빗살무늬로 가득 채워진다. 서서히 명료해지는 의식이 몸을 일으켜야 한다고 조종하고 있다. 버둥대며 등짝에 붙은 온기에만 녹녹하게 풀어지는 중이다. 곧이어 있어지는 소리에 집중하며 귀를 모은다.

바로 저 소리다. 나무 도마 위를 경쾌하게 조각내는 어머니의 손 힘. 김치 광속 얼음 서걱거리는 단지 안에서 건져 올린 동치미가 동강나고 있다. 

똑똑똑....., 그 소리가 들릴 쯤 이면 눈가에 붙은 잠 부스러기를 사정없이 떼어내야 한다. 창호지 문 벌컥 열어놓으며 이불을 발라당 들춰버릴 아버지의 기상나팔이 이어질 순서다. 내복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들어야 했던 불호령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의 소리였다.


아! 안방에선 또 그렇게 할아버지의 해소천식 소리가 메마르게 들려왔었지.

곧 숨이 멎어버리면 어쩌나 한 밤중에도 몇 번씩 귀 기울이곤 했다. 격렬하게 이어지다 어느 순간 뚝 멈추면 두려움에 오스스 소름이 돋기도 했다. 확인이라도 해봐야 할까 기다려볼까 망설이고 있노라면 숨가쁘게이어지는 마른기침으로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이었다.

“학교 갔다 올 때, 장터 순화당 약국에서 새루날 한 봉지만 사오너라!”

읍내로 통학하는 손녀딸에게 구겨진 쌈지 돈을 내민다. 병원가시라는 말에 그거면 된다 하던 할아버지. 막차 타고 돌아오는 책가방 안엔 분홍알약 소복하게 들어있었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전화기너머 손녀딸 목소리에 대답대신 기침소리만 내내 쿨럭였다.


창호지문 한 겹 너머에는 온갖 소리가 있었다.

지나가다 들린 중간 뜸 아주머니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할머니와 걸진 수다 한판 늘어놓는다. 굳이 문 열지 않아도 종이 한 장쯤이야 훌쩍 건너뛰어 들리던걸.

누구네 집 암퇘지를 잡았다네. 앞다리는 섭섭이네 차지했고 뒷다리 두 개도 만득이네와 순자네 나눠갔으니 달랑 하나 남은 앞다리 살 것이냐 묻네. 흥정 잘하는 울 할머니 단박에 고개 끄덕이지 않을 걸 나는 알지. 맘 정하는 순간까지 옆 사람 애간장 다 녹이고 불끈 핏대도 세우게 했다가 마침내 못 이기는 척, 손해 보는 척 맞장구를 쳐준다.

창호지문에 눈알만한 유리붙인 곳으로 다 보였지. 할머니 슬금슬금 웃는 얼굴도 호탕한 웃음소리도 다 들렸지.


이제 나는 방음, 방범, 방충이라며 꼭꼭 숨어산다네.

외부소리도 거절이요, 도둑은 반갑지 않다네, 벌레도 접근금지라며 문걸어두고 자기네끼리만 온갖 익숙한 소음에 비유 맞추며 살지.

문득 어느 날은 다 집어치우고 싶어지지. 걷어내고 싶단 말이다. 몇 겹 군살마냥 눌러 붙은 문명의 눅진눅진한 때를 벗겨 낼 수는 없을까 생각만하지.

내 그리움의 소리들이 몽땅 사라져 버린 것만 콧날 시큰해지며 억울하다 말하지.

흐르는 세월 탓이라, 밝아오는 세상 때문이노라 말하며 이해해주라네.

정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소리들이려나.


삐삐삐..............젠장!

전자레인지에 또 뭔 음식을 들이밀고 타이머 맞춰 놓은 거야?

다 돌아갔다고 삑삑 거리니 그만 가봐야 한다는 사실.

어쨌든 나는, 기억 속에 사라진 그 소리들이 몸서리쳐지게 그립다네.

꼭 이맘때면, 더구나 하루 종일 거리에 나뒹구는 저놈의 찬바람이 들쑤시는 통에 미칠 지경이란 말이지.  


불나게 두드리던 자판소리가 멈추는가 싶더니, 비척거리며 일어난 중년의 여자가 부엌으로 향하고 있다.

보글보글 끓여진 계란찜을 꺼내며 히죽히죽 흡족히 웃는다.

 

이런 바보!


 


2009년 12월 6일

소리 그리운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