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야 제 맛
“이렇게 손으로 쭉쭉 찢어먹어야 제 맛이 나는 거여!”
나 어릴 적, 할머니는 그랬다.
손자들 밥숟가락 위에 먹기 좋게 김치를 손으로 찢어 올려주셨지.
입맛 없어하는 남편 위해 닭백숙을 끓였다. 저녁 한 끼 뽀얀 국물에 밥 말아먹고 남은 고기를 건져 찢는다.
갖은 야채 곁들여 고춧가루 넣고 얼큰 닭곰탕으로 제2탄 메뉴가 되는 거다.
먹기 좋게 결대로 찢다보니 손끝으로 와 닿는 정 많던 사람들.
친정어머니가, 할머니도, 시어머니까지 그저 제 맛은 찢는 것이라 했다.
내친김에 김장 때 가져온 배추김치도 찢어야겠네. 크기가 만만치 않아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들춰보다 잡아 달라 찢어라 밥상에서 여러 말이 오간다.
제법 맛이 들은 김치가 내손에서 찢기고 있다. 찬기에 소복하게 담아놓으니 먹음직도 하여라.
또 무엇을 찢었더라?
가지나물도 있구나.
뜨거운 김에 쪄서 반드시 손으로 찢어야 한댔다. 양념을 섞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역시 손끝으로 조물거리라 했다. 과연 감칠맛이 더하긴 하다.
설날 떡국 고명에 얹을 소고기 건네던 시어머니.
“이거, 고기 결대로 쪽쪽 찢어라!”
칼로 잘게 썰어도 되건만 꼭 쪽쪽 찢으란다.
노란 지단, 김 부스러기와 함께 잘도 어울린다.
새우젓과 돼지고기 넣고 대충 끓이는 배추볶음에도 우적우적 찢기가 들어간다.
잘 씻은 배춧잎을 칼은 전혀 대지 않고 손으로 비틀듯 찢는다.
반듯반듯 사각모양의 배춧잎 보다 더욱 군침 도는 모양새가 된다.
단지 재료마다 찢기만 했을 뿐이다. 준비된 것 외에 첨가한 양념이 없는데 찢어 놓으니 제 맛이라 한다.
심장의 피돌기가 사람의 손가락 끝까지 온기를 남기겠지.
칼의 금속성은 차갑다. 정 담긴 뜨거운 심장 온기가 닿기도 전에 절단을 내고 만다.
조물조물 버무리다보면, 먹어줄 사람 입안에 사랑 한술 은근슬쩍 들어간다.
작정하여 준비한 양념 아니었고, 분량조절 필요 없는 뜨끈한 정이 섞여 버무려진다.
절대로 저울이나 계량스푼으로 가늠할 수 없는 무한 감정까지 스며 제 맛이 된다.
또한 찢는 일은, 재료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남겨두는 일이다.
고기의 결이 간직했던 방향대로, 채소의 잎줄기가 물기를 끌어올렸던 무난한 쪽으로 찢는다.
세로이거나 수평이거나 지니고 있는 자체의 성향대로 갈라주는 것이다.
칼과 기타 금속성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져지며 나눌 재료와의 가식 없는 첫 만남이기도 하다.
닭고기와 김치를 찢다가 이렇듯 그럴싸한 의미까지 담아 본다. 지나친 해석일까.
나는 되도록 맨손으로 음식을 하는 편이다.
손으로 느껴야 맛이 살아날 것이라는 주제넘은 고집이다.
설거지도 장갑 끼지 않고 한다. 손의 촉감으로 그릇의 청결도가 측정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이기에 드러나는 생활면이기도 하다.
하여, 손 모양새는 투박하기 그지없고 살결 거칠기가 거북등걸이다. 핸드크림이니 보습제이니 발라 봐도 만날 그 꼴이다. 포기한지 오래다.
제 맛이나마 간직하기 위하여 나는 계속 찢어볼 심산이다.
궁핍했던 시절, 소박하다 못해 찌든 밥상에 어쩌다 올린 고기 결을 찢어야 했던 우리네 어머니.
줄줄이 엉겨 붙은 자식들 입마다 고루 맛보게 하려면 찢어발겨야 했다.
그나마 당신 입엔 찢은 고기 한 점 들어가는 일 없이 맨 국물만 떠 넘겼을 거다.
어디 어머니들뿐이랴.
당장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도 결대로 마디대로 찢어야 했다.
나누고 가르며 자식들 장성하게 뒷바라지만 하다 보낸 세월이다.
주말에 아버지 생신 맞아 친정 간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라. 근데..., 오징어 떨어졌고 황태포도 없구나. 꼭 사달라는 말은 아니다!”
텔레비전 광구문구를 허허 웃으며 전화기 너머에서 흘린다.
아버지, 걱정마시라요!
잘 말린 황태포와 속초 산 오징어 한축 사 짊어지고 고개 넘으리다.
가서 젊은 날 당신의 그날처럼 쭉쭉 잘게 찢어 국 끓이고 주전부리거리도 만들어 드리지요.
어찌되었든 찢어야 제 맛이라니까!
2009년 11월 25일 저녁
잘 익은 김치를 찢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