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속초민국!(束草民國)
(오늘 사진은 아닙니다. 몇 년 전 찍은 집 뒤에 호수로 가는 길이랍니다^^)
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밤사이 나 혼자 외딴 나라에 던져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눈앞에 펼쳐진 설경이라니.
첫눈인데, 그야말로 폭설이다.
이미 나뭇가지가 휘도록 쌓였음에도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다.
날마다 아들을 태우고 다녀야하는데 운전할 걱정부터 앞선다. 마침 감기기운이 있어 이참에 하루 쉬기로 하였다.
바로 집 앞 병원에 아침나절 다녀왔다. 휘날리는 눈발 속에 우산을 챙겨들고 아들과 영화 한 편 찍었다.
약을 처방받고 슈퍼에 들러 녀석 좋아하는 군것질 거리도 샀다. 동굴 속에 들어앉은 곰처럼 모자(母子)가 종일 뒹굴 거릴 참이다.
속초 사는 사람들은 ‘흰 눈이 사뿐히 내린다.’거나 ‘소복하게 쌓였다.’는 표현을 잊고 산다. 이곳 하늘에서 공격(?)하는 눈은 중간에 그물망도 걸쳐지지 않는 직격탄이다.
뻥 뚫린 공간에서 왕창 오지게 덮어버리는 것이다.
경기도 내륙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겨울풍경은 아름답게만 기억되어있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가슴 콩콩 용팔이(?)도 떠오른다.
손톱 끝에 물들였던 붉은 봉숭아 꽃빛이 사라지기전에 짝사랑 그이와도 연결 되려나 온갖 망상을 펼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변했다.
곱기만 한 손으로 살포시 내리는 눈발을 담아보던 소녀가 아니다. 억척스럽게 삽질 내지는 대빗자루를 휘젓고 다닌다.
정도가 심한 폭설이면 체면도 내던지고 고무장갑에 남편 낚시 장화라도 신어야 한다.
오후로 접어드니 눈발이 약해지면서 반짝 해가 보인다.
간단하게 아들의 점심을 챙겨주고 주차장으로 나섰다.
“아들아! 엄마 차에 눈 좀 털어내고 올게 밥 먹고 있어라. 알았지?”
먹느라 열중하는지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쓰레받기 하나들고 등산화를 꺼냈다. 아직은 낚시장화까지 등장시킬 정도는 아닐 성 싶다.
춥지 않아 다행이다.
어젯밤 세워둔 자리로 가니 차체형태 그대로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쓰레받기로 차 지붕에 쌓인 눈덩이를 떼어냈다.
히야! 이거야 말로 백설기조각이다. 무게도 만만치 않다.
“세상에! 이게 다 떡이라면 좋겠구만. 집집마다 퍼 돌리고도 꽤 남을 건데....히히.”
철퍼덕대며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눈 무더기를 보다가 누가 듣던 말 던 혼자 중얼댔다.
겨우 차의 형태를 알아볼 쯤 되니 바닥에 쏟아진 양이 엄청나다. 두 발이 푹푹 빠진다.
대충 와이퍼 두 개를 앞 유리와 떼어 세워놓고 돌아서려는데, 언제 떨어졌는지 단풍잎 두 장이 박혀있다. 하얗게 부서지는 옥양목 천에 서린 외마디 핏빛? 표현 참 거창하군.
“쯧쯧...., 느히들도 참 안됐구나. 지는 것도 서러운데 동사(冬死)하게 생겼으니.....”
지나가던 아파트 청소부 아줌마가 내말을 들었는지 한참 웃는다.
내가 늙는 걸까. 왜 이리 혼잣말을 자주 지껄이는지.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린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눈 맞은 여편네는 나처럼 이럴까?
(집에서 가까운 한화콘도 앞 설경입니다. 그 날도 역시....폭설이었습니다 ㅠㅠ)
좁은 강원도 땅이지만 영서와 영동의 기후가 판이하다. 고개하나만 넘으면 전혀 딴 세상이다.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나는 늘 ‘이국적인..’ 기분을 맛보며 산다.
거리를 나서는 일이 좀 버겁긴 하지만, 돈 안들이고 해외여행중이라 여기며 살란다.
그래서 여기는 대한민국에 속했으나, 또 다른 나라 속초민국(束草民國)이다.
십여 년 넘게 살았으면 적응될 만도 하건만 아직도 허옇게 뒤집어쓴 풍경을 대하면 숨이 막혀온다. 눈 치울 일이 아득하다. 군대 작업병도 아니고 나 원 참!
여기까지,
가을이 채 접히기도 전에 폭설 속에 갇혀 버둥대는 속초민국 아낙의 넋두리였음!
2009년 11월 2일
첫눈, 폭설 속에 갇혀버린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