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콩밭에
노인의 어깨는 활처럼 휘어 있었다.
이따금씩 후려치던 도리깨질 멈춘 채 헉헉 숨을 몰아쉰다. 마른 콩더미 서 너 번 두들겨 패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족히 팔순은 넘었으리라. 성성한 백발위에 검불 몇 가닥이 노인과 호흡을 맞대며 파들파들 떨고 있다. 때 마침 불어 온 갈바람 짓이다.
어째, 내리치는 도리깨질 횟수보다 숨 고르는 시간이 더 길다. 살아온 만큼의 세월깊이를 들이마시고 있는 것일까.
질펀히 드러누운 콩대들은 한 나절 내내 뭇매를 맞고 있다.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자리에 갇혀 찰진 볼기를 내주고 있다.
버썩 마른 몸체로 버티다가 이내 순순히 콩깍지를 벌려주고 만다. 차마 모진 매를 견딜 수 없어 쏟아놓는 콩알들의 산란이 이어진다. 경사진 밭둑을 지나 몇 알은 차도로 굴러들어온다. 낳자마자 바퀴에 짓뭉개질 위기다.
콩밭은 도로가에 바싹 붙어 있었다. 노인의 밭뙈기는 시골과 아파트단지 중간에서 경계가 되고 있다. 손바닥만한 도시에 두 폭 그림은 또렷하게 대비되어 펼쳐진다.
오가며 바라보는 시골풍경 속 노인의 콩밭에 적잖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솔기 닳아빠진 특유의 회색 내복도 그러하고, 흙먼지 속에서 쿨럭이는 기침조차 내 발을 잡는다. 손바닥엔 굳은살로 딱딱할 것이다.
여든 여덟에 떠나신 내 할아버지의 마른 기침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평생 익숙해진 몸이 의식보다 먼저 깨어 씨 뿌렸을 거다. 체득된 삶으로 꾸역꾸역 농군의 사명을 다했으리라. 줄줄이 딸린 피붙이가 노인의 양어깨에 올라앉았겠지.
도리깨질에 더한 묵직함이 실렸던 것은 그 때문인지도.
이튿날.
콩밭가운데 멍석이 깔리고 풍구가 서있다. 네 개의 금속날개는 네덜란드 풍차보다 더욱 위풍당당하다. 툭 건드리면 켜켜이 녹슨 쇳가루가 바스러져 날릴 듯 노인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
기름칠이나마 해두어 제역할은 하겠지. 삐걱대다 풍구질이 멈추지나 않을까 나는 별걱정을 다 하고 있는 중이다.
어허? 노인 곁에 새로운 등장인물이다.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혼자 풍구 돌려대며 곡식을 휘날릴 수는 없으니까.
동원된 일꾼이 힘센 장정이거나 어깨 떡 벌어진 아들 녀석이라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허나 천만에 말씀이다. 축 늘어져 코가 몇 개나 빠졌을 자주색 편물조끼 걸쳐 입은 할머니다. 반드시 값싸고 오래가야하는 뽀글파마는 치매로 누운 나의 할머니를 닮았다. 무릎관절이 아픈지 몇 번이나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곤 한다.
드디어 규칙적인 쇳소리 마찰음과 더불어 세찬 콩 바람이 분다.
흙먼지야 날아가라, 탱글탱글 샛노란 콩알만 수북하게 쌓이거라.
윙윙 돌아가는 풍구질이, 박자 맞춰 노래를 짓는다.
환상의 복식조다. 할머니의 풍구질 따라 바람개비 앞으로 깍지 섞인 콩더미를 쏟아놓는 할아버지.
얼마나 지났을까.
비닐멍석 끝자리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는 노부부.
뿌연 흙먼지가 너풀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염치없이 끼어든다.
오늘 두 분의 풍구질은, 전날 맥없이 풀어지던 할아버지 홀로도리깨질과는 사뭇 다르다.
짐 나누어 질 동행이 있었던 거다.
두런거리는 말소리라도 혹시 주워들을까 나는 두 귀를 있는 대로 모아본다. 제 삶 다한 마른 나뭇잎들만 포도 위를 긁어대며 서걱거리고 있었다.
두 분은 콩 무더기 앞에서 나누기를 할 것이다. 딸네 집으로, 아들네 밥상 위로, 장날 제값 쳐서 돈 바꿔 오는 걱정도 하겠지. 노부부는 시선을 마주치다가 콩더미를 내려다보기도 하며 서로의 옷에 붙은 깍지를 떼어주기도 한다.
저물어 가는 노년의 고단한 어깨를 콩밭에 기대고 있다.
또 그 다음날.
콩대도 깍지도 사라진 허허벌판 밭에 앉은 중년여인이 보인다.
촌 아낙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최신 등산복 차림이다.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원색 조끼가 돋보인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참을 수가 있어야지. 노인의 콩밭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아줌마! 뭐하시는 거예요?”
검은 비닐봉지 하나 움켜쥔 여자가 별꼴이라는 자세로 힐끗 나를 올려다본다. 아무런 말이 없다. 대답도 필요 없다는 건가. 보면 모르냐는 태도다. 땅바닥이 뚫어져라 콩알을 찾아 주워 담는다. 이삭 줍는 도시여인이다.
도대체 노인은 콩 농사를 제대로 거둔 것인지 사방에 콩알이 박혀있다.
새떼, 들짐승 먹으라고 남겨두었을지도 모를 욕심 없는 주인부부의 배려가 도시아낙 손에 모아진다. 두 어 되박은 넘치게 담겨있다.
그나저나 나는 왜 콩밭에 마음 빼앗겨 며칠 동안 넋을 놓았던 것일까.
집안 구석구석 먼지도 털어내지 못하고 말이다.
이 또한 가을 탓이다. 죄 없는 계절만 나의 도리깨질을 맞는다.
노인의 밭에서 삐걱거리던 풍구라도 빌려와야겠다.
거실중앙에 세워놓고 팔 빠지게 돌려대면 틈새마다 갈피마다 잔뜩 끼어있을 묵은 먼지가 털어질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여물지 못한 껍데기는 날아가고, 속 찬 알맹이만 후드득 가슴으로 채워지게.
2009년 10월 31일
콩 타작하는 두 노인 바라보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