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한 뙈기
익숙하게 들판을 더듬는다.
한파 몰아치는 겨울만 아니라면 온 산과 들이 전부 내 땅이다.
바야흐로 가을걷이가 한참인 것이다.
등기부에 이름 석 자 적히지 않았지만 내 것 인양 들락거린다.
가을로 접어들며 도토리와 밤을 모아왔다. 축축한 습기가 온 산에 그득해진 날이면 버섯 보따리도 챙겨들었다.
이제 고들빼기 훑으러 다닌다. 입맛 없는 겨울날 숭늉 말은 밥숟가락마다 척척 얹어 먹을 거다.
봄 산에 두릅 뜯으러 갔던 길에 점찍어둔 곳이다. 가을날 꼭 오자며 허공에 손가락을 걸었었다. 취나물이며 고사리도 쟁여왔더랬다.
역시나 그곳엔 가을고들빼기가 지천이었다. 진액이 묻을까 염려되어 면장갑을 챙겨갔으나 건망증심한 탓에 맨손으로 덤볐다. 자갈이 빼곡하건만 틈틈이 푸짐하게도 올라왔다.
호미질도 필요 없을 정도다. 대충 돌만 몇 개 들춰내면 실한 뿌리를 달고 고들빼기들이 뽑혔다.
보퉁이 가득 가을기운 농축되었을 쓴 뿌리들이 채워진다.
언젠가 밥상위에 올랐을 때 맛보던 딸아이는 오만상을 찡그렸었지. 도대체 뭔 맛으로 먹느냐고도 했다.
어린 시절 뇌리에 각인된 맛이어서 기억되고 그리워지는 것이란다. 하여 어미도 너에게 억지로라도 먹인다. 나중에 네 자식에게 기억된 맛을 전해주라고 긴 설명을 했었다.
짧아진 해의 머리가 산꼭대기로 향한다. 곧 어둑해질 저녁이다.
뿌리 끝에 흙을 털어대며 중얼거렸다.
“내 이름으로 된 한 뙈기의 땅도 없건만, 누가 이렇게 우리 먹을거리를 때마다 잘 가꿔놓았을까?”
“그러게. 전부가 우리 농장이지 뭐!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잖아 그치?”
주섬주섬 보따리 싸매던 남편이 곁에서 맞장구를 친다.
채 한 시간이 지났을까. 제법 불룩해진 보퉁이를 들고 내려왔다.
늘 그러했듯이 산과 들 앞에서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는다. 먹을 만큼이면 족하다.
집에 돌아와 다듬어 정리하니 꽤 많다.
커다란 고무함지 두 개에 물을 담아 쓴물 우려낸다. 한 이틀이면 적당하다.
어젯밤, 드디어 고들빼기김치를 버무렸다. 소금물을 몇 시간 채웠다가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건졌다. 물이 빠지는 동안 양념을 준비한다.
찹쌀 풀, 까나리액젓,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등등. 생강은 즙만 꼭 짜서 넣는다.
건더기가 남으면 입안에서 거칠게 씹히기 때문이다.
고루 잘 섞인 양념에 쪽파도 크게 썰고 물기 빠진 고들빼기를 무친다. 시댁에서 따온 단감 서너 개를 얄팍하게 저미듯 하여 섞었다. 어느 정도 버무리다가 물엿과 통깨를 뿌린다.
간이 배이도록 하룻밤 정도 그대로 두고 다음날 김치냉장고속에 직행이다.
땅속 항아리에 담아 묻어두면 좋겠지만 내 집 아파트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이라는 아득한 제목아래 실천목표 하나만 더 추가할 뿐이다.
첫째는 빨랫줄과 바지랑대를 걸 것이요, 둘째가 장독대와 땅굴 파서 음식저장고 만드는 일이다. 매번 꿈으로만 끝나고 말지만, 꿈이라도 꿀 수 있어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저녁상 차리다가 ...옹기 접시에 담아 찍어봤습니다. 오래 익어야 제맛이 난답니다^^>
에라, 고들빼기김치 얘기나 마저 하자.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 했던가. 하여간 모양새는 끝내준다. 시커먼 고들빼기사이 주황 단감이 삐죽삐죽 보이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참아야 하느니라. 제대로 숙성된 맛을 즐기려면 한동안 고들빼기존재조차 잊어야 하리.
입맛 없어지는 어느 겨울날 문득 냉장고 뒤지다가 까마득한 추억의 산과들 떠올리며 새콤하게 삭혀진 김치 통을 열었을 때서야 제 맛이 나는 거다.
내 땅 한 뙈기 없으면 어떠냐.
죽어 육신 묻힐 땅 한 뙈기 없다한들 역시 어떠하냐.
지천에 널린 것이 내 땅이다 여기며 영혼의 배를 불리며 충만하면 그만이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수확의 기쁨도 가져보고 알토란 내 자식들 볼이 미어지게 먹일 수 있다.
세상의 부자는 땅의 넓이가 아니라,
자신이 지닌 생각 폭 만큼 넓어진다는 것을 고들빼기김치 버무리다 깨닫는다.
속히 흰 눈 내리는 겨울아 오거라.
꼭꼭 숨어 아랫목에 앉아 숭늉 끓여 먹고 싶단다.
잘 익은 고들빼기김치와 곁들여서 말이다.
누구, 같이 먹을 사람?!
2009년 10월 27일
고들빼기김치 담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