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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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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눈물이


BY 박예천 2009-10-22

  

     아직도 눈물이

 

 

교육청 주최로 시내 근교 특수학교에서 부모교육이 있었다.

일반학교의 재학 중이지만, 장애아인 아들의 부모자격으로 참석했다.

귀가 따갑도록 장애아동 부모의 자세만 강조하며 되짚는 자리라면 가지 않았을 거다.

헌데, 평소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미술에 대한 이야기란다.

서울 모 치료센터의 원장님이 직접 와서 실기위주로 이루어진다며 도움반 선생님이 적극 권한다.

배워두면 아들미술치료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겠지.


설악의 봉우리에서 시작된 단풍이 산 아랫마을 도로 곁에도 가득하다. 가로수마다 제빛으로 바람맞고 노랑빨강 출렁인다.

운전대를 잡고 내다보는 시야에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그때가 아마, 속초에 이사 와서 엉거주춤 낯설던 시절이었을 거다. 청천벽력 아들의 장애진단을 받고 하늘이 내려앉았던 때였다. 살아있으나 산 것이 아니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도록 막막하기만 했으니까.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다. 언어치료실로, 감각치료실과 인지학습치료실까지.

대여섯 살이 넘도록 등에 업고 뛰었다. 달리는 자동차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디에서든 악쓰고 울어대는 녀석을 내 몸에 매달고 다니는 수밖에 달리 방법도 없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치료실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모임을 소개받고 갔던 날.

누가 뭐라 말만 시켜도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 나이를 물어도, 이름을 물어 와도, 장애유형을 궁금해 하는 말에도 목이메여와 숨만 헉헉거렸다.

설움에 겨워 그랬을까.

오만상을 구기고 울어대는 나와는 상반된 표정으로 밝게 웃는 어머니들이 보였다.

열 살이거나 아니면 서너 살 나보다 연상이었다. 장애정도가 내 아들보다 심한 아이도 있었다. 허나 그들의 표정엔 안정감이 묻어났고 편안한 말투로 나를 위로해주기까지 한다.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여유가 생길 수 있나 하고 말이다.

체념일까 아니면, 달관이었을까.


세월이 흐르고 예닐곱 명으로 시작된 부모모임의 규모가 커졌다.

신참내기 장애아 어머니가 신고식을 한다. 그녀의 얼굴에 몇 해 전 내가 겹쳤다. 벼랑 끝에 서있는 불안한 안색으로 자기소개를 한다. 우리를 대하자 눈물이 또 그렇게 봇물 되어 흘러나온다.

모임에 들어오던 처음 그날처럼, 이제 내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함께 걷는 동지임을 말없이 일깨우며 손잡아 주었다.


나이를 먹어 삼십 중반이었던 날에서 훌쩍 날아와 오늘이 되었구나.

카오디오를 타고 흘러간 옛 노래가 축축하게 한 타래 늘어진다.

어느새 학교 앞이다. 주차공간에 빼곡한 차들을 바라보며 건물주위 맴돌다 한적한 곳에 내렸다.


시간이 임박한지라 벌써 어머니들이 자리해있다.

이미 접수된 명단에 서명을 하고 돌아서니 반가운 얼굴들이 다가온다.

내 눈물 받아주던 그 어머니들이다. 따뜻한 말로 인사를 주고받다보니 그동안 모르는 얼굴이 꽤 늘었다.

하긴,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 번 결석을 했으니까. 


정해진 순서대로 국민의례도 하고, 강사소개를 받고나니 곧바로 실기교육에 들어간다.

푸른색 실을 이용한 집단미술치료란다. 털실 여러 뭉치 내려놓고 갖가지 미술도구도 나란히 구비되어 있다. 강사가 소개하는 대로 충실히 임하며 실전에 들어갔다. 실의 길이를 자기가 원하는 길이만큼 끊어라, 돌아다니며 길이가 엇비슷한 사람끼리 대화를 해라 등등. 주어지는 과제가 많았다. 상대 바꾸어 가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다시 한자리에 모이라하더니 갖고 있던 털실과 미술도구 이용해 그림을 그리란다. 현재 느낀 기분을 그림 속에 표현해보란다. 다들 열심히 붙이고 색칠하며 정성을 들인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삼십 여명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그림을 강사의 지시에 따라 설명하는 순서다.

어떤 이는 아이와 살고 싶은 소박한 집을 그렸다. 한 어머니는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종이가득 채워놓고 마음껏 아이가 세상을 헤엄치라는 뜻이라 말한다.

대문짝만하게 하트를 표시한 사람도 있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의 순서가 되었는지 한 어머니가 그림 들고 말을 잇다가 그만 울고 만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이 눈물과 범벅이 되어 듣는 사람들의 마음중앙에 닿는다. 그날의 나처럼 설움에 겨워 꺼이꺼이 운다.

나중에 얘긴즉, 장애진단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일반 부모들만 만났다는 것. 스스로 외톨이라고 생각되어 힘겹던 중 같은 입장의 어머니들을 대하니 따뜻함 느껴 눈물바람을 했다는 것.

그 여자의 그림 속엔 아름드리나무들이 꽉차있었다. 나무는 함께 자리한 장애아의 부모들이라 말한다.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어 숲에 들어온 기분이었단다.

듣고 있던 이들이 따라 운다. 곳곳에 고개 들어 위를 쳐다보거나 눈물 찍어내는 이도 보인다.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단 말인가.

나는 눈알만 뻑뻑해지고 충혈 될 뿐 흐르는 게 없건만. 

자신에게 되묻는다.

진정 울지 못하는 이유가 포기인가? 아니면 초월인거냐?

흐릴 눈물이나마 남아있는 그들이 오늘은 참으로 부럽구나.



2009년 10월 21일

장애아동 부모교육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