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친정 바깥마당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니 낡은 나무대문이 지친 내 어깨만큼이나 삐걱거린다. 눈꺼풀이 내려앉을 듯 졸음이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고꾸라져 잠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반기는 부모님 앞에 응석인양 콧소리를 냈다.
“아부지! 저 왔어유. 엄마는?”
일찌감치 마당가 평상에 앉아 딸이 도착하기만 기다리셨을 거다.
“안에 들어가 봐라. 저녁 하겠지 뭐.”
매일 드나들던 딸네가 온 것 마냥 싱겁게 웃으신다. 여전히 무뚝뚝한 아버지다.
이틀 꼬박 일했더니 허리가 시큰거린다. 게다가 시댁에만 가면 변비에 잠까지 오지 않는다. 오랜 세월 지났건만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명절마다 치러야 하니 이제 극기훈련이려니 한다.
지저분한 것들이 나뒹굴며 정리되지 않은 친정이지만 맘이 편해서 일까 긴장이 다 풀린다.
당장 눕고만 싶었다.
대충 보따리를 내려놓고 주저앉으려는데, 할머니방문이 빠끔히 열린다.
세간도 가구도 없는 빈 방에 할머니만 이불 쓰고 누워 계신다.
치매로 몇 해던가. 올해 딱 구십하고도 한 살 되셨다.
아예 들어가 인사를 드려야겠기에 할머니 방안으로 들어섰다.
특유의 배설물 냄새가 가득하다. 치우고 닦아내도 가셔지지 않는, 시멘트바닥에 까지 스민 그것이다.
몇 해 전에 나는 무심코 들어섰다가 심한 욕지기가 나와 돌아 나오고 말았다.
어머니한테만 짜증 섞인 화를 냈다. 청결하게 치우지 그 꼴이 뭐냐고.
정말이지 어쩌다 가끔 오는 주제에 말이다.
어머니는 조그맣게 웃으시면서 변을 본 후 장판을 들춰내고 버려서 그렇다고 했다.
“거기가 수챗구멍이라는 거여. 오줌두 거기다 죄다 버리니 솔로 문지르고 씻어도 냄새가 난다.”
할머니 양손을 꼭 쥐며 말 걸어본다.
“할머니! 내가 누군지 알어?”
“이게 누구여? 예천이 아녀!”
단박에 손녀를 알아보신다. 기력은 쇠잔해 가는데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해내신다.
거실에 있던 남편이 방문 앞으로 온다.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고개만 방 쪽에 향하고 엉덩이는 거실방향으로 쭉 빼고 섰다.
물론 냄새 때문이란 걸 안다.
“할머니, 저는 아시겠어요?”
누우신 할머니 방향에서 거꾸로 서있는 남자가 뭐라 물으니 형체를 모르셨는지 물으신다.
“누구여?”
“저요, 예천이 신랑이예요!”
“그랴? 몇 살 먹었는디?”
주름투성이 할머니 손을 만지작거리던 내가 냉큼 대답을 했다.
“응...., 마흔 네 살!”
“에구머니! 뭐라구? 왜 그렇게 늙은 놈 한테 시집간겨?”
할머니 기억 속에 나는 스물 몇이거나 서른 초반으로 멈춰있나 보다.
정색하며 놀라는 할머니 목소리에 얼마나 호탕하게 웃었는지 모른다.
“그럼, 할머니는 몇 살인지 아셔?”
“나? 알구말구. 육십 둘이여”
그렇다. 당신이 육십 둘의 연세이니 손주 사위 사십 넷의 나이는 도둑놈인 게다.
잠시 웃고 떠드는 사이 아버지가 뭔가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신다.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이다.
“에구! 여기 또 흘리셨네. 여보! 어머니 보물 나왔어요!”
그때서야 엉덩이 바깥쪽으로 쭉 빼고 엉거주춤 할머니를 아는 체 한 남편의 자세가 이해되었다.
똥내 가득한 방에 들어설 때, 나는 할머니만 보인 거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편은 똥이 먼저 보인 것이고.
그래도 그렇지 괘씸한 남편 같으니. 소똥 짓밟히더라도 외양간에는 성큼 들어갈게 아닌가. 언제 가실지도 모르는 노인인데 측은하게 바라 볼 수 는 없었는지.
생각 같아선 뒤통수에 알밤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시집가서 보니 시할머니도 치매기운이 있었다. 방안에 똥오줌 지린내가 배어 코를 쥐고 싶었다. 방향제를 뿌리기는 했어도 향이 섞인 냄새가 오히려 역했다.
그래도 방안에 무릎 꿇고 시할머니 손을 잡아드렸다. 어른이지 않은가. 남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헌데, 이놈의 남편 하는 꼴이라니.
동생 댁도 그랬다. 새댁인 올케라서 험한 말은 되도록 안하고 지냈었다. 어쩐 일인지 하룻밤을 자고 가는 적이 없다. 한밤중에라도 꼭 짐을 싸서 가는 거다. 개미가 나온다느니 불결하다느니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물론 서울토박이가 일박하기에는 끔찍한 상황이었겠지.
참다못해 딱 한마디 했다.
“너희들, 어디 요양원에 봉사활동 하루 왔다고 여기면 안되겠냐? 불쌍한 노인들 살펴드리고 좋은 일 하다가 하루 자고 간다고 말이야. 정 내키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자고가라. 그래야 자식이다.”
누이의 말이 옳았는지, 손위 시누이가 무서웠는지 그 이후 두말없이 자고 간다.
여기저기 흘려놓은 할머니 된똥을 쓸어 담으며 보물이라 웃는 아버지.
아무 일도 아닌 일상의 부분이라는 듯 미소 짓는 어머니.
매일 치우며 씻기는 두 분도 있는데, 연례행사마냥 들린 주제에 엉덩이는 왜 빼고 섰느냐.
볼기짝을 냅다 후려치고 싶다만 내 아이들의 아버지라서 참는다.
성경에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라고 써있는 걸 읽은 적이 있다.
비유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보물이라 말하는 곳엔 마음도 더불어 섞여있지 않은가 한다. 자식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할머니 보물(?)이 역겹기만 한 것은 한 치 건너 남의 성씨 손주 사위라서 그랬는지.
할머니는 내가 건네던 인사말에 뭔가 빠져버린걸 아시려나.
칠순을 향해가는 내 어머니 백발성성한 걸 쳐다보다가, 차마 할머니 오래 사시라는 말 몇 해 전 부터 빼먹고 안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일부러 말이다.
보물처럼 키운 손녀딸이 당신을 고물취급 하고 있단 표시를 눈치 채셨을까.
친정에만 다녀오면,
명절 마다 할머니 모습 뵙고 오면,
수많은 상념의 가지들이 빈 도로를 휘돌다가 내 집 앞으로 서성거리며 다가온다.
머릿속에서 몇 날이고 굳은살 내려앉히며 나갈 생각을 않는다.
밤마다 끙끙 앓는다.
나의 보물도 할머니가 아닌 게 분명하다.
2009년 10월 5일
추석명절 친정나들이 다녀온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