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옷이 살의 일부처럼 땀에 달라붙어 끈적이는 여름날.
방학이 되니 날마다 신이 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개울가에 몸을 던진다. 멱감는 아이들은 벌써 한 무리가 첨벙거리고 있다. 나도 질세라 옷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덩치가 좀 큰 녀석들은 개울 옆 웅덩이를 풀장 삼아 코를 쥐고 잠수도 하며, 눈알이 빨갛게 되도록 나올 생각을 않는다. 개울은 그래도 흐르는 물이니 맑기나 하지 흙물 웅덩이는 바닥이 들여다뵈지 않아 깊이를 가늠 할 수도 없고 잠깐만 몸을 집어넣었다 꺼내면 종아리며 발등에 꼬물꼬물 거머리가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 예사이다.
얕은 물이 지루해졌는지 친구 중 몇이 둑 넘어 웅덩이를 향해 손짓한다. 내키지 않았지만 무리에 끼어 놀이를 계속하려면 참는 수밖에 없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웅덩이로 들어간 나는 물놀이는 뒷전이고 온몸을 수시로 확인하느라 눈길을 다른 곳에 돌릴 수가 없다. 좀 더 깊은 곳으로 가보자고 손을 잡아끄는 친구 녀석을 뿌리치고 계속해서 두 발을 정신없이 움직였다. 거머리가 미처 내 살에 달라붙는 틈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해보는 짓이다. 헛발질에도 소용이 없었는지 내 종아리를 쳐다보던 한 녀석이 “야, 거머리 붙었다” 라며 크게 외치는 소리와 동시 자리에서 팔짝거렸다. 무리 중 용감한 여자아이 하나가 얼른 다가와서는 의기양양한 폼을 잡으며 잡아 떼어준다.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애였는데 거머리 떼어주던 순간부터 그 애를 존경하기로 결정했다. 친구가 위대해 보였다. 거머리가 배불리 먹지 못한 선홍빛 핏물이 종아리 아래로 봉숭아 꽃 물처럼 찍혀있다. 나쁜 놈 감히 내 피를 빨아먹을 괘씸한 짓을 거행하다니.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는 영 틀린 일이고 입술이 파래지도록 떨리는 몸을 햇볕으로 달구어진 커다란 돌 위에 앉아 말리고 있었다. 흙물 웅덩이에서 나온 녀석들이 입고 있던 속옷을 개울물에 몇 번 헹구더니 돌 위에 올려 말린다. 웅덩이 속에서 흙물로 잘 염색된 팬티는 원래빛깔이 그러했던 것처럼 개울물에도 빠지지 않고 누렇게 바랜 색이 되어버렸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께 잔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뻔 한 일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사내아이 둘이 풀밭을 헤매는 게 보인다. 한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가 들려있고, 또 다른 손은 거지들이 들었음직한 철사손잡이 깡통을 가방처럼 걸고 있다. 막대기로 풀 무더기를 헤집으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보았는지 잽싸게 들고 있던 막대기를 힘차게 내리친다. 씩 웃더니 풀밭 속을 들추어 무엇인가를 잡아든다. 징그럽게도 커다란 개구리였다. 개울둑을 따라 도리깨질하듯 풀밭을 헤치고 다리께 까지 왕복하며 깡통 속에 저금처럼 모아 쟁여 넣는다. 너무나 궁금해졌다. 도대체 저 많은 개구리들을 어디에 쓰려고 잡아대는 것일까.
기대한 만큼의 양이 모아진 것인지 녀석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지금 생각하기에도 끔찍스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개구리의 몸통에서 다리만을 떼어내어 깡통 속으로 소복하게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둘의 행동은 익숙하게 잘 분업화되어 있었다. 분리작업이 다 끝났는지 개울물에 잘 씻는가 싶더니 다시 깡통에 집어넣는다. 다음 장면에 비하면 지금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다.
준비성도 철저하여 고추장을 담아왔다. 개구리다리 담긴 깡통에 벌겋게 넣고 버무리는가 싶더니 돌멩이 두 개를 고인 후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핀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양념구이쯤 되려나. 앞서 행해진 그들의 잔인무도함과 만행을 지켜 본 터라 자리를 피했어야 하는데도 나는 어느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지글거리는 냄새에 군침까지 처절하게 흘리고 있었다. 멱을 감느라 힘을 다 써버렸는지 적당히 뱃속은 출출해져 근처 옥수수 대라도 질겅거리며 씹고 싶었다. 큰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는 꼴이 안됐는지 그중 한 아이가 “ 너도 먹어볼래? ” 한다. 입 속에 넣어주기라도 할까 엉겁결에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개구리 양념구이가 다 되었나보다. 자리에서 다 먹지 않고 다른 깡통으로 옮겨 담더니 둑 위로 올라간다. 마을까지 구불구불 길게 늘어진 논두렁위로 내려 걸어가는 두 녀석들은 가위 바위 보를 연실 해대며 이긴 사람이 양념개구리 한 개 입안에 꼴깍 넣기를 반복하며 점점이 작아진다.
그날부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맛이 어떠했는지 정말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알고 싶어졌다. 전에 엄마는 부뚜막 앞에서 메뚜기를 구워먹는 나를 보시고는 “너 이제 잠들면 꿈에 메뚜기 가족들이 나타나서 잡아먹으려고 할 걸? ”라고 말씀하셔서 통곡했던 일이 있었다. 개구리를 잡아먹어도 꿈에 그런 수난을 겪게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딱 한번만이라도 맛을 보고 싶었다.
열기 뿜는 해가 호박잎새를 축 늘어지게 하던 여름중간 어느 날, 남동생들이 구워먹던 개구리 뒷다리를 드디어 맛보게 되었다. 닭고기 보다 더 부드럽고 고소했던 맛으로 이제껏 기억 속 혓바늘에 촘촘히 박혀있다.
겨울날 삼촌이 새총이나 그물로 잡은 참새를 이글거리는 화롯불 위에서 굵은소금 적당히 뿌려 구워먹었다. 빼놓을 수 없는 유년의 맛 중에 하나이다. 참새구이를 먹는 내 입 모양이 너무나 얄미웠는지 어머니는 참새가 자기의 고기 맛을 뽐내며 소한테 했다는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신다.
“ 네고기 열 근에 내 고기 한 근을 비하겠느냐? ”
이렇게 참새가 종알거렸다는 말씀을 하시며 미소 지으셨다.
그 시절 시골에서 자란 세대들이 그러하듯이 여름이면 들녘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먹을거리였다. 옥수수 대에서 단물 빼먹고 찔레 순 까먹으며 논두렁사이 나온 껌 풀도 씹어댔다. 가을이면 학교에서 오가는 길옆으로 목을 빼고 흙 위로 올라온 무를 뽑아 줄기를 떼어버리고 손톱으로 빙빙 돌려가며 껍질도 까서 어적어적 깨물어 먹었다. 나중엔 손톱 밑이 쓰려오기도 해서 그만 둘만도 한데 한입 베어 물 때 입안 가득 고이던 시원한 맛을 무엇에 비하랴. 누렇게 익은 황금 들판 헤치며 메뚜기를 잡아 굴비두릅처럼 엮어 구워먹기도 했다.
아! 개구리 뒷다리 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