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한 모금
“고구마 한 상자 보내주랴?”
우물가에서 할머니 똥 싼 이부자리를 두들긴다는 어머니 목소리.
딸한테는 늘 보낸다는 한 가지 말밖에 모른다.
옆에 할머니가 앉아 계시다며 전화를 바꾼다.
내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들으시는 할머니 목소리에
금세 콧소리 잉잉대는 어린손녀로 바뀐다.
“할머니! 고등어 무 조림 해줘!”
“은제 오는데?”
“맛있게 해주면 가지.”
“고등어 사와. 우리 집 가서 해 줄 테니.”
끝내 거긴 당신집이 아니란다.
피땀 흘려 평생 일궈내고 자식 손자 키운 뜰 안 이건만 친정집이란다.
회갑 넘긴 맏아들이 오라버니로 보이고,
며느리는 올케가 되었다.
손자에게 조카이름을 붙여주는 할머니.
그래도 내 이름만은 변하지 않고 손녀자리다.
방안에만 갇혀 지내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맏손자가 마당가에 앉혀드렸다고 한다.
가끔은 산책도 해야 된다면서.
진정한 효도는 가까이에서 보살피며 모시는 거다.
어쩌다 한번 사탕봉지나 들이밀고 오는 나는,
행사 때만 찾는 방문객에 불과하다.
날이 추워지는 탓일까.
무쇠화로에서 끓던 할머니 음식들이 그립다.
짧은 겨울해가 서쪽 동산으로 제 모습을 감추고
마릿골이 어둑해질 무렵.
귀가하지 못한 수험생 손녀손자를 마중 나가신다.
한 놈은 뽕밭너머 수박골에서,
또 한 녀석은 정반대편 개울다리건너 저벅저벅 걸어올 것이니
번갈아 핏줄 찾느라 저린 다리 쉴 틈이 없다.
막차시간에 맞춰 화로의 숨은 불씨들을 깨우신다.
호호 불어가며 냄비에 온기가 모아지도록.
그리하여 찌개가 알맞게 데워지도록.
설악산을 넘나드는 바람이 하루가 다르게 겨울행이다.
잎을 흩날리고 가지들은 소름 돋게 한다.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옛사랑과, 음식과, 사람들을
그리워만 하는 나는 얼간이.
목마르게 그리워하면.......,
단 하루만이라도 돌이킬 수 있기라도 해야 말이지.
“쌀 떨어질 때 되지 않았냐?”
“엄만, 별 걱정을 다해. 내가 알아서 할게.”
“거기 쌀 맛없다며?”
“괜찮어. 그래도 쌀인 걸.”
나는 얼마만큼의 내공을 쌓아야 친정어머니 경지에 도달할까?
어머니 삶이 위대해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그릇의 작음을 본다.
기력이 다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실려와 어깨에 닿는다.
그래, 너희들이라도 잠시 쉬었다 가렴.
2005년 10월 25일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