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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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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


BY 박예천 2008-12-22

 

                      문짝

 

 

 

 “피난길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에 남아있는 문짝이 한 개두 없는 거여. 온 마을을 죄다 뒤졌지. 뒷산중턱에 가보니까 게 있더구먼. 빨갱이들이 집집마다 떼다 버리고 갔는데 한눈에 봐도 우리 문짝인 거여. 머리에 이고 정신없이 뛰어내려왔지. 문짝 제자리에 달아 놓으니 그제야 집 꼴이 나더라.”

 

할머니는 이어가던 말씀을 중단하고 밭은기침 잠시 쏟아내시더니 문풍지 쪽을 한손으로 쓸어 내리셨다. 문짝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겨울 칼바람이 할머니 손사래에 내쳐진 걸까. 얇은 창호지문이라서 손짓 말도 바람이 금세 알아듣나보다. 바깥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행여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드나들기라도 하면 손자들 고뿔 걸릴까 재빠르게 풀칠을 하셨다.

육이오, 일사후퇴 거뜬히 버텨낸 장한 문짝들이다. 박씨 가문 가족사에 길이 빛날 이름으로 남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 주인공인 문짝사냥을 다닌 지도 어언 서너 해가 되어간다.

옛 물건들을 수집하는 증상도 전염이 되는지 이제 남편이 한술 더 뜬다. 폐가 주위를 맴돌기만 할뿐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 나와 다르게 남편의 모험정신은 날이 갈수록 용감무쌍해진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기와조각에서부터 뒤란에 커다란 장독까지 집어올 태세다. 아예 집 한 채를 통째로 옮겨버리자 할 정도로 기운찬 모습이다.

가끔은 궁금하다. 그저 덩달아 신이 난 것인지, 아니면 남편도 나만큼 지나온 세월모서리에 기대고 싶은 그리움의 열병을 앓고 있는지.

 

나는 골동품애호가도 아니고, 고고학은 더더욱 접해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내 나거나 퇴색하여 때 절은 물건들만 찾아다니게 된다. 지나온 삶을 되짚는 나이가 되어보니 건질 것은 전부 놓쳐버리고 헛된 욕심에만 목을 매고 살지 않았나싶다. 마음을 골백번 비우고 순전한 어린양의 심성으로 산다 해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육신의 나이테를 들여다본다. 얼기설기 사연 짙은 색으로 여러 겹 그려놓았구나. 몸이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점으로 생각만 줄 달음박질을 친다. 그리하여 배경 속에 어울렸던 물건들을 훔쳐오게 된다.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고향동네 고샅에서 무릎을 긁어놓았던 것과 닮았다는 구실로 슬쩍 집어오기도 한다. 천지사방에 흩어져 둥지 틀고 있을 유년의 벗들은 언감생심 기억에 떠올릴 재간이 없어 애꿎은 소품들에만 군침을 삼키는 것이다.

사실 문짝만 해도 그렇다. 몇 해 전 친정집을 개조할 당시엔 처치곤란의 쓰레기였다. 담벼락에 세워졌다가 땔감으로 쪼개져 아궁이불속에 사라졌다. 시린 방구들이나마 한나절 데워주고 떠났을 것이다. 그때 집어오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다.

 

시대가 변하니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산골사람들도 도시의 정방형 건물들에 동경심을 갖기 시작한다. 사시사철 더운물 콸콸 쏟아지는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완벽한 방음장치 내세우는 이중창 안에 들어가 가족들끼리 꼭꼭 숨는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서는 절대 집안의 소소한 일을 가늠하기 힘들다. 만약 이웃이 섣부른 참견을 할 경우 사생활침해로 경찰에 넘겨질 일이 된다.

이사를 가고 주인 잃은 빈집마다 찢긴 창호지 문짝들만 매달려 덜렁거린다. 경첩에 못질을 한 것도 아니어서 슬쩍 들어올리기만 하면 빠진다. 승용차 뒷좌석에 문짝하나를 싣고 오던 날은 마냥 마음이 들떴더랬다.

누렇게 색이바랜 창호지를 뜯어내고 욕실에서 물을 끼얹으며 솔질을 했다. 부엌 가까운 쪽의 문이었던 탓인지 그을음냄새가 진득하니 배어있었다. 뽀송하게 잘 마르면 말갛게 비취는 창호지를 바르리라 벼르고 있었다. 꽃잎을 붙여볼까, 단풍잎을 올려놓을까 마음만 급했다.

허나, 막상 나무냄새 진하게 풍기는 문짝을 세워놓고 보니 그 모습이 더욱 정겨웠다.

 

방안과 마당의 경계가 단지 창호지 한 겹이던 시절이 있었다.

장지문만 열면 흙먼지 뽀얗게 일던 앞마당이 보이고 사립문 밖으로는 옆집 할아버지 지게위에 꼴짐이 담장을 따라 올라가기도 했다. 지나가던 동네 아낙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쉬었다가 방문을 열지 않고도 방안의 주인과 말을 주고받던 때였다. 종이 한 장 두께로 안과 밖의 형식적인 금만 그어놓은 셈이다. 살을 에는 한겨울 삭풍도 잘 견뎌냈던 창호지문짝들이었다.

 

나무소재가 최신금속문틀로 바뀌어 갔듯이 할머니도 세월 따라 병약해지셨다. 바깥세상 궁금해진 할머니는 이제 튼실한 목재문짝을 두발로 두드린다. 방안에 갇혀 산지 여러 해. 아마도 창호지 바른 문짝이었다면 벌써 박살이 나서 마당으로 내달렸으리라.

코스모스 꽃잎 따다 귀얄로 풀칠하고 입안에 머금은 물 한 모금 내 뿜었던 기억도 할머니에겐 남아있지 않다. 할머니 문짝은 치매가 야금야금 갉아먹어 지금 내 앞에 세워진 문짝모양을 하고 있다. 생선살 발라 자식 손자 먹여 키워놓고 정작 당신은 가시만 남아있다.

전쟁 통에 없어진 문짝 찾아 골짜기를 더듬고 마침내 목이 휘도록 머리에 이고 왔건만, 방마다 쇠고리 걸어 닫고 뜨시게 데운 아랫목에서 가족들 보듬었건만 문짝 안에 숨겨지고 말았다. 밥 먹고 돌아서도 배고프고 돌아가셔서 곁에 없는 할아버지 찾아내라 외친다. 뼈대 앙상해진 기억의 문짝위에 빛바랜 창호지만 애달프게 덧바르고 계신다. 헛손질로 회상의 풀 먹이는 할머니 뵙고 오는 날엔 손녀딸 가슴도 밤새 저며 온다.

 

폐가에서 건진 문짝을 거실 벽에 기대놓고 나는 틈만 나면 추억의 창호지에 풀을 먹인다. 흑백사진 한 장 붙여봤다가 조롱박덩이를 문고리에 걸어놓기도 한다. 집을 찾아오는 이들마다 오래 묵은 골동품인양 들여다보고 희한한 표정을 짓는다. 안주인인 내가 뼈대만 남은 문짝에 그리움의 풀칠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구멍 숭숭 뚫린 모양그대로 지켜볼 작정이다. 유년의 앞마당 풀냄새와 이웃들의 구성졌던 정담이 정교하게 깎인 문짝의 사각틈새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 거린다.

그것은 할머니와 나 사이를 잇는 둘만의 비밀문짝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