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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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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북소리


BY 박예천 2008-12-22

 

                      북소리

 


저 소리는 무엇이더냐.

이제 막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을 뿌연 공간에 북소리가 아침을 가른다.

악전고투 끝에 울려대는 어린 병사의 승전고인가.

아니면, 생활고에 찌들은 선량한 백성의 신문고 소리인가.

고막을 자극하던 개소리가 잠잠해졌다싶으니 북소리가 웬 말이냐.


주인의 단속이었는지 날마다 짖어대던 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 쾌재를 불렀는데,

오늘은 북소리다.

눈을 뜨지 못 하는 잠 속에서도 소리를 탓하지 못함은 핏줄이 당겨오기 때문이다.

북채를 들고 겁도 없이 온 집안을 둥둥거리는 녀석은 바로 금지옥엽 내 아들이다.

어제 밤늦도록 들떠 북을 울려대더니만,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수선을 피운다. 좋아하는 장난감 손에 넣게되어 밤새 잠을 설쳤나보다.


요즘 아들의 관심사는 온통 소리에만 쏠려있다.

손과 발로 장식장 유리에서부터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두드려 보느라 눈이 빛난다.

첫돌을 넘겼을 무렵 상태를 잘 몰랐을 때는 특이한 현상이 보이면 좀 극성스러운 녀석이라 여겼다. 큰 병원을 오가며 진단이 내려지고 그것들이 문제가 있는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특이한 모습이 보이면 내 아이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누가 볼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전전긍긍 진땀을 흘리기에 바빴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어미의 몸부림이었을까.


서서히 아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어차피 내 살아있는 동안 거두어야 할 자식이라면 그래야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허나 그것이 체념이거나 포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저 문제 행동을 꾸짖고 제지하기보다는 이해를 해보자는 쪽이었다.

특수교육 전문가들의 주장은 각기 달랐다. 처음 얼마간 내가 시행착오를 겪고 우왕좌왕 했던 것도 전폭적으로 그분들의 주장만을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분야의 권위자이고 수많은 장애아동들을 다루었으니 임상경험도 중요하리라.

그러나 나는 전문가들의 판단이나 교육방법이 내 아들에게 모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이를 가장 잘 파악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스승은 낳은 어머니이다.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교육방법을 자기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어머니가 필요 적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내 아들도 어떤 분은 문제행동이 나타나면 강하게 꾸짖고 벌을 주라 했다. 시키는 대로 해보니 행동수정은커녕 오히려 더욱 소리를 지르며 짜증만 심해졌다.

방법을 바꾸어보았다.

컵에 물을 옮기는 행동만을 연속적으로 하는 경우, 거실은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이 된다. 심한 경우 밥을 먹다가도 국물만 보면 국그릇과 밥그릇에 교대로 옮기는 행동만을 한다.

아무리 흥미 있는 장난감을 옆에 놓아주고 관심을 돌리려해도 계속한다. 나는 욕실로 자리를 옮겨주고 컵과 그릇들을 잔뜩 가져다주었다. 마음껏 물을 퍼 담으라고 했다. 몇 달 동안 그 놀이만 집중해서 했다. 자연스럽게 기회가 뜸해지더니 이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얘기가 길었지만 그래서 녀석의 손을 잡고 주말 오후 완구점엘 들렀다.

두들길 수 있는 악기장난감을 몇 가지 골라 왔다. 심벌즈, 탬버린, 캐스터네츠까지 들어있다.

아들은 입이 귀에 걸려 좋아라 한다.

이제 밤낮 얼마간을 저 소리만 듣게 될까. 그래도 개 짖는 소리보다 참을 만 하겠지.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만족을 찾는 것이 더 좋은 아이.

여섯 살이 훨씬 넘어서야 ‘안아 줘’ ‘사랑해’를 배운 아이.

북 치는 소년을 자청하고 나선 녀석이, 질리게 두들겨대고 난 뒤 무엇을 찾을까.

구해줄 수 없는 것만 아니라면, 죄다 앞에 대령해 줄 것이야.

녀석이 행복하다면 설악산 흔들바위인들 못 짊어지고 올까.

근데......,정말 구해달라면 어쩌지? 


설악산 등산길에 흔들바위 보이지 않거든 우리 집으로 연락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