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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새소리


BY 박예천 2008-12-22

 

                      새소리

 

 


저녁밥을 먹은 후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산책은 핑계이고 걷는 동안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어서 좋다.

반찬값이니 공과금 계산으로 거미줄을 쳐대던 머릿속이 잠시 휴식을 찾는다.

웬 까치소리지?

어둠이 잦아드는 거리의 나무들 틈에서 요란스럽게 잎들을 뒤흔든다.

이른 아침 까치소리는 반가운 손님의 방문을 알려준다는데 저건 무얼 의미하는 소리일까.


소리에 집착증세가 심한 아들이 까치 있는 곳을 쳐다본다.

덕분에 삶의 찌꺼기 잔뜩 뭉쳐 막아 두었던 내 귓구멍을 열어본다.


세상엔 온갖 잡소리가 난무하다.

익숙하여 둔해졌다지만 자동차 경적소리나 공사현장의 드릴소리에서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가.

어쩌면 아들이 귀를 막고 찌푸린 인상으로 괴성을 지르는 것은 당연 한지도 모른다.

나무들 우거진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소음공해라며 귀를 틀어막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정신분석 운운하여 그를 치료하려 들겠지.

정작 듣고 살아야 할 소리들을 도둑질 당한 것도 모른 채 사람들은 오만가지 굉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들을 겪어내느라 안간힘 쓴다.


신혼시절 남편과 나는 성격차이로 불협화음을 자주 빚어냈다.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소리 내어 싸울 수 없었던 터라 툭하면 얼굴에 비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여름이 무르익던 어느 저녁에 울퉁불퉁 골이 난 나를 보시던 시어머니께서 남편의 등을 밀며 둘이 밖으로 산책을 다녀오라는 것이다.

주섬주섬 낚시도구를 챙겨들은 남편이 못이기는 척 떠밀려 내 손을 잡아끈다.

“흥, 누가 모기 뜯겨가며 밤낚시 한다고 했나?”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모로 꼬고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밤이 깊었으니 내 표정은 들키지 않았다.

입을 한자나 빼어 물고 눈 꼬리가 볼썽사납게 올라간 얼굴만 차창에 반사될 뿐이다.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다투었는지 기억에도 없다.

맞지 않는 톱니를 억지로 맞추는 것은 아닐까 고민되기도 했었다.


남편과 내가 도착한 낚시터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지척을 분간할 수도 없는데 풀숲을 헤치며 저벅거리고 앞서 걷는다.

도대체 분위기 좋은 찻집이나 공원은 어디다 팽개치고 이런 야생동물 보호구역 같은 곳엘 왔단 말인가.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대화가 안 될 듯하니 몸싸움으로 승부를 내자는 말인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한 대 때리면, 나도 참지 말고 따귀를 올려쳐야지’

속으로는 연실 시나리오 대본을 꾸미고 있었다.


수면을 향해 낚시 대를 드린 남편 옆에 슬며시 다가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앉았다.

사방에 둘러쳐진 검은 산 속에 친정어머니가 떠오르고 즐겨 뛰놀던 고향집이 그려졌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훌쩍거리며 참고 있는데

“왜 그래? 말 좀 해봐!”

남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발사되는 나의 따발총.

흥분되어 나온 발음은 동강이 나서 알아들을 수도 없고 눈물 콧물 범벅이다.

순간, 울먹이는 하소연과는 상관없이 깔깔대며 웃던 남편이 기습작전으로 다가오더니 숨 막히게 포옹을 해버리는 게 아닌가.


대화는 무슨......, 몸으로 때우려는 저 음흉한 속내에 그만 걸려들고 말았다. 

그때였다. 절묘한 순간에 맞추어 산을 가르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두견새가 피를 토하며 가슴으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깊고 깊은 산 속에서 용감하게(?) 영화를 찍던 우리를 계속 바라보는 관객이 있을 줄이야.

그날이후 나에게 두견새는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살면서 문득 흘러간 시절이 그리운 것은 함께 했던 추억의 사람이 있어서 만은 아니다.

사건을 ‘추억’으로 꾸며준 아름다운 배경들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쫓기듯 무의미하게 살아온 여러 날.

저녁 산책길 퍼지는 까치소리에 잊고 지냈던 신혼시절 낚시터를 더듬어보았다.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부리 가득 사연을 물고 날아와 준 새떼들이 고맙다.


퇴근하는 남편 앞에서 오랜만에 참새처럼 종알거려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