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작전
엄마는 일부러 화난 것을 풀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유뽕이녀석 때문에 속이 부글거립니다.
녀석은 이상하게도 누구든 무엇인가 지시하기만 하면 불같이 성질을 냅니다.
자상하게 일러주는 일에도 마치 자기의 험담이나 꾸중이라고 생각하는지 소리 지르고 온갖 짜증을 내지요.
나이가 어릴 때는 달래주거나 위로해가며 다독거렸는데, 이젠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엔 교회에서 성가연습이 있지요.
아빠나 누나가 집에 있을 적엔 두고 가는데, 그 날은 다들 외출했기에 할 수 없이 유뽕이를 데려갔습니다.
파트별 연습에 열중하던 중, 녀석이 자꾸 혼잣말을 크게 한 모양입니다.
엄마는 소프라노실에 들어가 있어서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었지요. 나중에 듣기로는, 엘토집사님 한분이 녀석을 향해 집게손가락으로 ‘쉿!’하며 조용히 시켜보려 했답니다.
그때부터 난리가 난 겁니다. 집사님 곁에 집요하게 매달려 따지듯 울분을 터뜨리는 거예요. 미안하고 화끈거려 간신히 제압하고 집으로 왔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더군요.
엄마는 이제껏 보였던 것과는 다른 태도로 화가 나기로 했습니다.
낮은 음성으로 차분하게 필요한 대꾸만 하고 어두운 표정만 지었습니다.
가끔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며 슬퍼하는 연기도 했지요.
흰둥이 강아지 견우를 끌어안고 유뽕이가 들리도록 푸념도 합니다.
“아이구! 우리 견우는 참 이쁘네! 엄마 말도 잘 듣고, 미운소리도 안하지요. 화가 나도 잘 참는 강아지니까 엄마는 견우가 참 좋아. 사랑해 견우야!”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유뽕이의 질투심을 자극하기로 한 겁니다.
엄마가 자기 쪽을 외면하니까 얼굴 들이대며 관심 끌기 시작합니다.
“엄마! 유뽕이가 이를 닦았어요. 냄새 안 나죠?”
좋은 냄새난다며 뽀뽀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죠.
일부러 외면해버렸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는 엄마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 교회 가서 성가연습 했는데요, 박집사님하고 막 싸웠어요. 이제부터 사이좋게 지낼 거예요!”
싸우긴 뭘 싸웁니까. 저 혼자 성질내며 팔딱 거렸지요.
옆자리에 누웠는데 엄마는 웃음을 참느라 콧구멍이 벌렁거립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린 척 냉정한 태도를 보였지요.
유뽕이는 엄마 맘을 녹이기 위해 안달이 났습니다.
주일아침, 교회에서 박집사님을 만나자마자 달려가더니 “사이좋게 지낼 거예요!”하며 아는 척을 합니다.
제 딴에도 엄마가 화난 것이 박집사님께 대들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 되는가 봅니다.
오후예배 때는 복음성가 부르는데 가사까지 바꿔 부르며 엄마 곁에 찰싹 붙어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 하노라!’하는 가사를 제 맘대로 고쳐 부릅니다.
“엄마를 사랑 합니다!”라고 부르면서 큰 팔을 벌려 끌어안고 난리가 났네요.
이번엔 크게 작정을 했기에 쉽게 풀어지면 안 됩니다. 진짜 엄마가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매를 들거나 소리 크게 하지 않으면서도 유뽕이가 어려운 게 있어야 하니까요.
엄마의 침묵작전이 사흘째로 접어드는 월요일.
녀석이 달라졌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잘난 척을 하며 엄마에게 점수 따기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방학 중 희망누리학교에 다녀온 시간, 일기를 쓰더군요. 훤한 대낮인데 혼자 시계를 쳐다보며 일어난 아침시각 적느라 심각합니다.
엄마는 일부러 방바닥에 누워 끙끙 아픈 척을 했습니다.
견우를 향해 독백처럼 긴 대사만 읊어댔지요.
“견우야! 엄마가 많이 힘들어. 누나도 엄마 말을 안 듣고, 형아도 화만 낸단다. 그래서 엄마가 속상하고 가슴도 아프고 허리도 쑤시고 그래...아이구, 견우야 어쩌니....흑흑!”
연기에 너무 몰입을 했는지 정말 눈물 몇 방울이 나옵니다.
사실 좀 벅차고 고된 날들이긴 했어요. 방학을 맞아 아빠와 더불어 두 아이들 매 끼니마다 밥 해 먹이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핑계 삼아 신세한탄을 늘어지게 강아지한테 늘어놓았습니다.
“엄마! 유뽕이가 일기를 다 썼어요!”
자랑삼아 다 쓴 일기장을 내미네요.
평소 같으면 과대한 칭찬멘트를 날렸을 엄마.
무표정으로“어, 알았어!”이정도만 했습니다.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뭐라도 해서 회복시키기 위해 유뽕이는 온갖 애교를 떨어댑니다.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느라 그만 잠 자라해도 말을 듣지 않더니, 알아서 끄고 세수까지 척척합니다.
밤 11시가 넘어도 잠자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했는데, 이제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누워 있습니다.
모른 척 물어봤지요.
“너 뭐하려고?”
“네에.., 잠 잘 거예요!”
“알았어, 잘 자라!”
이게 끝입니다. 정말 엄마가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지요?
다음날도 엄마는 초지일관 무뚝뚝합니다.
유뽕이는 엄마 눈을 쳐다보며 애원하기에 이르렀지요.
“엄마! 속상하지마세요. 유뽕이가 형아 될 거예요. 형아니까 엄마 말씀 잘들을 거예요. 코딱지 파서 피도 안 나게 할게요!”
틈만 나면 후벼 파던 콧구멍도 이젠 건드리지 않겠답니다.
하여간 아는 내용 전부 동원해서 엄마 마음을 향해 애교를 떨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자기 쪽을 보고 누우라고 꼬드깁니다.
어젯밤 드디어 아들을 향해 차근차근 엄마 속 털어놓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화가 났거든. 근데 유뽕이를 조금 지켜보기로 했어! 진짜 형아가 될 수 있나 아닌 가 계속 볼 거야. 엄마 가슴이 많이 아퍼. 유뽕이가 잘 해야 치료될 수 있어. 알았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녀석의 눈을 쳐다보며 말해줬습니다.
“엄마! 가슴 아프지 말아요! 속상하면 안돼요. 기뻐져야 돼요! 나를 보고 누워요!”
애가 타는지 자기가 아는 말들로 엄마를 위로합니다.
복장이 터지도록 화가 치밀다가도 엄마 비유 맞추려고 쩔쩔매는 아들의 애교작전을 보면, 또 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힘든 세상 버티고 살아가게 마련인가 봅니다.
2013년 1월 16일
아직도 화내기 작전 중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