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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01 - 기쁨치과원장님


BY 박예천 2012-11-05

 

기쁨치과원장님



새로 전학 간 특수학교에서 맞이하는 첫 축제가 있었습니다.

오전엔 아이들이 평소 준비한 발표회를 열고, 오후시간은 체험활동으로 진행된답니다.

도시락도 학교 측에서 제공한다기에 엄마는 맨손으로 곱게 차려입고 터덜터덜 나섰지요.

선생님께 미리 들은 바로는, 유뽕이네 학급은 우산 춤을 춘다는군요.

유뽕이녀석 연습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몇 줄 보내신 알림장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땡땡이를 치며 협조하지 않았을까 상상이 됩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첫 순서는 끝나가고 곧바로 두 번째가 유뽕이네 차례입니다.

음악 두 곡에 맞춰 춤을 춥니다. 앞 곡은 동요이고 다음 노래는 가요 ‘빗속의 여인’이네요.

어머나!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줄맞춰 입장하는 아이들을 보려는데, 유뽕이 우산만 상태가 이상합니다.

다들 팽팽하게 우산을 펼쳤건만 녀석의 우산은 쭈글쭈글 하네요. 살펴보니 고장이 난 모양인지 손으로 꽉 지탱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나오고 뱅그르르 돌리며 춤춰야하는 유뽕이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우산이 꺼질까, 왼손으로 접히지 않게 고정하는 것도 힘든데 박자 맞춰 춤도 춰야 합니다.

엄마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차라리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요. 겨우 시간만 잘 버텨주길 바랐는데, 더 큰일이 터져버렸습니다. 힘을 너무 세게 주었는지 우산 꼭지부분 플라스틱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네요.

이제 유뽕이는 좀 당황스런 표정이 됩니다. 흐르는 음악 순간순간 앞쪽의 담임교사를 향해 뭐라 중얼대는 것이 보입니다.

아마도 우산이 망가졌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같았죠.

시간이 흐를수록 헝겊은 분리되는지 우산살 두어 개가 삐죽이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유뽕이 태도였습니다. 점점 찢어져가는(?) 우산을 들고도 신나게 춤추고 있습니다. 노래 중간 중간 엄마를 향해 브이자도 그려주고, 윙크하는 센스도 보이고요. 엄지손가락을 세워 엄마가 최고라는 표시도 합니다.

처음에 녀석의 우산을 보며 안타까운 한숨짓던 관객들이 이젠 박장대소 합니다.

너덜거리는 우산을 들고도 당황하지 않으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유뽕이가 대견하다며 곳곳에서 엄마들이 소리칩니다.

오늘의 MVP상이 있다면 유뽕이에게 주라고 말하는 학부형도 있습니다.

역시 엄마 닮아 실전에 강하며, 무대체질인 아들입니다.

두근거렸던 시작과는 다르게 엄마도 어찌나 웃었는지 볼 살이 뻐근했지요.

나중에 선생님께 들은 얘긴즉, 막 무대로 입장하려는데 우산이 망가진 것을 알았답니다. 유뽕이에게 손으로 잘 잡고 하라고 했다네요. 여분의 우산이 없었고 마땅히 지시를 따라줄 학생이 녀석뿐이었다고 합니다.


아는 엄마들과 잔디밭에서 점심 맛나게 먹고 전시된 아이들 작품을 감상하러 갑니다.

유뽕이는 2학기에 전학을 온지라 활동한 작품이 몇 개 없습니다.

그 중 ‘나의 꿈 책’이라는 것이 눈에 띄어 녀석의 것을 살펴봅니다.

낯익은 유뽕체 글씨가 보입니다.

자기의 장래희망은 ‘치과의사’라고 크게 써놓았네요.

언제부터인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의사가 되겠답니다.

만든 책의 옆 페이지를 보니 ‘치과 의사가 되려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답으로 유뽕이는 뭐라 적었을까요?

‘형아니까!’ 이렇게 썼습니다.

아주 간략하고 대단하지 않습니까?

치과의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단지 형아이기 때문이라는 울 아들의 답.

간단명료한 그 글씨를 읽으며 엄마는 또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는 낮 동안 있었던 일들을 아빠와 선뽕누나에게 중계방송 하느라 온 몸과 입으로 재연하기에 바빴지요.

다시 얘기를 해도 또 웃깁니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굵직한 음성으로 부르며 유뽕이 우산 춤 흉내를 내었지요.

당사자인 유뽕군은 자기 방에서 어색하게 쳐다보기만 합니다.


가을밤이 깊어갑니다.

시간이 늦어 유뽕이를 재우려는데 잠자기 싫다며 녀석이 떼를 씁니다.

장난기 발동한 엄마가 놀려댔지요.

“어이! 유뽕군. 너 치과의사 된다며? 이렇게 징징 거리면 치과이름을 뭐라 할 거야? 징징치과? 신경질치과? 자꾸 이러면 짜증치과라고 할지도 몰라!”

유뽕이는 울먹이며 떼를 쓰다가 버럭 소리 지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징징치과 아니야, 기쁨치과야!”

그 와중에도 치과이름을 정합니다.

이름도 거창한 기쁨치과!

다독이며 우산 춤 공연을 잘 치러낸 유뽕이를 안아줬지요.


다음날 아침이 되니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다며 또 징징댑니다.

엄마가 유뽕이를 깨우며 말했지요.

“우와! 우리 기쁨치과 원장님 일어나셨네요? 잘 잤어요?”

그 말에 짜증 섞였던 녀석의 음색이 곧바로 차분해집니다.

“네!”

한동안 엄마에게 말 안 듣는 유뽕이를 끌고 갈 만한 약이 생겼습니다.

‘기쁨치과원장님’이라고 추켜 세워주기만 하면 곧장 의젓해집니다.


이름은 번듯하게 지어놨는데, 훗날 녀석이 치과를 차릴 여력이 되기는 할지요.

하여간 배포하나는 끝내주게 큰 아들입니다.




2012년 11월 5일

기쁨치과원장님 뵙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