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아버지께.
유뽕이는 친구가 없습니다.
일반중학교까지 다니는 동안 그저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장애인으로 또래들에게 알려졌을 뿐입니다.
상호작용이 없고 간단한 대화조차 어렵다보니 친구들도 곁에 있어주기 따분했겠지요.
운동회나 예술제 같은 학교행사에는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몇몇 순서에 동참했을 뿐입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유일한 유뽕이 친구는 컴퓨터입니다.
처음엔 너무 집착하는가 싶어 못하게 했지만, 그것마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게임 하면서 조금씩 깨우쳐가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동화를 보며 까르르 웃고 게임에 실패하면 안타까운 표정도 짓더군요.
어느 날 부터는 맘에 드는 그림이나 사진이 있으면 인쇄해서 오려대기도 합니다.
커다란 스케치북에 나름대로 구성해서 붙이고 놀지요.
한글프로그램에 뭔가를 열심히 베껴 쓰기도 합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자판 외워서 이젠 제법 글자를 잘 두드립니다.
앞뒤가 맞지 않지만, 나름대로 편지를 써 보기도 하지요.
맘에 드는 찬송가 가사를 가득 적고 앞뒤에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써 넣고 인쇄 합니다.
여러 장 종이 묶어 유뽕식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콩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그날 저녁.
거실 탁자위에 인쇄된 하얀 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굵은 고딕체로 쓴 서너 줄의 글이 적혀있었지요.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나중에 12월 달에 장난감 포크레인이랑 말하는 레미콘이랑 말하는 덤프트럭 사주세요.’
유뽕이를 불러 물어봤습니다.
“유뽕아! 이거 누구한테 쓴 거야?”
“산타할아버지요!”
벌써 성탄선물을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나이는 중학생인데 아직도 장난감 포기하지 못하는 동심을 지녔습니다.
유뽕이에게 설명해 줘도 인상만 구기며 울상이 됩니다.
“에이, 이게 뭐야? 애기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들이네. 유뽕이는 형아 아니야? 형아 되려면 장난감은 그만 갖고 놀아야 되는데..., 그치?”
자꾸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엄마가 못 알아들어서 그런 것이라 여기는지, 인쇄종잇장을 들고 큰 소리로 읽어줍니다.
엄마에게 따라 읽으라는 주문까지 합니다.
계속 거절했다가는 녀석이 대폭발행동을 자행 할 것이 분명하므로 일단 유보시키고 엄마 쪽에서 녀석을 이용할 도구로 삼기로 했지요.
“유뽕아! 그럼 너 이제부턴 착한 형아가 되어야 돼. 화나는 것도 참고, 예쁜 말 하고 심부름도 잘하는 형아 말이지. 알았어?”
“네에!”
대답만큼은 씩씩하게 합니다.
인쇄된 종이를 거실 벽에 붙여놓을까 합니다.
조금이라도 어리광이나 떼쓰는 행동을 할 때 되새겨 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유뽕이가 좀 달라지긴 했습니다.
생전 친구를 몰랐고, 학교생활에서도 별 의미 없이 지내다 오기만 했는데 사건 사고가 생깁니다. 물론 아주 작은 일들이지만 엄마는 아들의 새로운 변화로 여겨져 기쁘답니다.
특수학교로 옮긴 후, 이제껏 없었던 친구문제가 거론됩니다.
같은 반 남자친구에게 질투심을 불어 일으킨 주범이 되어 싸우기도 합니다.
이틀 전에는 옆 반 남자 친구와 티격태격 말싸움을 했다는 담임선생님의 편지까지 받았지요.
맘에 드는 여자 친구 앞에 다가가서는 “내가 누구 게?”라고 하더랍니다.
행복지수를 낮춰서 특수학교로 보내길 잘한 것 같습니다.
자기 수준과 맞는 친구들 앞이라서 자신감도 생기고 입도 열리나 봅니다.
그렇게라도 생각높이가 쑥쑥 커서 세상 앞에 당당해지는 유뽕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등굣길 가방 챙기며 엄마는 아들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보기 좋게 넘겨줍니다.
녀석의 귓가에 이렇게 소곤거리지요.
“유뽕아! 오늘도 친구들 도와주는 착한 형아가 되어야 돼! 어제처럼 점심시간에 친구들 물도 떠다 주고 말이야. 할 수 있지? 그래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갖다 주실 거야.”
‘선물’이라는 말에 눈이 빛납니다.
약효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해 산타할아버지 이름 좀 자주 빌려 쓸 겁니다.
녀석의 순수 속에 간직된 산타할아버지도 흰 수염 쓰다듬으며 꽤나 흡족하실 겁니다.
2012년 10월 12일
장난감 사달라는 아들을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