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픈 영랑이
엄마 가슴은 아직도 울렁거립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문득 영랑이 생각하다보면 울컥 눈물이 쏟아집니다.
얼음공주 선뽕이 누나는 엄마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놀립니다.
“엄만, 참 감성적인 것 같어. 그게 그렇게 슬픈가?”
겨우 키우던 토끼 한 마리가 죽어버린 일인데 좀 어이없다는 표정이지요.
물론 엄마가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봐도 어른답지 못한 태도이긴 합니다.
감나무 아래 봉긋 솟아오른 영랑이 흙무덤을 손으로 쓰다듬어 봅니다.
“영랑아! 잘 자고 있니? 영우가 이사 왔어. 네가 먹던 풀들을 저 녀석이 다 뜯어먹는다.
엄마가, 영우 씀바귀 뜯어줬는데 괜찮지? 네가 고양이들 못 오게 지켜줘라.”
혼자 중얼거리는 엄마 가슴이 또 아려옵니다.
그날.
녀석이 허무하게 죽어버렸던 날.
엄마가 왜 그렇게 목 놓아 울었는지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죽어가는 영랑이를 지켜보며 하찮은 동물의 사라짐으로만 바라 볼 수 없었던 그 심정은, 어디에도 털어놓지 않았으니까요.
꼭 우리 유뽕이가 이 험난한 세상을 겪어내는 모습만 같아서 그랬습니다.
너무 비약해서 상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영랑이는 유뽕이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누구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공격하지도 못하는 착한 유뽕이를 5학년 동생 녀석들이 몰려다니며 괴롭혔던 일.
견디기 힘들어 혼자 울며 자해를 시작하니 그 모습이 우습다고 놀리며 웃던 못된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어렵게 입학한 일반중학교에서는 또 어떠했나요.
단지 자해를 하며 분노했다는 이유로 특수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부터 들어야했던 청천벽력의 말.
‘고집이 센 것을 처음부터 부모가 잡지 못해 잘못 키웠어요. 어설프게 때리지 말고 반쯤 죽도록 패야 돼요. 이런 식이면 우리 학교 못 다녀요!’
영랑이는 사납지도 않았고 주위에 피해를 주는 토끼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족에게 기쁨과 웃음이 배가 되도록 넘치게 퍼주던 토끼였어요.
우리 영랑이가 길 가던 족제비 먹이를 훔쳐 먹었나요. 아니면, 길고양이들이 아끼는 새끼 고양이를 물어 죽였나요.
오히려 그 고양이 떼가 한참씩 유뽕이네 마당에서 놀다가고 냄새나는 똥까지 흘리고 갔답니다.
먼저 공격하지도 않은 대상을, 단지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건드리고 죽이기까지 하는 도둑고양이들이나 몇몇 쓰레기 같은 인간군상의 모습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요.
그래서 울었습니다.
울 영랑이도 내 아들처럼 나약하고 심성 곱기만 한 것이 죽을 이유나 매 맞을 일이어야 하는지 도통 판단이 서질 않아 펑펑 울었습니다.
해서, 아이 하나를 먼저 보낸 엄마처럼 꺼이꺼이 목울대가 아픕니다.
늦은 밤까지 놀러온 이웃 아낙과 이야기 나눈답시고 마당 한 번 나가보지 못해, 영랑이 혼자 피투성이가 되도록 아파했을 생각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마치 유뽕이가 험한 세상에 던져진 채 울먹이고 있는 상상과 영랑이가 자꾸 겹쳐 보입니다.
언제나 엄마는 선뽕이 누나와 유뽕이에게 일러두는 말이 있습니다.
살면서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피해는 절대 주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가족에게 큰 웃음만 주던 영랑이는, 집집마다 다니며 피해만 끼치는 도둑고양이인지 족제비인지 모를 동물이 재미삼아 물어뜯는 바람에 죽어버렸습니다.
물러터진 심성의 유뽕엄마는 돌변했습니다.
이제 우리 집 담장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녀석들만 보면 소리치거나 쫓아버립니다.
영랑이 빈자리를 채워주러 온 영우마저 잃을까 애면글면 속이 탑니다.
부질없이 허공에만 빈 소리를 질러대 봅니다.
제발 홀로서기로 발돋움하려고 애쓰는 장애인들 좀 그만 아프게 하라고.
오늘 밤엔 별이 총총 곱기만 합니다.
영랑이 사진을 들여다보니 보고프고 애달프기만 합니다.
한 겨울 허벅지까지 쌓인 폭설에도, 비바람 몰아치는 태풍에도 꿋꿋이 견뎌냈던 장한 영랑이가 말이지요.
2012년 10월 6일
영랑이 생각에 잠겨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