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날
매월 첫날 아침이 되면, 유뽕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달력부터 점검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달력을 넘겨놓습니다.
우리 집 달력은 딱 두 곳에 걸려있지요.
거실현관 앞에는 은행에서 받아 온 숫자 큰 것이고, 화장실 입구 벽에는 그림이 멋진 교회달력입니다.
유뽕이는 졸린 눈으로 교회달력먼저 10월 그림으로 넘깁니다.
다시 걸어와 숫자만 빼곡한 은행달력도 제 달에 맞게 걸어두지요.
“우와! 역시 우리 아들이 최고네. 달력 넘겨줘서 고마워!”
아주 작은 일에도 유뽕이가 스스로 한 일에는 엄마가 넘치게 칭찬을 합니다.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하려는 격려에서 시작된 일이지요.
아침준비하려고 부엌으로 가려는데 유뽕이가 뭔가를 찾는 눈빛입니다.
예전엔 녀석이 무엇인가 아쉬워하기 전에 엄마가 먼저 달려가 찾아주곤 했습니다.
이젠 유뽕이가 시도하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말로 표현하게 하려고 느긋하게 지켜보는 엄마입니다.
엄마방에서 거실로 두리번거리며 다니다가 탁자 위 연필꽂이에서 굵은 유성매직을 집어 드네요.
달력 앞으로 가더니 숫자 밑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근데 참 이상합니다.
이번 달 기념일이 아닌 곳에 공들여 적어 넣고 있네요.
1일은 삼촌생일, 14일은 외할머니생신, 20일은 아빠생일이 표시된 것 밖에 중요한 날은 또 없었거든요.
유뽕이가 몰두해 있는 숫자는 27일입니다.
“유뽕아! 그 날 무슨 날인데? 뭐라고 쓰는 거야?”
궁금함을 참지 못한 엄마가 다가서며 물었습니다.
녀석은 뭔가 훔치다 들킨 것 마냥 화들짝 놀라며 숫자 앞에서 물러섭니다.
엄마는 유뽕이가 적어놓은 내용을 보고 의아해 하며 물어봤지요?
“어? 이게 뭐야? 뭐라고 쓴 거지?”
“네에..., 아내 날!”
웃음이 나왔지만 또 다시 물어봤습니다.
“아내라구? 아내가 누군데?”
“엄마예요!”
평소 엄마 휴대전화 화면 속에 아빠전화가 오면, ‘남편’이라고 뜨거든요.
물론 아빠의 전화기엔 엄마가 ‘아내’로 떠오르지요.
그걸 들여다보더니 생각해낸 모양입니다.
하지만, 엄마 생일은 봄에 지났는데 왜 적어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하! 이제 알겠네요.
어느 해인가 음력인 엄마 생일이 양력4월27일로 된 적이 있었는데, 유뽕이 머릿속에 엄마 생일은 언제나 27일 된 것입니다. 아빠가 달력에 엄마생일을 적으며 ‘아내생일’이라 표시했었거든요.
가족들 생일을 물어 볼 때면, 엄마생일이 늘 27일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양력 기념일들 속에서 음력인 숫자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사랑이 너무 극진한 아들 아닙니까.
도대체 한 해에 생일을 몇 번이나 해 먹으라는 속셈인지요.
아빠와 아이들이 학교로 바쁘게 달려간 아침.
벽에 매달린 달력을 쳐다보다가 엄마는 빙긋 웃어봅니다.
유뽕이가 27일 숫자에 큰 원으로 테두리를 쳐놓고 그 아래 삐뚤빼뚤 그리듯 써 놓은 ‘아내 날’에서 까르륵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할머니 댁에 가서 명절 지내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선물하는 특별 선물이겠지요.
그 날은 유뽕대장이 선포한 ‘아내 날’이니 우리 집 혼자라도 태극기 게양하고 기념해야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임을 유뽕엄마 권한에 입각하여 밝히는 바입니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2012년 10월 1일
달력담당 유뽕이가 기특한 날에.
저는 처녀시절 직장생활하면서 수화를 배웠답니다.
언젠가 농아인들을 위해 봉사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죠.
가끔 근무하는 어린이집이나 교회에 청각장애인이 올 경우
제가 수화로 대화를 하곤했어요. 물론, 능숙하진 못하지만요....ㅎㅎㅎ
교회에선 수화찬양을 가끔 해요.
힘든 시절이었지만 배워두길 잘 한 듯 합니다.
저를 좋은 엄마로 봐 주셨지만,
다혈질에 못된 성격이랍니다...ㅠㅠ
주말 잘 보내시구요^^
유뽕이는 많이 행복한 아들입니다
이런 분을 엄마로 만났으니 말입니다
제동생이 다섯살에 청신경이 마비되며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요
우리가족들이 누구도 수화를 모릅니다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지요
친정어머니께선 수화 배우는 시간을 아끼셨어요 왜 그런지 그이유를 아직도 모르지만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간단한 수화정도만 알아요
동생부부에겐 실로 미안하지요 개그맨 신동엽씨네 가족은 모두 수화 사용하더군요 그렇다고 우리가 동생을 덜 사랑하진 않는데 말입니다
예천님의 글을 접하면 놀랍니다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구나 싶어요
그러므로 유뽕이가 이리도 어여쁘게 잘 자라주는 것 이고요
지나칠 정도로 매달리죠.
거의 스토커수준이라니까요...^^
예천님은 칭찬 받을 자격을 갖추신 엄마라는 느낌 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