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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83 - 제발 그러지마!


BY 박예천 2011-10-13

 

           제발 그러지마!

 

 

 

 

엄마는 낮 동안 있었던 일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곱씹어 생각해 봐도 서글프기만 합니다.

 

요즘 유뽕이는 학교공부가 끝나고 새로 산 노란 자전거를 한참이나 탑니다.

학원 갈 시간도 잊고 운동장만 뱅글뱅글 돌지요.

미술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한 시간쯤 자전거 타다 가기로 했습니다.

녀석이 넓은 운동장바닥에 자전거 바퀴자국을 찍어대는 동안 엄마는 책을 읽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읽어도 유뽕이는 자전거에서 내려 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루해진 엄마는 집에 있는 얼룩토끼 영랑이 먹이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학교 담장 곁과 중앙건물 앞 화단가를 돌며 토끼풀을 뜯습니다.

영랑이가 좋아하는 씀바귀와 민들레가 곳곳에 많네요.

채소밭 일구는 아줌마처럼 쪼그리고 앉아 풀 뽑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지요.

순간, 근처에서 유뽕이의 분노어린 울먹임이 들립니다.

다급하게 달려가 보니 5학년 남자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놀려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선생님께 일러버릴 거야!’라는 말만 하면 악을 쓰며 우는 유뽕입니다.

학교생활 중에 몇 번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과민 반응하는 모습이 재밌었는지 아이들은 떼를 지어 놀려댑니다.

유뽕이는 거의 숨이 넘어 갈 지경이 됩니다.

“이르지 마! 이르지 말라구! 엉엉.”

같은 말만 반복하며 서럽게 울고 있네요.

화단 앞으로 나선 엄마가 몇몇 아이들 향해 호통치고 평정을 찾게 되었지만, 속상했습니다.

 

다시 자전거를 타게 해주고 돌아서 걷는데, 5학년 여자아이가 달려와 말해줍니다.

“아줌마! 우리 반 정재원이가 유뽕오빠를 자주 때려요! 발로 계속 차고 그래요. 유뽕오빠가 아프다고 말해도 자꾸 때렸어요. 나중엔 유뽕오빠가 울면서 자기 머리를 막 때렸어요. 그러는 게 우습다고 재원이가 더 때렸어요!”

심리적으로 불안한상태가 되면 하게 되는 자해습관이 나온 겁니다.

얘기를 듣던 엄마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어요.

집에 와서 재잘재잘 말 전하지 못하니, 녀석이 맞고 다닐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방금 전에도 2층 도서관 창문에서 유뽕이를 향해 놀리면서 웃던 바로 그 녀석이었습니다.

꼭 잡아서 뭐라 주의라도 줄까 했는데, 어느새 도망갔는지 없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5학년 정재원이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살고 있답니다.

학교에서도 문제가 많은 아이라 선생님들까지 골치를 썩는 모양이더군요.

 

집에 와 아빠에게 그 얘기를 하니 불같이 소리 지릅니다.

“그런 녀석은 가만두면 안 돼! 계속 우습게보고 유뽕이를 괴롭힐 거라구. 아주 따끔하게 혼내줘야 해. 내일 꼭 붙잡아서 두들겨 패줘!”

아빠는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밤이 깊어가도 엄마는 생각에만 빠져있습니다. 낼 아침 어떻게 혼내줘야 효과가 있을까 하고.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서둘러 학교에 갑니다.

도움반에 유뽕이를 보내놓고 5학년 교실로 향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정재원 자리는 비어있습니다.

기다리다가 조금이라도 실내가 소란스러워질까 걱정되어 교문 근처로 다시 나왔지요.

그 때, 횡단보도를 건넌 정재원녀석이 교문 안으로 들어섭니다. 엄마는 성큼성큼 걸어갔지요.

“야! 너, 이리 와봐. 네가 정재원이야?”

“네에...”

천연덕스럽게 무슨 일이냐는 표정입니다.

“너 나 알지?”

“네에....., 유뽕이 형아 엄마요!”

“근데 너 왜 우리 유뽕이를 자꾸 때리니?”

“저 안 때렸는데요!

엄마는 잠시 이성을 잃고 마구 윽박질렀습니다.

“뭐? 이제 거짓말 까지 하니? 니가 뭔데, 왜 유뽕일 때려! 예전부터 사실은 알고 있었거든. 아줌마는 그 때도 참았어.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했어. 근데 너 계속 때렸더라. 너 왜 그래? 엉? 유뽕이가 너한테 돈을 달래? 밥을 달래? 가만있는 애를 왜 괴롭혀! 너 장애인 폭력범 될 거야? 안되겠다. 할머니 연락처를 주던지 경찰서 가서 얘기하자!”

엄마는 거의 미치광이 수준이 되어 그 아이를 혼내고 있었지요.

진심인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함인지 정재원이가 꺽꺽 웁니다.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그 말이 떠올라 유뽕엄마도 같이 웁니다.

녀석이 안쓰러워 끌어안으려하자 어색한지 밀쳐대더군요.

“괜찮아! 나를 엄마라고 생각해. 재원아! 장애아들 키우는 엄마마음 넌 모르지? 네가 이러면, 아줌마 슬퍼. 너 이젠 안 그럴 거지?”

“네에...., 잘못했어요!”

“약속하나 해줄래? 앞으로는 네가 유뽕형아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어 줄 수 있니? 다른 아이들이 괴롭힐 때 도와주는 그런 거 말이야. 너 눈 보면 다 알어. 재원인 원래 마음이 착한 애 같거든.”

“네에...”

모기소리로 대답합니다.

“재원아! 아줌마가 이번엔 용서해 줄 거야. 한 번 더 널 믿기로 했어. 만약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오늘보다 몇 배 더 크게 화낼 거야. 알았니?”

훌쩍이며 울다가 고개만 끄덕입니다.

따끔하게 혼내주며 엎어버리겠다고 씩씩댔는데, 그만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발, 약하고 병든 사람들 좀 괴롭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에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 우리 모자를 내버려 두라고 짐승처럼 절규하고 싶었던 날입니다.

어른들 마음도 병들고, 아이들도 점점 순수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 맘이 아픕니다.

부탁이니....,

 

제발, 그러지들 마세요!

 

 

2011년 10월 13일

잠시 세상이 싫어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