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자전거
초등학교 입학 전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를 탔던 유뽕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되어 뒷바퀴를 지탱하고 있던 보조바퀴 떼어내고 타게 했습니다.
덜컥 겁을 먹었는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합니다.
누군가 뒤에서 잡아주면 안심하다가 손을 놓는 순간 넘어집니다.
틈만 나면 자전거 익히기에 도전했지만 실력은 늘 제자리였습니다.
몇 년을 고생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녀석이 자전거 탔던 옛 기억을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엊그제 주일예배 후.
교회마당에 주인 없는 자전거 한 대를 끌다시피 타보려 끙끙대고 있더군요.
어느새 키가 컸는지 바퀴가 굴러가다 넘어지겠다 싶으면 긴 다리로 착지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재시도 합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어른 자전거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파랑새반 남자아이들이 근사한 자전거 타는 것을 보더니 샘이 났던 모양입니다.
개천절이라 휴일인 어제, 엄마는 녀석의 맘 대신해 아빠를 졸랐습니다.
“유뽕이! 자전거 하나 사주세요! 교회 주차장에서 남의 것을 타고 있던데.....,”
사실은 엄마가 더 타고 싶은 흑심이 엿보였는지 아빠는 웃기만 합니다.
“다음에, 사줄게! 인터넷으로 좀 알아보자구!”
아빠의 대답에 엄마는 더욱 세게 졸랐지요.
“오늘 휴일이고 날씨도 좋으니까 사줘요. 시간 있을 때 자전거 배우게 했으면 좋겠는데....”
녀석보다 더 안달이 난 엄마는 입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못이기는 척 아빠는 자전거 가게로 갑니다.
선뽕이 누나도 자전거 고르는 일에 눈을 반짝였지요.
“엄마! 노란색이 예쁘겠네. 저걸루 해!”
정말 노란색몸체에 하얀 바퀴 두 개가 깔끔한 자전거가 끌렸습니다.
반으로 접히는 유뽕이의 새 자전거를 아빠 차에 싣고 황금들녘 사이 기다랗게 포장되어 이어진 논길로 갑니다.
볏짚 냄새가 훅훅 코끝을 스칠 때마다 아빠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아! 냄새 좋다.’라고만 합니다.
유뽕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아빠는 뒤 꼭지 잡고 달리듯 갑니다.
엄마는 남겨진 아빠차를 몰고 뒤따라갔지요.
꽤 오랜 시간 페달 밟는 요령, 브레이크 잡는 방법을 알려주며 숨차게 달려가던 아빠가 멈춰서 하는 말.
“아무래도 이 녀석 안 되겠어! 앞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아. 못 타. 그만 두자!”
엄마는 비싼 값에 산 자전거 본전 생각해도 아까웠고,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억울하기만 했습니다.
시골마을 놀이터 앞 넓은 공터에서 이번엔 엄마가 나섰습니다.
“유뽕아! 너 잘 할 수 있지? 그래, 멈출 땐 여길 천천히 잡는 거야. 엄마가 뒤에서 밀어줄게!”
자전거 꽁무니를 잡고 따라가며 밀어주다 손 떼기를 반복했지요.
얼마나 달렸을까요.
드디어 유뽕이가 혼자 자전거를 탑니다. 술 취한 사람처럼 좀 비틀비틀 거리지만요.
몇 바퀴 돌더니 자신감이 생겼나봅니다.
손잡이에 붙은 따르릉 종소리도 울리며 노래까지 부릅니다.
또 한 가지 유뽕이가 익혀낸 것이 생겼네요.
급하게 달려오다 엎어져 손에 피가 나오지만, 엄마는 일으켜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넘어진 자전거를 세우며 혼잣말로, “병원에 가야겠다! 삐뽀삐뽀 강릉아산병원 가요!”엄살을 부립니다.
아빠는 그런 아들이 기특한지 뒷자리에 태우고 황금들판 길을 달립니다.
멀리 언덕위에서 바라보니 유뽕이는 아빠어깨를 잡고 일어서서 갑니다.
한 폭 그림을 잠잠히 바라보는 엄마 가슴은 뜨거워집니다.
연휴가 끝나고 학교 가는 아침.
교문 앞에서 녀석을 내려주려는데, 한 마디 합니다.
“엄마! 노,란,자,전,거!”
공부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말이지요.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따 꼭 자전거 가져올게.
하교시간쯤, 반으로 접은 자전거를 엄마 차에 간신히 싣고 달려갑니다.
운동장 끝에서 자전거 펼치는 엄마를 보더니 함박웃음으로 달려오는 유뽕이.
미술학원 갈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내릴 줄 모르고 넓은 학교마당을 뱅글뱅글 돌고 있습니다.
교실에 남아있던 파랑새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 줍니다.
“유뽕아! 안녕? 자전거 잘 타네!”
교문 앞에서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엄마에겐 이 모든 그림들이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온 친구 기락이가 자기 자전거를 굴리며 오는데, 핸들 잡지 않고 양 손을 점퍼주머니에 넣은 체 뽐냅니다.
유뽕이 곁에 붙어서며 아는 척을 합니다.
지켜보던 엄마가 한소리 했지요.
“어이! 기락이. 잘난 척 좀 그만 하시지!”
“잘난 척 아니예요. 손이 추워서 그래요!”
기막히게 둘러댑니다.
햇볕이 쨍쨍 땀이 흐를 정도인데 춥다고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을 합니다.
잠깐사이 유뽕이가 또 넘어지네요.
지켜보던 친구들이 달려가려는 걸 엄마가 말립니다.
그냥 두라고.
손이 깨져 피 좀 나더라도 일어나는 걸 배워야 한다고.
노란 카디건 입고 노란 자전거를 힘차게 굴리는 녀석의 얼굴은,
노랗게 부서지는 오후 햇살을 받아 그저 눈부시게만 보입니다.
엄마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까요?
2011년 10월 4일
유뽕이 자전거 처음 타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