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터널
가끔 유뽕이의 돌발적인 행동을 보며 놀랍니다.
일부러 학습시키지 않았는데도, 여러 부분 닮았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유전적인 성향으로 전달되는 것인지, 가만히 유뽕이를 보고 있으면 절로 속웃음이 나옵니다.
우선 체질적인 부분이 엄마랑 많이 닮았지요.
잠버릇 예민한 것과 여드름이 양 팔뚝에만 난다는 사실.
대신 얼굴은 깨끗하고 땀구멍도 작아 나이 먹은 엄마지만 지금까지 탱글탱글 하답니다.
유뽕이녀석 욕조에 담그고 거품을 풀어주었습니다.
한 참후 때밀이 수건 들고 팔부터 쓱쓱 밀어주려다 보니, 아 글쎄 벌써 조금씩 여드름이 솟아났지 뭡니까.
울긋불긋 예전 엄마 사춘기 때처럼 말이지요.
“어머나! 유뽕이 너 이게 뭐야? 하하하 이런 것 까지 엄마 닮은 거야?”
깔깔대는 엄마가 더 웃긴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합니다.
식성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침엔 빵을 먹어야 한다는 아빠, 누나와 다르게 유뽕인 꼭 밥과 국만 찾습니다.
엄마도 그렇거든요.
국수나 우동 같은 면류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하루가 접히는 가을 오후.
소름 돋도록 기온차가 심하네요.
햇볕가루가 폴폴 묻어있는 빨랫감을 걷어 모으고 있는데, 집안에 있던 유뽕이도 마당으로 나옵니다.
“이건 고추야! 저건 배추! 이거는 파야!”
혼잣말인지, 엄마에게 들으라는 것인지 텃밭 앞에서 중얼거립니다.
먼지 털던 옷들을 내려놓고 엄마가 유뽕이에게 마저 알려줍니다.
“유뽕아! 저건 무야! 그리고 이것은 부추, 여기 아욱도 있네! 빨간색 고추 찾아서 따 봐. 저쪽 파란색 바구니에 올려놓기!”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랑 하나 익은 빨간 고추를 땁니다.
칭찬받을 셈인지 붉은색 반만 물든 채 달린 고추까지 이참에 꼭지 부러뜨리고 맙니다.
잘했다. 이제 그만하자니까 두리번거리다 빨랫줄을 쳐다봅니다.
엄마가 손대다 만 빨래더미에 올려 진 이불을 보더니 손짓으로 명령(?)하네요. 이불 한번, 빨랫줄 향해 한번 손가락으로만 가리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녀석의 생각을 읽었지요.
“뭐? 이불 여기에 걸으라구?”
“네에!”
이불을 마당 가운데 가로지른 빨랫줄위로 널어놓으랍니다.
의아해 하면서도 뭔 생각이 있으려니 걸어줍니다.
양쪽넓이가 절반으로 잘 접혔나 확인하고 녀석은 만족한지 씩 웃습니다.
그리고는 두 갈래 폭을 가르더니 제 몸을 통과시키며 걸어가는 겁니다.
“칙칙폭폭 기차 터널입니다!”라고 혼자 말하면서요.
재미있는지 오고가고 왕복운행을 쉬지 않습니다.
지켜보다가 엄마는 웃고 말았습니다.
녀석의 장난스런 행동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 그림 한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바지랑대 세워 여러 폭 솜이불을 걸어두신 외할머니.
엄마와 외삼촌 둘의 삼남매는 진흙 장난하던 손으로 이불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녔습니다.
잘 마른 옥양목 이불호청에서는 밀가루풀 냄새이거나 녹말 향이 났습니다.
시커먼 손도장을 새하얀 이불깃에 마구 찍어 놨으니 외할머니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지요.
부지깽이 들고 나오며 고함치셨습니다.
골목길 달음박질 쳐 신작로까지 나오면서도 삼남매는 넘치는 장난기를 주체 못하고 숨 넘어 가도록 웃기만 했습니다.
유뽕이에게 엄마가 장난꾸러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걸 알려준 적 없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그 옛날 엄마처럼 이불사이에 몸 숨기고 뛰며 좋아합니다.
엄마 속에서 나온 아들인 것을 확인시키느라 닮은 짓만 골라 합니다.
떼어내려 해도 뗄 수 없는 사이라고 행동으로, 본능으로 보여줍니다.
이불터널 속 어두움의 길이는 짧게 끝납니다.
시작했나 싶게 몸 들이밀고 몇 발자국 걷다보면, 곧 눈부신 밝음이 열리지요.
펄럭이며 벌어지는 터널 끝 환영인사에 유뽕이가 환하게 웃습니다.
엄마는 유뽕이를 닮기로 결정해 봅니다.
녀석의 뒤만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흉내 내기 인생을 살아볼까 합니다.
유뽕이가 바라보는 세상엔 기대할 것과 누릴 것이 훨씬 더 많거든요.
2010년 9월 29일.
이불터널놀이 하는 아들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