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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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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38)


BY 박예천 2010-09-17

 

* 99년 9월 16일 (목) 흐림

 

베란다 앞으로 멀리 설악의 모습이 보인다.

날이 흐려 오늘은 구름들이 울산바위에 둘러있다.

네가 얼마나 크고 예쁜지 엄마는 엄청나게 놀라곤 한다.

잠든 네 손을 쥐어 본다.

악수하듯 하여 만지면 손안이 뿌듯하다.

배부르고 잘 자면 혼자 뒹굴 거리며 놀다가

잠 오는지 칭얼거린다.

안고 우유 좀 먹이다가 눕히면 금방 잠이 든다.

밤에 잘 때도 침대에서 떨어질까 걱정이다.

내 쪽으로 안기기도 하고 바로 누웠다가 등을 돌리면서

벽을 향한 자세로 자기도 한다.

갑자기 네가 큰 어른이 된 것 같다.

아기들 중에 너처럼 의젓한 아이가 있을까.

너는 호기심 생기는 물건이 있으면 참으로 오랫동안 놀이한다.

가끔 어른들 티브이 프로그램을 몰두해 보기도 하는 네가 큰 어른 같다.

유뽕아!

참 많이 컸구나.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셨음을 믿는다.

언제까지나 네 곁에서 함께 호흡하실 주님의 은혜 속에 네가 있다.

지금 나에게 너보다 더 큰 의미도 없고,

더한 사람도 없다.

사랑한다. 유뽕아.

 

 

* 99년 9월 28일 (화)

 

너를 낳았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보행기를 타고 씽씽 달리는 네가 너무 커 보여

내 속에서 나온 것 같지 않구나.

처음 3키로였던 녀석이 이제 오래 안기에도 힘들 정도다.

집안 구석구석의 물건들을 던지며 신나게 소리친다.

오늘은 왜 그렇게 보채는지.......

엄마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고마운데

잠시도 놔두질 않으니 좀 힘들다.

업어달라고만 조르고.

그래도 너의 웃는 모습에 모든 시름을 잊는다.

언제까지나 밝게 웃어다오.

건강하고 지혜롭게!

 

* 99년 10월 15일 (금)

 

유뽕아!

또 어떤 재주를 익히려는지.......

네가 아프다.

기침으로 목이 심하게 상하고 열이 높다.

너를 지켜보는 나는 너무 안타깝다.

말을 할 수 없는 나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해열제를 먹고 겨우 잠든 너를 본다.

앞으로도 아픔을 겪어야 하는 일이 있겠지만

엄마는 네가 아픈 것을 지켜보는 일이 고통이구나.

차라리 엄마 몸이 아플 수 있다면.......

너 대신 말이야.

여호수아 내 아들 유뽕아.

강하고 담대 하거라.

네 속에 주님이 계시니까.

 

 

* 99년 12월 2일 (목)

 

사실은 꽤 여러 장 적은 이 일기책이 물에 젖었다.

글씨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어렵게 몇 장은 정리할 수 있었다.

밤에 잘 적에 방안이 건조해서 물수건을 널어놓았는데

머리맡에 수건에서 물기가 배어들었나봐.

 

다시 또 적으면 되지 뭐.

이젠 조심해야지.

물기를.

 

 

 

12월 2일 밤에.

 

속초는 바람이 깊다.

깊어서 그 속을 다 알 수도 없도록

매일 다른 색으로 바뀌어 불어온다.

시베리아 벌판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의 바람에서도

어쩐지 차분한 온기가 스며있다.

그 바람들 덕에(?) 우리 아들 유뽕이는 감기를 명찰처럼 달고 산다.

소아과에 출근부를 찍어 댈 정도이다.

코감기 약을 지어 먹였더니 요 녀석 이틀 전부터 잘 잔다.

정말 귀엽다.

아기 곰 같은 녀석은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잔다.

우유를 먹을 때는 두 손으로 젖병 들고는 한 발을 건달처럼 흔든다.

아빠나 내가 옆에 있기라도 하면,

그 숏다리를 턱 올려놓는다.

세상에 그것처럼 편한 자세는 없을듯하다.

이제 9일이면 녀석이 9개월이 된다.

대견하다.

찌든 때로 가득한 이 세상에

잘 적응해 주고 견뎌주어 고맙다.

그런 속에서 샛별처럼 빛나고 맑게 컸으면 좋겠다.

기도하며 키워야지.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