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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434

유뽕이 시리즈 60 - 죽겠어요!


BY 박예천 2010-09-09

                  죽겠어요!


 

“유뽕아! 엄마랑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갈까?”

저녁설거지를 끝낸 후 공원길 놀이터 쪽에 있는 공동쓰레기장으로 갑니다.

왼손엔 하늘색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오른쪽은 유뽕이가 팔짱낍니다.

어깨높이가 엄마만큼 자랐네요.

저건 보라색 수국이네. 어머나, 이 집엔 호박이 달렸네.

걸어가는 길마다 얘깃거리가 넘칩니다.

유뽕이는 낯선 골목길이 무서운지 엄마 쪽 부여잡은 손에 힘을 잔뜩 줍니다.

“이거 무거워서 힘들다. 같이 들어줄래? 도와주라!”

멀쩡히 들고 가던 쓰레기통이 무겁다며 엄마는 엄살 한번 피워봅니다.

아들과 손잡이를 나눠들고 춤추듯 걸어갑니다.

두 사람 사이에 매달린 하늘색 쓰레기통이 달랑달랑 그네를 타네요.

녀석은 이제 엄마 일을 제법 잘 도와주는 듬직한 아들이 되어갑니다.


돌아오는 길.

빈 통을 들고 장난치며 걷습니다.

유뽕이가 자꾸 엄마 엉덩이 향해 똥침을 놓겠답니다.

아픈 척 도망치니 그 꼴이 우스운지 골목이 떠나가라 까르륵 웃으며 뒤따라옵니다.

요즘 따라 장난기가 심해졌습니다.

거실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딴 짓 중이던 녀석이 슬그머니 다가옵니다.

뭔 일인가 쳐다보려는 순간.

엉덩이를 엄마 얼굴 쪽에 향하고는 방귀 한 방 발사하는 겁니다.

“어?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엄마 방귀 먹으라구?”

일부러 놀라는 척하면 통쾌한 웃음을 흘리며 마구 달려갑니다.

사내아이답게 커가는 것이 그저 좋아 장단을 맞춰주지요.


요즘, 마음 무거운 일이 생겨 며칠 엄마얼굴표정이 무겁습니다.

말하기도 싫고, 밥 먹고 자는 일도 힘이 듭니다.

간신히 잠들었던 깊은 밤에도 수시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합니다.

엊그제도 겨우 잠속으로 빠져들려는데, 무슨 말소리인가 들립니다.

꿈결인가, 누가 부르는 소리인가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자꾸 같은 말을 중얼댑니다.

유뽕이가 뭔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잠꼬대라 생각하고 무시했지요.

계속되는 웅얼거림에 엄마가 대꾸를 했습니다.

“뭐라고? 유뽕아 다시 말해봐!” 

“죽겠어요!”

“뭐가 죽겠다는 거야?”

유뽕이가 꿈을 꾸는 줄 알았습니다. 못된 짐승에게 쫓기거나 위험한 상황의 꿈을 실감나게 꾸느라 말도 섞어 하는 것이라 여겼지요.

잠시 뒤, 번쩍 눈을 뜨며 녀석이 하는 말에 잠이 확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똥 마려 죽겠어요!”

침대에서 부리나케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달려가는 겁니다.

뿌지직, 뽕뽕.

변기가 부서져라 난리가 났습니다.

비데 물 쏘는 소리와 변기 물 내리는 소리를 끝으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와 잠청하는 녀석을 토닥여주었습니다. 

 

조각난 잠 이어붙이며 아들의 등 두드리다가 방금 전 죽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평소에 엄마가 그 말을 얼마나 자주했으면 유뽕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을까요.

예전 엄마 어렸을 적에도 그랬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부엌을 향해 달려가며 배고파 죽겠다고.

차려준 밥을 잔뜩 먹고 나오면서 이번엔 또 배불러 죽겠다고.

유뽕이 외할머니가 한 말씀 하셨지요.

“넌, 어째 그러냐. 배고파 죽겠다 해서 밥 먹이니 배불러 죽겠다 하냐? 그럼 어떻게 해주면 살겠다고 할 거니?”

부엌바닥에 남은 솔가지를 쓸어대며 핀잔 주셨던 일이 기억납니다.


지금껏 입에 달고 산 말이 죽겠다는 말이었나 봅니다.

참 좋다, 흡족하다는 말 보다는 불만 섞인 투정이 더 많았던 날들이었네요.

유뽕이가 겨우 몇 마디 내미는 말조차 욕설과 불평뿐이라면 엄마 탓일 겁니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빚어져 나온 결과물인데, 엄마 속내가 꽈배기처럼 꼬여있나 봅니다.

아들에게 많이 미안해졌습니다.

엄마나이에 어울릴만한 너그러운 말투, 깊은 배려의 언어들이 있었다면 녀석도 좋은 말들을 먼저 배웠을 것인데.


머릿속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숨 한번 고르기로 합니다.

한 박자 늦게 나온다 해도 가슴 아픈 상처의 말이 아니라면 듣는 이도 편하겠지요.

말속에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으므로 더욱 조심할 일입니다.


유뽕이가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지내는 대상 엄마는,

중년 다 되어 갈 나이에서야 말의 소중함과 깊이를 다시 배웁니다.

반성의 시간을 갖고 뉘우치니 좀 살겠네요.


잘 살겠습니다!

 

 

 

2010년 7월 14일

말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으며.


0개
오월 2010.07.19 13.24 신고
ㅎㅎㅎㅎ
그래요 어쨌던 잘 살기를 바랍니다. ㅎㅎ
곧 유뽕이도 아~~~
똥누고 나니 살겠습니다 하겠는데요 ㅎㅎㅎ  
  박예천 2010.07.19 13.36 수정 삭제 신고
제가 그렇게 살아왔네요.
삶이 힘겹다는 핑계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인가 봐요.
긍정적인 말로 바꾸는 연습중입니다.
장마에 비가 징하게 오니 채소들 물 많이 먹어 살겠네...ㅎㅎㅎ
못 살 일이 하나도 없는 세상인데 말이죠.
댓글 고맙습니다.
참, 자보네 집 안부가 궁금합니다^^  
  오월 2010.07.19 13.46 신고
헉 또 숙제를 주시네요
오월이 바쁜데 ㅎㅎㅎ
채송화도 자보도 잘 길러 둘테니
분양 받으러 오세요 ㅎㅎㅎ  
  예천 2010.07.19 13.50 수정 삭제 신고
아유....진짜 오월님 왜그러세요.
뭔 소린가 했답니다.
제가 이래요. 먼저 말해놓고도 다까먹어요.
분양받으러 언제든 가야겠네요.ㅎㅎㅎ
어디더라? 제천이셨나요? 제 기억력이 ㅎㅎㅎ
둘 다 잘 키워주세요..^^  
** 2010.07.17 15.26 신고
ㅋㅋ 찔려서 이름도 못 쓰겠네
배고파 죽다가 배 불러 다시 죽는 내 말을 반성하며
사진 올리기 성공했다고 알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북어님은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며
다음주 토요일쯤 섬을 탈출하여 본토로 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예천님 보듯 반가울 미영님을 기다림이 설렙니다.
아마도 예천님 귀가 많이 간지러울 듯
주로 없는 사람 씹는게 취미인지라
나도 사람들과 있다가 화장실도 못가서 죽어라 달려서 집에 오는 적이 많다는 ㅋㅋ

유뽕이 점점 커 가는 모습이 꼭 내가 키우는 것 같다는 ㅋㅋㅋ  
  예천 2010.07.17 18.14 수정 삭제 신고
ㅋㅋㅋ 주인 없는 방에 다녀간 이가 뉘시오?
우째 닉네임만 숨기고 말투, 억양은 다 드러내셨남유?ㅎㅎㅎ
참나...북어가 아니고 진부령에서 잘 말린 황태포여유.
자연산 다시마도 넣었으니 조각조각 잘라서 국물 우려내는데 쓰시오.
생색 내려고 넣은 건 절대 아니오.
명색이 뱅기타고 캐나다 간다는디 맨몸땡이로 내 이름만 안다고
그대를 찾아가게 할 수는 없다 요거죠.
나한테는 메일 답장도 안하는 미영아줌씨...밴쿠버 어떤 분 한테
소식도 전하나봐요?ㅋㅋㅋ
귀국하기만 해봐라. 내 욕 울매나 했는지 다 보고 받고 말것이요...ㅎㅎㅎ

그렇지요.
유뽕이는 저 혼자 키우는 게 아닙니다.
힘 주시고 응원 아끼지 않았던 아컴 님들이 함께 키웁니다.
어제 야영 다녀온 얘기도 써야 하는디....허리가 쑤셔서 ^^
파스 냄새 밴쿠버까지 진동하지요?

아............나두 보고 싶은 사람덜 다 만나면서 살고 싶으다ㅜㅜ  
모퉁이 2010.07.17 09.23 신고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 하나지요.
저도 뜨끔하네요.
근데,좋아 죽겠고 우스워 죽겠고 귀여워 죽겠고
이런 건 어떡하지요? ㅎㅎㅎㅎㅎ
난 예천님의 글이 좋아죽겠는데...ㅎㅎ  
  박예천 2010.07.17 15.03 수정 삭제 신고
여기 속초에도 며칠 비가 많이 옵니다.
습기에 축축 늘어지네요..ㅠㅠ

모퉁이님....절대 걱정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절대로, 결코, 도저히......단 한 분도.
제 글 읽고
좋아서 죽었다는 사람 없었거든요...ㅎㅎㅎ
행복한 주말 되시기를~~~!!!  
판도라 2010.07.17 08.51 신고
이젠 용기내서 댓글 달려고요..
ㅎㅎ
예천님 글에 뭐라 댓글달수 없으리만큼 글이 좋아..
요리조리 눈치보다 과감히 질렀씁니다.
유뽕이...
삶이야기에서 우리네 삶을 봅니다.
맑은영혼의 아이라.
우리네가 잘못하는것을 제대로 지적해주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박예천 2010.07.17 15.00 수정 삭제 신고
아...판도라님 정말...-.-;;
댓글을 주저 할 만큼 제 글이 부담스러웠다는????ㅎㅎㅎ
그러지 마세요.
맘 편하게 글 쓰고, 여러 님들과 소통하고 싶어
아컴에 왔는데....
읽는 분들께 눈치나 보게 만드는 게 제 글이란 말이여유?
어렵게 남겨 주신 댓글...소중하게 여깁니다.

유뽕인 영혼 맑은 아이랍니다.
제가 늘 배우고 사는 저의 스승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글쟁이 도영 2010.07.16 13.07 신고
저도 그 말을 참 많이 달고 살았었기에...예천님의 글을 읽고 너무 찔려요...그 말이 튀어나올 것 같으면 얼른 바꿔서 '살겠어요~'라고 크게 외쳐버려야 하겠어요. 멀리멀리 그 단어가 도망가 버리게요~글 잘 읽고 가요~  
  박예천 2010.07.16 16.04 수정 삭제 신고
도영님 반갑습니다^^
드디어 장마 기운이 동해안을 흔들어 댑니다.
천둥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지은 죄 많은(?) 바다새 한 마리 겁에 질려 이렇게 풀 죽어 있답니다ㅎㅎㅎ
정말 이제부턴 일부러라도 살겠다고 외쳐야겠어요...살겠다!!!!^^  
토토 2010.07.15 10.34 신고
유뽕이니 엄마하고 쓰레기도 버려주고 같이 놀아주기도하고
아님 예천님 너무심심하져..
아이들한테서 더 많이배울게보여요..
죽을때까지. 우린 배워야겟지요..
오늘도 예천님 유뽕이랑 즐겁게..
언젠가
우리 유뽕이가 예천님에 보디가드가 될꺼같아요..
  
  박예천 2010.07.15 16.04 수정 삭제 신고
에효~ 보디가드 꿈은 버려야겠어요
내일 학교운동장에서 뒤뜰 야영하며 하룻밤 잔다는데....
자기는 텐트에서 잘테니 엄마는 침대에서 자라며 오지 말래요...ㅜㅜ
엄마는 지켜 줄 생각도 하지않고 저만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자야 한대요 ㅎㅎ
방금 배낭 챙기는데 입이 귀에 걸렸더군요.
똥구멍에 바람만 잔뜩 들어서 집나가 노는 것만 좋아라 한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토토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낸시 2010.07.15 00.21 신고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더니...유뽕이가 엄마를 가르치는군요. 하긴 저도 아이들 덕분에 깨닫고 사는 것이 많답니다. 이래저래 아이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지요.  
  박예천 2010.07.15 08.02 수정 삭제 신고
누구나 알고있는 평범한 얘기들인데.....,
저는 아들을 통해 다시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평생 그렇게 살게 되겠지요...^^  
헬레네 2010.07.14 20.54 신고
언젠가는 ,,,,, 토막말이 아닌 실타래처럼 많은 말들을 쏟아내며
엄마와 대화할 날이 올겁니다 . 예천님의 노력이 꼭 그렇게 될것 같아요 .
이렇게 맑은 심성을 지니신 분이니 우리 그날을 함께 기다려 보지요 ^^  
  박예천 2010.07.14 21.25 수정 삭제 신고
네에...꼭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 견뎌냅니다.
헬레네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저...그렇게 맑은 사람이 못 되거든요ㅎㅎㅎ
영혼에 잔뜩 때가 끼어 시야도 탁해졌답니다.
곱게만 바라볼 수 없는,
상처주는 사람만 자꾸 보이는 걸 보면 그렇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춘천 가고 싶네요 ㅜㅜ  
백향목 2010.07.14 19.09 신고
유뽕이가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쓰레기통을 유뽕이와 나란히 들고 사이좋은 모자간의 정겨운 데이트 그림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듯 해요

죽겠다는 말.... 우리들이 자랄때는 조금 힘든 상황이되면 습관적으로 잘 내뱉던 말이죠~ ㅎ  
  박예천 2010.07.14 19.45 수정 삭제 신고
녀석의 키가 많이 자랐습니다.
이제 함께 길을 걷노라면, 턱하니 어깨에 손까지 얹는 답니다.

정말 입에 배인 죽겠다는 말.
저는 유난히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아파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등등.
말 끝에 붙이지 않으면 큰일 나는지 꼭 달아 놓곤 합니다.
이제 죽고싶지 않을 만큼 편해졌는데 말이지요ㅎㅎㅎ
댓글 고맙습니다.